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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테의커피하우스 Jun 01. 2023

아 클래식이여

학림다방 - 명륜4가동

학림다방,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119 2층
키워드: 클래식 음악, 60년 전통, 핸드드립, 비엔나커피




들어가는 말


처음 학림다방에 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날은 매우 무더웠고 더위를 피해 들어갈 곳이 필요했다. 당시 동행한 지인이 데리고 가 주었는데 입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소파가 보였고, 그곳에서 대기하는 인원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점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대기 시간이 있을 것 같다며 내점을 원한다면 소파에 앉아 기다려 달라고 말을 걸어왔다. 차분하고 점잖은 느낌의 접객 태도였고 덕분에 처음 방문했던 날, 나는 이곳이 차츰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60년대 바이브


얼마 정도 기다리자 하나둘씩 자리가 생겼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대기줄을 좁히며 가까워지는 순서를 기다렸다. 그동안 실내를 구경했다. 브루잉 스페이스는 손님들이 앉는 좌석을 마주 본 형태로 일자로 나 있었고, 그 뒤쪽에서 점원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주히 그리고 차분하게 일하고 있었다. 제조 공간 옆에는 나란히 캐셔가 있다. 캐셔 뒤쪽에는 산더미와도 같은 엘피판이 선반을 메우고 있었다. 브루잉 스페이스 왼쪽 상단을 보니,  Lp를 얹은 턴테이블이 자박자박 돌고 있었다.


학림다방 입구, 대기하는 소파

사방에는 족히 냉장고만 한 크기의 스피커가 올려져 있는데, 도대체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물건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어 보였다. 좌석은 전부 쿠션 소파였고 테이블은 세월의 흔적을 품을 채 곳곳이 파여 있고 흠집이 나 있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방치된 곳 없이 잘 관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덕분에 이곳만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가게 어느 곳을 보든 시간은 60년대에 머물고 있었다.


대기 시간이 조금 지루해질 무렵, 점원의 안내를 받아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점원은 메뉴판을 가져다주며 주문은 카운터로 직접 와서 할 것, 음료는 서빙될 예정이며 취식하는 시간 이외에는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2021년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르면 실내 음식점 및 카페에서는 취식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필수적으로 착용) 몇 가지 안내 사항을 남기고 사라졌다.


실내는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당시에 우리는 1층 왼쪽 구석에 있는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2층 계단 층계 바닥과 천장을 공유하는 공간이라서 위층으로 사람이 올라갈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다지 쾌적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이곳만의 분위기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첫 방문은 우호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강배전 드립


학림다방의 음료는 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콜드브루 등을 판매한다. 특이한 점은 아메리카노가 핸드드립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사전적 분류로만 따지면 말이 안 된다. 핸드드립은 원두 종류나 농도로 구분해서 표기를 하는 게 이론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원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브루잉 커피 중 가장 연한 농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헷갈리게 왜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붙인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메뉴판에 적혀 있는 레귤러, 스트롱, 로열 블렌드 순서대로 농도가 진하다고 한다.

진하디 진한 ‘스트롱’ 핸드 드립과 카페 모카


핸드드립 메뉴를 시키면 동일한 메뉴로 최대 한 잔 리필이 가능하고 500원의 추가 금액이 붙는다. 커피를 앉은자리에서 두세 잔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 카페는 리필에 너무 인색한 것 같다. 예전에는 커피 한 잔을 시키면 손님의 요청에 따라 한 잔 정도는 리필해 주는 커피 전문점들이 종종 있었는데 말이다. 사견이지만, 학림다방의 리필 시스템은 서울에 몇 안 남은 커피 리필 문화의 역사적 고증에도 그 의미가 있는 듯하다.


학림다방의 핸드드립은 비교적 진한 편이다. 강배전 한 원두가 이곳의 시그니처라서 고소한 맛의 진한 원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블렌드를 마음에 들어 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학림다방에서 커피 메뉴를 시킬 때면 대체로 레귤러나 스트롱 블렌드를 주문한다. 이 음료를 처음 주문하는 사람이라면 예상하는 것보단 족히 1.5배에서 2배는 진한 맛의 음료가 나올 테니, 기호에 맞게 주문하는 것이 이롭다. 다른 곳에서 마시던 드립 커피보다 훨씬 진할 것이다. 물론 강배전 한 원두를 진하게 내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블렌드 음료는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니, 어쩌면 깜짝 놀랄 만큼 맛있을 것이다.




파르페와 비엔나 라테


디저트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곳에는 파르페와 치즈케이크 두 가지 디저트 메뉴가 있다. 파르페를 디저트로 분류하는 것은 순전히 나만의 구분법이다. 아무리 봐도 음료로 구분 짓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받자마자 음용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클래식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파르페를 먹는 일방적인 방식은 (이라고 했지만 세간에 정해져 있는 룰은 없다.) 위쪽에 놓여 있는 생크림과 아이스크림을 떠먹다가, 중간에 놓인 시리얼들을 건져 먹는 것이다. 그리고 맨 아래 칸에서 찰랑거리며 본인의 존재를 희미하게 드러내는 정체불명의 소다를 이따금 홀짝이며 마신다. 생크림과 아이스크림이 섞이고 점점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수저로 섞어서 먹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맨 아래 칸의 소다를 마시는 사람의 숫자는 적을 것이다. 파르페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쪽부터 먹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림다방의 파르페를 꽤 좋아한다. 이 디저트 하나를 먹기 위해 여기까지 가는 것은 아니지만, 커피 음료를 먹고 싶지 않을 때나 단것이 당길 때면 어김없이 파르페를 선택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파르페는 그 형태와 맛이 매우 고전적인 측면이 있다. 무엇 하나 현대적인 느낌이 없다. 위에 뿌려진 초콜릿 시럽마저 과거의 맛을 구현해 낸 것 같다. 학림다방의 파르페는 90년대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돈가스를 먹은 이후에 디저트로 먹던 과거의 그 맛을 구현한다.


왜 시그니처 메뉴인지 알 것 같은 비엔나 커피

대다수가 학림다방에 오면 이곳만의 시그니처 메뉴인 비엔나 라테를 시킨다. 나도 한번 먹어본 적 있는데 왜 다들 시켜 먹는지 알 것 같다. 달달한 라테에 부드러운 생크림이 올라간 메뉴라니, 좀처럼 싫어하기 힘들다. 평소에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달콤한 시럽이 들어간 라테를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좋아할 것이다. 나이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메뉴다. 특히 이곳 대학로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이라면 (중년 이상의 어른들은 더욱..) 이곳의 비엔나커피가 그들만의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 난 중년도 아니고, 대학로에서 20대 시절을 보낸 추억도 없지만 왠지 그들에게는 이 커피 한잔이 의미하는 바가 매우 뜻깊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마무리하며


학림다방을 방문하는 건 대체로 오후 4시쯤의 일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소화를 시킬 겸 동대문 근처를 배회하다가 낙산 공원에 올라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를 관망한 뒤 이화동 뒷길로 내려온다. 그렇게 긴 산책을 하다가 대학로에 도착하면, 어느덧 시간은 4시를 향하고 있다. 적당히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때쯤 대학로 KFC가 있는 건물 맞은편에 학림다방이 저 멀리 보인다. 그때면 나는 어김없이 이곳에 들어가고 싶어 진다. (만석인 경우, 잠시 고민하겠지만) 대기줄이 길지 않다면 한두 팀 정도는 기다릴 용의도 있다. 그렇게 나는 과거 안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클래식함이 주는 멋과 향미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선물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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