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 실패 없는 여행이 주는 쓸쓸함
듀오링고라는 언어 학습 앱은 아주 지독하다. 지겨울 만큼 반복 학습하도록 설계돼 있다. 도쿄에 오기 전, 옆에서 며칠간 내 학습을 엿듣던 동생은 "그 나오미 아직도 인사하냐"고 물을 정도였다. 지난 주 나의 듀오링고 주제는 위치를 묻는 문장이었다. 일본어 답게 예문도 ‘콘비니와 도꼬데스까(펀의점은 어디 있습니까)’다. 반복 학습으로 드디어 여러 위치를 묻는 구절들을 며칠에 걸쳐 정복하고 단원 트로피도 받았는데, 씁쓸하게 현실에서 쓸 일이 없다.
우리에겐 ‘구글맵’이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홍콩으로 처음 혼자 해외여행을 갔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디스 이스 홍콩’같은 가이드북을 한 권 사서 맛집과 교통편을 체크하고, 부록으로 달린 지도를 펼쳐서 길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현지에서는 맛집 목적지가 하나 생기면 거길 제대로 찾아가기까지 사람들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페닌슐라 호텔 가나요?’ 버스 기사님한테 물어보고, 기사님이 신호주면 내린다. (방송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도착역에서 가만히 있으면 백미러로 나를 보며 내리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가장 현지인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는데, 그걸 두어 번 반복해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한 번은 그렇게 찾아가 놓고도 블로그에서 ‘꿀팁’을 꼼꼼히 챙기지 못했는지, 호텔 레스토랑 드레스 코드를 맞추지 못해 입장하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이제 모든 게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졌다. 로밍이니 이심이니 하는 신 문명으로 공항 내리는 즉시 '정보의 바다'로 풍덩 빠질 수 있다. 구글맵으로 길을 찾고, 리뷰를 보며 맛집을 찾고, 파파고로 실시간 통역까지 가능하다. 이토록 정보가 충만한 여행이라니. 가장 좋은 것, 제일 빠른 길, 가장 편한 것을 즉각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주 편하다. 완벽하다. 부지런만 하다면 실패란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게 가끔은 아쉬움이 몰려온다. 최소한의 의사소통만으로 여행이 가능하고, 여행에서 실패는 경험하지 않는다. 시부야 거리에는 모든 여행자들이 45도 각도로 고개를 떨구고 스마트폰을 응시한 채 걸어 다닌다. 가끔 길을 물어보면 여행 왔냐며 너스레를 떠는 사람 덕분에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하고, 손짓발짓 해가는 현지 할아버지 맛집 주인에게 반하거나, 현지인이 쌀쌀맞은 표정으로 귀찮아하면 상처받기도 하는 ‘글로벌 상호작용’을 더 이상 경험하기는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찾아보지도 않고 간단한 질문을 했다간 자기 일 하나 제대로 못하는 '핑프'(핑거 프린세스, 손가락이 공주님이시다라는 다소 철 지난 유행어)로 비치진 않을까 으레 걱정한다.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질문해야 할 땐 상대방이 의아하지 않도록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묻는 것"이라고 첨언하며 나를 핑프화 되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 물론 이 마저도 보조 배터리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슬프지만 ‘콘비니와 도꼬데스까?’라는 말은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예정이다. 구글은 지금도 초 단위로 나를 안내한다. 이따금 실내에서 ‘토이레 도꼬데스까?(화장실은 어디입니까)’ 정도로 변형해서 쓰는 수밖에.
아, 물론 대답을 알아듣는 것은 별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