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세 아이 육아기
밥 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설거지하기, 학교 준비물 챙기기, 삼부자 머리 깎기...
아내가 하는 대표적인 일이다.
나는 아내의 노동을 높이 산다.
돈으로 환산하면 월 300은 훨씬 넘을 터이니.
나는 아내에게 적대적이 아니다.
그런데 탈이 났다.
일요일 오전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음의 평화에 금이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간밤에 비가 내렸고 아침이라 날씨는 비교적 선선했고, 거실 식탁 위-나는 서재가 없다-에서 노트북을 끼적이고 있을 때였다.
말린 빨래를 개키던 아내가 갑자기 덥다며 딸에게 선풍기를 자기 쪽으로 켜 달라고 한다.
내 쪽을 보고 있던 선풍기를 가져가며 딸이 아빠는 선풍기 없어도 되냐고 묻자 아내가 대신 대답한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이 더울 일이 있나?"
"……."
의문의 1패는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아무 일도 안 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말이다.
아이들도 아무도 자기 엄마 일을 거들어주지 않는다.
외벌이인 주제에 모처럼 토, 일요일 일하러 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글 놀이나 하고 자빠진 내 꼴에 아내가 저리도 마음이 상했을까 싶다.
마치 엄마가 잘못한 아이에게 하듯, 가족 간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비난'을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내뱉고야 마니까.
글쓰기로 전업을 꿈꾸는 내가 만약 책을 발간한 적이 있고 인세 수익이 현실화된 당당한 작가였다면, 거실 탁자가 아닌 서재에서 폼 잡고 글을 썼다면 대우가 달라졌을까?
늘 그렇듯 가족이나 식구끼리는 사과의 말을 하지 않는다.
가족 간에는 너보다 내가 먼저라고 여기나 보다, 아니면 자존심 때문이려나.
한데 그 자존심이 가족에게는 상처이고, 외부인에게는 경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기본에 충실하기만 하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 안에 회복탄력성이 어느 정도로 큰지 시험해 보고 싶을 정도이다.
저녁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