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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Jan 07. 2023

저녁의 성대한 만찬을 위해 걸었다

올레시장(여행 4일 차)

2021년 12월 23일, 그림일기


딸과 함께 법환 바당을 빠져나오는 조용한 골목길 끝에 너른 공터가 있었다. 그곳엔 흰말이 한 마리와 돌담 밖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손바닥에 귤로 그 말을 부르고 있었다. 처음엔 못 본 건지 무심히 서있던 말이 귤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왔다. 걸음걸이와 달리 그 말은 돌담 밑에선 꽁지발을 하고, 미어캣처럼 어디까지 목을 빼서는 귤을 받아먹었다. 멀리서 볼 때 그 말의 모습은 안달 난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보니 말의 눈이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먹을 거에 안달 난 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 한참을 구경했다. 우리도 말에게 귤을 주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귤도 당근도 없고, 있는 것은 커피사탕이 다여서 하는 수없이 말을 뒤로한 채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12월의 제주에선 노란 유채꽃들을 간간히 보았다. 특히 울트라마린 색의 바다와 노란 유채꽃 그리고 검은 현무암의 돌담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근사했다. 연신 이쁘다를 감탄하며 걷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저 멀리 산 하나가 보였다.

"저거 혹시 한라산이가?"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딸에게 물었다. 딸은 센스 있게 카카오맵을 켜서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 맞춰보더니 "한라산 맞아."라고 한다.

아주 먼 거리라 비록 산봉우리만 겨우 보았지만 그래도 한라산의 정기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딱딱한 아스팔트 길이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오랜 시간 딱딱한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은 무릎관절에 좋지 않다고 한다 )  


그날 마지막 일정은 숙소에 짐을 풀고 천지연 폭포와 올레 시장이었다.

사실 천지연 폭포는 예전에 가서 별 기대가 없었지만 숙소와 가까워서 간 것이고, 우리 모녀의 야심 찬 계획은 올레시장이었다. 부산 친구 중에 천지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 천지연 폭포를 왔으니 사진을 찍어서 톡으로 보냈다. "뭐꼬?" 논술을 가리키는 친구는 쉬는 시간인지 바로 칼 답이 왔다. "ㅋㅋ딸과 여행 중. 천지연 폭포에 옴." "팔자 좋은 아지매, 몸 조심하고 여행 잘해라 ㅎㅎ" 친구의 응원을 받고 천천히 천지연 폭포를 감상했다. 폭포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동네를 산책하듯 천천히 돌아보고 나오는 길, 천지연 폭포 주차장에서 마주 한 분홍빛 노을은 사실은 천지연폭포보다 더 감동을 주었다.


올레 시장 근처에 이중섭 미술관이 있었다. 딸은 작년에 왔었다면서 (당시엔 백신 2차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은 관람제한이 있었다) 내가 관람하지 못하는 것을 나보다 더 아쉬워했다.

물론 아쉬웠지만 우리의 저녁을 빛내줄 올레 시장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큰 고민 없이 발길을 돌렸다.

4일을 걷는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올레 시장에 다 있었는 가보다. 활기가 넘치는 올레 시장에서 한 팩에 만원 하는 회를 두 접시 사고, 떡볶이, 오메기떡, 김밥을 사서 숙소로 왔다. 이건 뒷얘기지만 사실 우리 모녀는 도보로 제주 한 바퀴 걸으면 당연히 살이 2~3킬로그램은 쉽게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끝내고 집 와서 몸무게를 재곤 깜짝 놀랐다.

2~3킬로그램이 빠지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1킬로그램이 더 불어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하루에 25000보를 걷고, 아침과 점심을 간단히 먹어도, 성대한 저녁의 만찬을 먹으면 건강한 돼지가 된다.ㅎㅎ. 혹시 다이어트를 결심하신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몸소 체험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립니다. 다이어트는 무조건 운동보다 식사량이란 걸 제 몸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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