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세 아이 육아기
뜬금포가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이나, 간호사도 아니고 의사는 더더욱 아닌 아내가 며칠에 한 번씩 나이트(병원당직)를 뛴다.
아이들 외할머니가 대수술 끝에 입원하여 외할아버지, 이모, 외삼촌과 돌아가며 간병 중이다.
아직 어리디 어린 막내둥이가 문제다.
아홉 살이니 다 키웠네라며 무슨 문젯거리냐고 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가리느까-뒤늦게-분리불안증이라도 찾아온 걸까?
유난히도 '애미상'(배우들에게 주는 그 상 아님)-어미상-을 밝히는 막내는 아내가 없으면 몽유병 환자처럼 자다가 일어나 흐엉흐엉 하며 돌아다니기 일쑤다.
(더위에 독자들 시원하라고 쓰는 호러물 같다.)
아빠도 5일에 한 번씩 야간 당직을 하나 엄마의 부재는 아빠와는 차원이 다른가 보다.
월요일, 온종일 떼쓰는 아기처럼 뭘 자꾸만 해 달라고 조르는 직장 사람들과 일에 지칠 때쯤 아내로부터 연락이 온다.
'여보, 나 이제 병원 가야 돼. 몇 시에 마쳐?'
미리 만들어 둔 반찬 몇 가지를 소개하며 아내는 출근(!)했고, 집에 휴대폰도 없이 혼자(?) 남아 있을 막내 생각에 급발진으로 귀가했는데...
가관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집에 오니 그날따라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와 둘째, 셋째가 선풍기 하나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먹다 남은 햄버거 봉지, 차가운 사이다 병에서 흘러내린 물, 출처를 알 수 없는 알록달록한 각종 부스러기들...
아무도 없이 막내 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남들은 다 기다렸다가 가는 소나기마저 뚫고 달려온 터라 허탈하기까지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잔소리는 접기로 하고, 아이들 저녁밥을 챙긴 다음에 첫 잔의 시원함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희열도 잠시, 내일의 걱정보다 오늘 아내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인다.
'여보, 제발 돌아와 줘.'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