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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랜드 Apr 11. 2021

내가 만난 부동산 키즈들

내가 만난 부동산 키즈들


 학창 시절 내 주변 친구 중에 소위 잘 산다는 친구들은 어머니께서 공인 중개업을 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은 공인중개사 학원에서 학부모 모임을 할 정도로 부동산 열풍이 뜨거웠다. 2004년, 나의 중학교 친구 E는 친구 중에 학원을 가장 많이 다녔다. E의 어머니는 동네 아파트에서 공인 중개업을 직접 운영하셨는데, 때마침 부동산 호황의 시기라서 여유가 꽤 있었다. E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안양시의 한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E가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였고 부모님께서는 학군지로 이동을 하고 싶어 해서였다. 그렇게 E와는 작별 인사를 하고 버디버디 친구로 남게 되었다.


 나의 또 다른 중학교 친구 H는 스무 번 이사를 다녔다. H의 어머니는 공인중개사는 아니고,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H 집안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은 H의 어머니가 IMF 당시 미분양 중인 소사역 인근의 아파트를 과감하게 매수한 것이 시작이었다.  IMF 당시 집값이 -30%까지 떨어졌었는데, 1999년부터 다시 회복되더니 급등하기 시작했다. H의 어머니는 그 아파트를 시작으로 부동산에 눈을 뜨기 시작하셨다. H는 우리 친구 중에서 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H는 단독주택으로 상가주택으로 그리고 부천을 떠나서 경기도 안양시의 산본 신도시로 그리고 다시 부천으로 마지막으로 평택에 어느 한 동네의 상가주택에서 살 게 되었다. H의 어머니가 일구어 놓은 유복한 가정환경은 훗날 내가 부동산학을 전공하기로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중학교 입학 당시  1등으로 입학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동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온 터라 가능했던 점수였다. 중간고사에서도 전교권에 들자 근거 없는 나의 자신감으로 스스로 공부를 해도 괜찮을  같다고 생각하여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학생이 되어 있었다. 한번 놓쳐 버린 끈을 다시 붙잡을  없었다. 중학교 3학년 가을 무렵부터 고등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부천에서도 학원가가 밀집된 상동에 유명 수학학원을 알아봐 주셨고 소사동과는   거리이지만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늦은 저녁때 나를 데리러 직접 오셨고,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목표가 없이 공부하는 것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나는 좋은 내신을 만들기 어려웠다. 그나마 패션 분야에 관심이 있던 나는 유복한 형편은 아니지만, 부모님께서는 노량진에  입시 미술 학원을 보내 주셨다. 입시 미술 학원은 학원비 외에 부대비용이 많았다. 나는 첫째  콤플렉스를 하게 가진 성향이라서  이상 미술 학원에 다닐  없었다. 다시 수능에 매진하였지만, 사회탐구  과목에서는 1등급이 나왔지만, 언어, 수리, 외국어 과목의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기에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2010 새해 첫날부터 부천시 송내역 인근에 있는 유명 재수 종합반을 다니게 되었다. 나의 수험생 시절은 없었지만, 맹목적으로 수도권 4년제 입학만이 목표였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스파르타로 공부를 해야 했고,   다시 햇빛을 보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를 악물고 1년을 살았다. 연년생 보라와 함께 2009학년도 수능을 같이 봤고 나의  번째 수능 성적은 목표했던 대로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진학이 가능했다.  동생 보라는 과외   받아 보지 않고 메가스터디 온라인 강의만 듣고서 목표로  명문대에 입학했다. 솔직만 마음으로는 동생보다 수능 점수가 좋지 않아서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연년생 자매를   번도 경쟁시키지 않았고  사랑해 주셨다.  덕분에 무엇이든 도전해 보고 부딪혀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할  있었다.


 나는 입시 원서를 지원하기 전에 우연히 COEX에서 하는 대학 입시박람회를 알게 되었다. 재수학원 친구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어머니께서 잠실에서 공인중개업을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COEX에 도착했고, 수능 성적표를 들고 대학 부스에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다니던 중에 한 수도권 대학에 부동산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무 살의 나는 세상 물정은 잘 몰랐지만, 부동산학을 전공하면 여성으로서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운명일까? 최초 합격으로 입학할 수 있었고 이날을 끝으로 나의 질풍노도 시기는 끝이 난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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