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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쌀한 포도밭의 추억

by 읽는 인간 Jan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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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일을 좋아한다. 과일만큼 세상을 풍요롭고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있을까? 내가 장을 볼 때  우선순위는 단연 과일이다. 제철과일을 종류별로 사다 냉장고를 채우면 풍요와 행복의 느낌이란 바로 이런 거지 싶다. 과일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고  무미건조할까? 거의 모든 과일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포도이다.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보랏빛의 잘 익은 포도는 보기에도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고 향기롭다. 요즘엔 마트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다양한 국적의 포도를 볼 수 있다. 레드 글로브, 블랙 사파이어, 샤인 머스켓, 크림슨 등등 생소하고 이국적인 이름을 가진, 색깔과 크기와 가격대가 제각각인 포도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먼 나라로부터 수입되는 포도는 역시 신선도가 떨어지고 뭔가 제 맛이 안 난다.  몇 해 전부터 샤인 머스켓이 고가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대놓고 너무 달기만 한 이 프로 부족한 맛이다. 포도는 역시 새콤달콤하고 신선한 국산 캠벨이 제대로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도밭이 있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걸어서 이삼십 분 거리 정도였을 것이다. 해마다 여름이 절정에 달해 포도가 익을 때면  우리 식구는 포도밭 나들이를 가곤 했다. 집에 있는 양동이와 바구니, 소쿠리,  바가지를 비롯해서 포도를 담아 올 수 있는 용기를 뭐든지  일인당 하나씩 들고 일곱 식구가  한여름 땡볕에 골목길을 따라 포도밭까지 걸어갔다. 지금이라면 그런 행렬이 뭔가 이색적인  구경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엔 식구들 중 누구도 그런 자각은 없었던 듯하다.  포도밭에 도착하면 우리는 포도를 직접 따서 갈증을 달래고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나서, 각자 가져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그릇에 포도를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가져온 포도 중에 이삼일 먹을 만큼만 남기고 엄마는 포도주를 담그셨다. 커다란 항아리에 송이에서 따낸 포도 알을 넣고 설탕을 뿌려 지하실에 두고 숙성시켰다. 추석 무렵이면 포도주를 맛볼 수 있었다. 포도주가 익으면 엄마는 아직 어렸던 우리들에게도 맛을 보게 해 주셨다. 내 기억 속의 포도주는 아주 달콤하고 향기롭고 살짝 아찔하기도 한 금기의 맛이었다. 술을 못 드시는 엄마가 아마 당신 입맛에 맞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포도주를 담으셨던 것 같다.


우리의 포도밭 나들이는 매년 팔월 15일이나 16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교사였던 아버지의 월급날이 15일이었기 때문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그렇게 많은 양의 포도를 사는 것은 아마 월급날이 아니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포도밭 나들이를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는 드디어  아버지의 월급날을 맞아  온 식구가 다양한 용기를 챙겨 들고 포도밭으로 행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포도밭에 도착한 우리는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이게 웬일인가? 포도나무에 포도는 하나도 없고 빈 덩굴과 가지만 달려있는 게 아닌가? 포도밭주인에 따르면 그해에는 포도철이 예년보다 빨라 이미  포도를 수확해서 다 팔고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포도 대신 아쉬움과 실망감으로 가득 찬 그릇을 덜렁거리며, 갈증과 더위에 지쳐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와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포도밭 나들이었다. 그때의 실망감이 너무 커서 더 이상 포도밭 나들이를 가지 않았는지 그 지역이 개발되어 포도밭이 없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쓸쓸한 헛걸음이 포도밭 나들이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다.


 내가 훗날 성인이 되어서 맛본 와인은 내 기억 속의 포도주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달콤하긴 고사하고 떫고 낯선 술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와인과 저렴한 와인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와인 무식자이다. 품질에 관계없이 와인을 마실 때마다 그저 이 맛이 아닌데 싶을 뿐이다. 나에게 포도주는, 커다란 질항아리에 포도를 가득 담아 잘 익힌 후, 추석 무렵이면 엄마가 국자로 떠내어 항아리 주변에  둘러 서있던 우리에게 맛을 보게 해 주시던 그 달달하고 설레던 어린 날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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