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을 한다.
동네 친한 엄마 몇명이 어찌 어찌 나의 이혼을 알고, 와인 파티를 해 준 일이 있다.
가로수길에서.
그간의 사정들도 다 몰랐고, 아이 어렸을적 부터 친구라서 그런지, 따뜻한 말로 위로를 해주었다.
나는 거기서
이혼이 축하할 일이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
이혼을 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제는 뭐든 할 수 있는 거다.
그 동안 나를 제약했던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갑자기 배로 늘어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의 경조사가 있고, 문중이 뭔 지도 모르는데, 시제 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5대조부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할머니까지, 온 선산을 돌아다니면서 묘에 가서 절을 했다.
인생이 봉사라고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할 때의 일이다.
20대 만난 그 사람은 40대의 그에게서는 없었고, 그렇게 사랑이 멀어지고 나면, 그러한 모든 형식적인 일들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결국,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을 한다.
모든 걸 다 주고 싶을 만큼 사랑한 사람인데, 이제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다치고 상처 입고, 맨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들어 정신과를 다닌다.
정신과에서 타온 약을 먹으면서 죽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것이다.
아들이 없었다면, 이미 어찌 되었을지 모를 위태 위태한 삶을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 이혼한 것을 혼자 축하해줬다.
그 동안 애썼다고, 너니까 그나마 그렇게 견딘 거라고.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아도 내가 위로 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내 인생의 자랑이었던 사람을 이젠 장애물로 생각하고 지워버려야 하는 일을 시작했으니, 그것이 바로 이혼이라는 형식이지만, 그 일을 해낸 나를 기꺼이 응원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인생 참 거지 같다 라는 저속한 표현은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결코 거지 같지도 않았거나와,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고, 이혼이라는 한 과정을
두고 그나 나의 온 삶을 나락으로 평가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아~~ 나는 성공했구나’ 그 어려운 일을, 이라고 생각한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지겨워 죽겠다고 표현하면서도 그래도 자신을 보살펴 준 사람에 대해 감사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도 안다.
서로 존중하면서 잘 사는 부부들도 많다.
정말 행운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에게는 그러한 행운은 없었고, 나는 이혼을 선택했다.
그래도 축하할 일이다.
다시 새로운 난관과 벽에 부딪히고 좌충우돌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생겼기에 기꺼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