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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Aug 25. 2023

추위 앞에 장사 없다

신부 어깨너머로 보이는 바다

한라산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월정리. 우린 그곳을 향했다.

그러나 겨울바람이 너무 거셌다. 월정리 바닷가에 도착했을 땐 모래와 바람이 만나 소용돌이치고.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 걷기로 한 계획은 도저히 실행에 옮길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하늘의 구름들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모여지고 또 흩어지고, 아직 서울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름 쇼. 

주인공은 구름이지만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것은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바람이었다.


이솝에 나오는 해님과 바람의 내기 이야기를 다들 알 것이다. 정말 우린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맞서 두꺼운 롱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단추를 잠그고, 모자 끈까지 바짝 조였다. 

그러나 추위와 별개로 바닷색감은 왜 그리 아름다운지. 기온을 내어주기 싫지만 자꾸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로 인해 얇은 마스크를 통해 벌린 입 안으로 차고 시린 바람이 슝슝 들어왔다.

그렇게 조금 걸었을까, 바다를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월정리 바다, 2021

바다색이 정말 예쁘긴 하지만 그래도 그날은 12월 26일이었다.

인생에 아주 중요한 사진이라지만 그래도 어깨를 다 드러낸 신부를 보는 순간 얼굴이 찡그러졌다. 


" 너무 춥겠다." 

" 그러게. 롱패딩을 입은 우리도 이렇게 추운데..."

" 엄마는 내가 저렇게 한다면 어쩔 거야."

" 인생의 한 번뿐인 웨딩사진이라지만 저건 아니지."

" 단호하네. ㅎㅎ "

" 결혼사진만 보면 추워서 덜덜 떨었던 기억 밖에 안 날 걸 같다."

" 정말 이쁘긴 한데, 겨울엔 결혼은 안 해야겠다."

" 그나저나 신부가 몸살은 안 걸려야 할 텐데..."


보지 않아도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은 신부의 시린 어깨 때문에 갈길이 바쁜데도 자꾸 눈길이 그들에게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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