이태길 초대전,'상생'과 '화합'을 기원하는 축제 한마당
‘인송(仁松) 이태길 초대전’, ‘상생’과 ‘화합’을 기원하는 해원(解寃)의 이미지
-지금, 우리에게 화해와 해원(解寃)의 축제는 가능한가?
개인전 경력만 34회이다.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생애를 바친 노장 이태길 화백의 초대전이 갤러리 인사아트프라자 1층 그랜드 관에서 6/12(수)부터 6/17(월)까지 열렸다. 직접 화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작품에서 전해지는 열정과 에너지만을 본다면 어느 누가 노장이라 하겠는가? 한참 때인 30~40대 젊은 작가를 떠올릴 만하다. 또한 그 주제가 “축제”이고, “상생”을 강조하는 그림들에서는 실험정신이 왕성한, 패기 있는 신인이라는 인상에도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다소 수줍은 듯 관람객들을 대하는 노(老) 화가를 만나자 마다 놀라움의 반전을 경험한다.
넓은 전시장에 걸린 숱한 그림들에서는 일정한 문양처럼, 패턴처럼 캔버스를 채운 채, 강렬한 호소를 담은 오방색(五方色)이 대칭인 듯 비대칭인 듯, 궁금증과 신비함을 자극하며 시선을 끌고 있다. 한 눈에도 오방색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작가를 만나자 마다 묻는다. “오방색을 사용하시네요.” 이미 오방색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테지만, 노 화백은 “오방색이 우리 민족의 색이더군요.” 라며 마치 근래에 새로 알게 되었다는 듯, 작품의 방향과 의미를 에둘러 말하고 있다.
오방색은 우리의 오행사상을 상징하는 색으로, 천체 우주를 관찰하며 생성소멸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대변하는 색이다. 오행이란 해(日)와 달(月)을 제외한,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등 5개의 별을 상징한다. 이때 오방색은 이를 색으로 나타내며 5가지의 방향과 위치를 대신한다. 즉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木), 서쪽은 흰색(金), 남쪽은 적색(火), 북쪽은 흑색(水)이며, 중앙은 황색(土)이다. 황색은 땅의 중심을 의미하며, 4방위(四方位), 즉 동방(東方)은 태양이 솟는 곳으로 나무가 많아 청색이며 봄을 의미하고 양기(陽氣)가 강하며, 서방(西方)은 쇠가 많아 백색으로 표현하고 가을을 의미하며 음기(陰氣)가 강하다. 남방(南方)은 해가 강렬하여 적색이며, 양기가 왕성한 여름을, 북방은 깊은 골이 있어 흑색으로 표현하고 겨울을 뜻한다. 이처럼 땅(토)을 중심으로 사방(四方)을 시계방향으로 목화금수 등 4계절을 나타내고 이를 색으로 표시하였다. 이때 오행(五行)은 서로 극(剋)하여 화합하지 못하거나 맞서기도 하고, 서로 생(生)함으로서 여럿이 공존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형국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 선조들을 이처럼 상극(相剋)과 상생(相生)을 이해함으로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를 상징하는 오방색은 우리의 기본 원색이면서 근본이라 할 수 있었다.
이태길 화백은 오랜 시간, 인간의 “축제”를 테마로 한 작품들을 이러한 지혜를 바탕으로 완성하고자 하였는데, 나아가 오방색을 통하여 자신의 정신적 사상을 강화하거나 깊이를 더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편 화가는 색을 다루는, “색의 마술사”로서의 직무도 있다면, 오히려 5가지 원색을 통하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작품의 표현 범위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태길 화백의 이런 결정은 특별한 의도를 포함하고 있기에 오히려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어필(appeal)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태길 화백의 전시작품들에 대해 서영희 교수(홍익대학교 미술대)는 “상생과 화합을 기원하는 해원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간의 작업은 ‘축제’라는 테마를 통해 화합과 한민족의 통합을 염원하는 작품을 그려왔다면서, 모두가 통합된 장(field) 안에서 생명의 기운을 교환하며 서로 화합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작가의 막힘없는 실험정신이라 강조하고 있다.
축제-홍익을 위한 만남 130.3*162.2 캠버스에 아크릴 2024
상생도
필자는 이 화백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가 염원하는 것이 집중적이고 확고한 만큼 간절한 소망에 해당하는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발단의 근저를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돌아본다면 누구라도 수긍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행복과 화해를 평생 동안 바라온 노 예술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오히려 극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가하는 염려와 함께, 우주 질서의 기본을 조금이라도 인지한다면, 또 우리가 오래도록 알고 추구해온 바를 되새겨본다면 현재의 우리는 과연 올바른가 하는 각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살아가는 이 땅은 반목과 대립, 그리고 갈등이 극에 달한 듯이 지금 이 시각에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이 있고, 서로에 대한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고 폭발 직전의 순간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우리의 주변을 살펴본다면. 이는 매우 시급한 삶의 과제처럼 여겨진다.
언제 적인가? 우리에게는 화해와 평화를 앞세우며, “홍익인간”의 개념으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선조들의 높은 뜻이 있었고, 서로의 “상생”을 강조하며 온갖 사물과 생명이 한데 어울리며 이 땅에 살게 하였는데, 이 뜻을 거역하는 인간들은 눈이 먼 것인가? 패기와 도발로 만용을 부리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내보이고 있는 것인가?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기에 그 무엇도 포기하기는 이르고 어렵다. 이에 이태길 화백의 시선은 이런 주제의식으로 세상을 달래고 회유하며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필자는 이 화백이 그려온 이전의 축제 그림은 본적이 없으나, 아마 이번의 축제 그림을 통해 더욱 확장되고 유대감이 강조된 공동체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였다. 무슨 기호인 듯 상징적 시그널인 듯, 그려진 화폭의 내용들은 더욱 간절하고 진심인 노장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느끼게 할 메시지가 충분한 듯하였다. 세밀하고 다양한 세상의 존재들을 모두 하나의 화폭에 담기 어려울 만치 꽉 차있다. 이를 질서 있게, 그러나 구상적으로 작가는 정신을 집중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조합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것들은 온 우주를 채울 만큼 오방의 색으로 그려내어 사방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쥐어 짜내는 고통마저 감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밝게 생동하는 존재들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그 안에 담긴 화해와 어울림으로, 그간에 쌓인 묵은 원한과 분노를 털고, 씻어 내어 누구라도 한데 어울려, 손에 손잡고 어깨동무하며, 가슴을 열어 하나가 되자는 절규와도 같은 염원을 노장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침은 호소력이 있다. 강렬하지만 부드럽고, 따끔하지만 감격스럽다. 거칠지 않으나 힘이 있고, 조화롭지만 자극적이다. 그러니 예술은, 한편 강한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야만의 모습도 실은 태초의 기원origin으로부터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모습이었음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에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강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