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자전거 피크닉
여행지에서 처음 자전거를 제대로 타본 건 스위스 제네바에서였다. 타고 싶어서라기보단, 타야 해서였다. 칠칠맞지 못한 나는 UN에서 산 기념품을 몽땅 잃어버렸다. 쇼핑도 별로 하지 않는 내가 UN 구경은 일생의 한번 뿐일 거라 생각해 야심 차게 구입한 것들이다. 자전거를 한 대 빌려서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부스러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듯 내가 하루동안 지나다닌 흔적을 따라온 마을을 자전거로 누비고 다녔다. 한두 시간 정도를 수색했을까. 기념품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날 나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자전거의 속력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다.
자전거의 속력으로 달리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작은 티셔츠만 파는 가게라든가, 구석에 있는 작은 빈티지 샵이나 인스타 같은 덴 나오지 않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오래된 카레집의 대문 같은 것들. 지나가다가도 마음에 들면 바로 멈출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P 여행의 몇 안 되는 장점이랄까) 차를 탈 때완 다른 거리감도 생긴다. 걸어 다닐 때는 체력의 한계 때문에 못 봤던 옆 동네 모습이나, 대중교통만 타고 다닐 땐 생기지 않았던 현지 방향 감각 같은 것도 생긴다. 종종 신호 대기에서 만나는 자출(자전거 출퇴근) 크루 사이에 낄 땐, 왠지 로컬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쾌감이 인다.
온 도시가 평지인 도쿄는 자전거 천국이다. 물론 서울의 청계천로나 한강도 자전거 도로가 잘 돼있지만, 여긴 뭐랄까. 우리 집부터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이동수단으로써의 역할까지 톡톡히 한다. 가까운데 환승이 필요한 역이 있을 때 이용해도 좋다. 도쿄 철도는 환승과 거리에 따라 요금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자전거를 타면 비슷한 가격에 새로운 동선을 맛볼 수 있다.
#1.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경로는 숙소인 하타가야부터 요요기까지다. (내리막인 이유도 한몫한다.) 특별할 건 없지만 서울 사람들이 한강 치맥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 혼자 도쿄 피크닉을 해보는 거다.
1) 숙소 앞 ‘하타가야’ 역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요요기 지역에 간다.
하타가야에서 요요기까지는 작은 맛집도 많고, 종종 대사관도 있는 아기자기한 사람 사는 동네다.
지나가다 괜찮은 가게가 있으면 잠깐 멈춰 다음에 와야지 하고 지도에 찍어두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참고로 이 지역에 딱히 관광거리는 없으니 단기 여행자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2) 빵집에서 빵을 하나 산다.
하타가야의 선데이베이크, 요요기/토미가야 지역의 365일, 옌센, 르뱅 등.
니시하라의 카타네 베이커리, 이퀄은 시간이 안 맞아 아쉽지만 못 가본 곳.
빵집에 사람이 많다면 멈출 때 꼭 요금을 생각하자.
일본인들의 속도는 한국인과 달라서 예상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3) 빵을 자전거 바구니에 대충 넣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공원 근처에서 자전거를 반납한다.
4) 공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하나 사서 공원에 가서 먹으며 핸드폰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조금 걸어야 하지만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오쿠 시부야 지역 카멜백, 후글렌을 들러도 좋다.
입구에 좀 더 가까운 맛있는 카페는 버브 커피, 리틀냅 커피스탠드.
#2
시부야 뒷골목이나 히비야 같은 화려한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색다르다. 형형색색의 전광판과 수많은 사람들을 제치며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면 탁 트인 광경이 자전거의 속력으로 다가온다. 기분 좋은 바람은 덤이다.
#3.
롯폰기에서 시바공원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 도쿄타워를 볼 수 있다. 어디를 지나는지도 잘 모르다가 뜻밖에 멀리서부터 도쿄타워가 빼꼼하고 얼굴을 내미는데 꽤 사랑스럽다. 차에서 느껴보지 못한 전면 파노라마 뷰가 다가온다.
도쿄는 어딜 가나 자전거와 자전거 보관함이 넘쳐나는 도시니 어딜 가도 좋을 거라 장담한다. 지역 이름에 '야마(산, 언덕)'가 들어가는 곳만 빼면 대부분이 평지다.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 복잡하거나 자전거 도로 위 불법 주정차가 많은 지역, 자동차 도로가 이어져 아주 큰 도로는 위험하니 '고 주의 쿠다사이(주의하세요)'. 신주쿠나 시부야는 역 중앙에서 시작하는 것은 비추. 사람이 좀 잠잠해지는 구역에서 타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어딜 가나 아이를 태운 육아 라이딩, 아침 직장인들의 출근 라이딩을 볼 수 있다.
짱구 엄마 미선의 자전거 라이딩은 만화적 표현이 아닌 도쿄 사람들에겐 한평생 함께하는 친근한 풍경이다.
(왼) 오전 6시 바다로 출격하는 후지사와 서퍼의 자전거 (가운) 멋진 시모키타자와와 라이더 (오른) 요요기 육아 라이딩과 우연히 찍힌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