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속도
도쿄 나리타 공항, 긴 줄의 공항철도 발권기에서 미리 준비한 QR코드가 들어먹질 않았다. 나름 도쿄를 자주 방문하면서 여행 스킬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고객센터를 찾았는데 직원 리더기에서도 QR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나는 새로고침을 하고, 티켓을 구입한 여행 앱을 껐다 켜보기도 했다. 직원에게 QR을 보여줄 때마다 나는 뒤를 힐끗거렸다. 줄 서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나도 문제가 생겨 고객센터를 찾은 건데, 빨리 해결하고 빠져주지 못하는 내 상황이 초조했다. 하지만 직원은 단 한 번도 내 화면을 보자거나 재촉하지 않고, 나의 속도를 기다려주었다. 그때 느꼈다. ‘아 맞다, 나 일본에 있지’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지난 여행 때의 QR을 보여준 게 문제였다. 기간이 만료되기도 전에 또 방문해서 나도 헷갈렸나 보다)
<도쿄 큐레이션>을 쓴 이민경 작가는 일본인들에게는 개인만의 속도가 있다고 했다. 와보니 서로가 그 속도를 잘 지켜주는 것이 이 도시의 디폴트 값인 것 같았다. 계산대에서 동전을 가지고 한참 헤맬 때나, 메뉴를 고르지 못해 오래 걸릴 때도 사람들은 웃으며 기다렸고, 아주 걸음이 느린 90대 할아버지가 지나갈 때 함께 걸음을 늦춰주는 사람들 덕에 ‘그래도 될 것 같은’ 특유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일 년 안에 도쿄를 세 번째 방문할 정도로 반하게 된 이유는 아주 사소했다. 다름 아닌 운전 문화다. 사람은 운전할 때 진정한 성격이 나온다는 말도 있잖나. 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어딜 가나 운전 문화에 이상하게 관심이 간다.
도쿄에서는 전기차가 많이 보급되어 도로가 조용한 것도 신기하거니와, 자전거가 함께 달릴 수 있는 정도로 안전하게 운전한다. 일본에 이렇게 자전거 보급률이 높은 건 1) 평지가 많아서, 2) 대중교통이 비싸고 환승이 안 돼서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덧붙여 앞에 자전거가 있더라도 함께 달려줄 줄 아는 운전자들도 한 몫했을 것 같다. 국도에서는 시속 50km, 작은 도로에서는 30km 정도 되려나. 한 사람이 보행자나 다른 차를 위해 잠깐 멈추고 양보한다고 해서 뒷사람이 클락션을 울리는 일도 없다. 뒷사람은 뒷사람 대로 다시 한번 더 양보한다. 한 걸음에 이삼 초는 걸리는 노인이 골목길을 산책하는 걸 봐도, 차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는다.
며칠 후 일본어 학원에서의 일이다. 한창 알파벳과 단어를 익히는 왕초보반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이후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단어를 읽어보라고 하였다. 모두 더듬거렸지만 2초 안에는 대답했는데, 한 학생이 유난히 더뎠다. 민망함에 "잘 모르겠는데"하면서 교과서를 펼쳐 한 글자 한 글자 자음과 모음을 가로세로로 손으로 짚어가며 읽어 내려갔다. "Oh, I have no idea. That's... 히, Okay then, ka, ke, ki, ko, oh, 코, and then 키, Hi, Ko, Ki(비행기)?" 한 단어 읽는데 20초 쯤 지났을까. 선생님은 끝까지 숨죽이고 있다가 그 학생이 대답을 마치고 나서야 "오케, 스바라시(멋지다)" 했다.
새로운 글자, 외국어 단어가 아닌 새로운 교실을 알게됐다. 나는 빠른 교실에 익숙했다. 내가 경험한 교실에선 빠르지 않은 친구들이 있으면 따로 빼내서라도 그 속도를 유지하거나 가속시켰다. 그 시속이 맞지 않으면, 강의 유속을 막는 쓰러진 나무처럼 얼른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가끔은 내가 그 나무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다른 친구들이기도 했다. 그 날 경험한 다른 속도의 배움이 어색했고, 어색함을 느끼는 내가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시속 50km의 도시에서 나와 우리를 돌아봤다.
한 신호 더 빨리 받으려고 엑셀을 살짝 밟아 노란 불을 통과하면서 내가 짜릿함을 느낄 때,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이 놀라지는 않았을까. 지하철 역에서 단체로 속도를 내는 군중들 속에서 우리 할머니는 걸음이 느려 초조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이해가 느린 아이들이 질문할 때 쉬는 시간이 늦어질까봐 눈치를 주진 않았나.
우리는 모두 빠르게 달려야 한다고, 속도가 조금 늦은 사람을 소외시키진 않았나.
뜨끔하는 마음과 함께, 시속 50km의 마음을 서울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때로 행동이 굼뜬 나를 위해, 걸음이 느리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우리 할머니를 위해, 구구단 외우는 게 남들보다 2년은 더 오래 걸렸던 9살 때의 내 친구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