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세 아이 육아기
조카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시집갔다'라고 하기에는 왠지 형님의 콧날이 더 시큰거릴 듯싶다.
축의금 받느라 바빠 머리 위에 있던 모니터 화면으로만 드문드문 식을 봤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직접 찍었다며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는데,
바로 신부가 입장하는 장면이었다.
화면에는 조카딸과 형님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사진 속 이경규 님의 따님처럼 조카딸도 마냥 웃기만 하더라.
행진 끝자락에서 자기가 애지중지 길러 온 딸자식의 손을 '험상궂은' 사위 녀석에게 넘겨줄 때 아빠(형님)의 그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울고 있었을 테지.
아아…, 딸이란 아빠에게 어떤 존재일까?
시 「큰일」은 나태주 시인이 세상 모든 딸에게 보내는 사랑의 연서이다.
딸이 태어나 자라며 아장아장 걸을 때, 아빠 손을 꼭 잡고 걸을 때가 연상되지 않는가.
시인 나태주는 세상 딸에 관하여 또 이렇게도 말했다.
아비의 목숨이 떠난 뒤에도 가장 오래 함께 울어줄 목숨이 딸이다.
그의 생을 가장 잘 기념해 줄 육친이 또 딸이다.
실상 딸들은 아비의 또 다른 생명을 살아줄 가장 어여쁜 인간.
아비의 목숨이 떠난 뒤에도 가장 오래 함께 울어줄 목숨이 딸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게도 나이 어린 딸이 있지만, 오늘 딸을 시집보낸 형님의 마음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대략 12년 정도 후면 내 딸도 시집가겠지.
열세 살 딸은 언젠가부터 아빠의 이부자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챙기는데,
자기 전에는 꼭 성시경 버전으로 "잘 자요" 하며 굿나잇 뽀뽀도 잊지 않는다.
그런 내 딸이 시집가는 상상을 아직은 하기 싫다.
12년 세월이 물 흐르듯 지나가기 전에 마음껏 사랑해 주겠노라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