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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Sep 04. 2023

도보 여행에서 주의할 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며는 못 노나니~

첫째는 무조건 체력이 있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여행을 준비하기 그 이전부터 하루 만보를 걷고 있었다. 내 걸음 수가 255,345보(步)를 8로 나누면 적어도 하루 3만 보. 그러니 하루 만보 가지고는 턱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니 처음은 하루 7 천보로 시작하더라도 점점 걸음수를 올리고, 여행 시작되는 시점에선 적어도 하루에 걸어야 할 목표 걸음 수에 근접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큰 변수가 없고, 변수가 있다 한 들 방법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스스로의 건강을 과신하면 안 된다. 여행 전까지 234킬로미터를 하루에 30킬로미터로 잡고 걸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물론 조금은 힘들걸 알았고 그래서 그에 대한 계획과 대비책도 나름 철저히 준비했다.

그러나 도보 여행 이튿날 마지막 코스에서 발을 더 이상 땅에 디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한의사가 내 발 상태를 보고, 더 이상 무리라며 도보 여행을 만류했다. 만약 끝까지 도보를 고집했었다면 절대 제주 한 바퀴는 돌지 못했을 거다. 물론 잠깐씩 탄 버스 때문에 양심이 조금은 찔리는 구석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선택은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8일간 아스팔트 길을 걷게 된 걸 알게 된 지인은 무릎관절이 아작 안 난 것만으로도 천운인 줄 알라고 했다. 아파보면 건강한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2021. 그림일기

셋째는 혼자 걷는 것도 좋다. 단 위험하지 않다면 말이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 혼자보다 둘이어서 더 좋았다. 제주 한 바퀴는 딸이 원해서 간 도보 여행이었다. 그래서 딸의 배려를 엄청 받았다. 걸을 때 기다려주고, 먹을 거 마실 거 챙겨주고. 밤마다 발 마사지와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완주 도장까지 찍고 택시 타고 간 마사지 숍 비용까지 계산했다. 평소에도 근육들이 잘  뭉치는 타입이라  마지막 날 마사지를 안 받았으면 다음 날 긴장이 풀려서 하루 종일 잠만 잤을 것이다. 그러니 특별한 일(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거나, 독립심을 길러야 하는 일 등등)만 아니라면 두 세명과 함께 걷기를 추천한다. 단 서로 배려하고 돌봐줄 수 있는 관계의 사람들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이라기보다 도보 여행의 좋은 점을 잠깐 말하려고 한다. 사실 체력만 받쳐주면 이 보다 좋은 여행은 없다고 생각한다. 발이 아프고, 등에 맨 배낭이 무거워 힘든 것 빼고는 모두가 좋았다. 차를 타고 갔으면 대충 수박 겉핥기처럼 지나갔을 공간과 장소들이 하나의 의미로 오래도록 각인되는 경험은 이제까지의 여행을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무리한 도보 여행은 안 되겠지만.

지인이 제주를 네다섯 번 방문해서도 보지 못한 풍경을 우린 도보 여행이었기에 우연히 보게 되는 행운도 따랐고(물론 시기도 맞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관광도시 제주가 인정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이 여행에서 나의 작고 오래된 계획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30여 년 전, 나는 할머니로부터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웃으면 딸을 낳는다는 속설을 들었다. 그러니 절대 웃지 말라는 말과 함께.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이란 게 얼마나 정신없는 일인가. 나는 그 와중에도 할머니의 말을 새기며, 몸은 힘들고 지치고 떨림에도 미소를 잊지 않았었다. 친정식구들은 결혼하는 게 좋아 웃는 줄로만 알고 서운해했고, 시댁에선 신랑이 얼마나 좋으면 신부가 저렇게 웃을까 하고 오해했지만, 나의 작은 바람과 계획은 오직 딸을 낳는 것이었다.

그렇게 원했던 딸을 낳고, 그 딸이 성인이 되고 함께한 도보 여행. 집에선 아직까지 내 손을 거치고 챙겨야 할 자식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선 자기보다 먼저 엄마를 배려하고 챙기는 기특한 딸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여행은 의미가 있었다. 


덤으로 또 하나.

어릴 적 할머니가 즐겨 부르신 노래 중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며는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그땐 이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다음엔 또 언제 여행을 가게 될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젊을 때, 체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시 도보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물론 그때는 더 철저히 준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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