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로사 광화문점 - 중학동
테라로사 광화문점, 서울 종로구 종로 1길 50 더케이트윈타워 B동 1
키워드: 핸드드립, 시즈널 원두, 브런치, 넓은 공간
중학동에 있는 테라로사에 자주 가던 때가 있다. 인사동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걷다 보면 연합 뉴스 건물이 보이는데 그 반대편 건물 1층에 있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갈 때마다 늘 사람이 많다. 특히 주말에는 커다란 매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빼곡하다. 역시 좋은 것은 모두에게 좋은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공을 들인 느낌이 든다는 데 있다. 커피 맛, 손님 응대, 공간의 안락함, 메뉴판과 상품의 배치, 어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없다. 모든 요소에서 평균 이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점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내 기준에서 봤을 때 이곳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잘 관리된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전국에 약 스무 개 남짓한 매장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단단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잘은 몰라도 대표의 철학이 올곧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테라로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핸드드립'이다. 에스프레소 음료를 메인으로 다루는 일반적인 카페와 다르게 이곳은 핸드드립 메뉴를 주력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쭉 보다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메뉴의 왼편부터 약 10가지 종류의 핸드드립 메뉴가 쭉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약 대여섯 개의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이 보인다. 손님들에게 핸드드립을 먼저 권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핸드드립을 메인으로 취급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핸드드립이 연상된다. 원하는 원두를 골라서 드립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메리트다.
중학동 카페로사에서 핸드드립 메뉴를 주문하면 카운터 너머로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일부로 단을 낮고 투명하게 설치해 둔 섬세함이 엿보인다. 커피 서버와 머그컵을 데우는 워머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진다. 브루잉하는 곳 근처에 앉으면 내가 주문한 커피를 제조하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차곡차곡 쌓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작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어쩐지 기분이 좋다. 많은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라 대체로 주문이 밀려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정갈하게 음료를 준비하는 정성이 돋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구경을 하고 있다 보면 이내 커피가 준비되어 진동벨이 울린다.
핸드드립을 시키면 고딕풍의 클래식한 티세트에 담겨 나온다. 요즘은 인기가 많이 식은 듯하지만 예전에는 집마다 찬장에 몇 개씩 세트로 구비해 둔 영국제 도자기를 연상시킨다. 컵의 무게는 가볍고 입에 닿는 면적은 좁아서 드립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두께가 얇아서 커피의 온도가 빨리 식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10분 내로 즐긴다면 상관없다. 모든 컵에 똑같이 음료를 담아 주지 않는다는 차별성을 둔다는 점에 감사할 뿐이다.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묘하게 고집스러움을 가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커피와 같이 대중과 마니아가 공존하는 분야일수록 이 고집은 더 눈에 띄게 드러난다. 손님의 취향이나 선호도와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하기에 그 차별성이 돋보인다.
핸드드립이 아닌 메뉴는 두껍고 하얀 머그컵에 담아 준다. 핸드드립과는 다르게 조금 투박해 보이지만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은 그 편이 더 어울린다. 머그컵 손잡이 부분과 입에 닿는 부분의 촉감도 어딘지 모르게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디자인에 많이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시즈널 원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겨울에 한정적으로 판매하는 ‘윈터 솔스티스'다. 동지의 영어 표현인데 처음 구매할 때 기억이 좋아서 여전히 좋아한다. 점원분이 겨울에 마시기에 좋은 블렌딩이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실제로 어딘가 모르게 스모키 하면서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이 겨울 아침과 어울리는 맛이었다. 원두 포장 패키지 디자인도 눈사람이 그려져 있어서 마음을 간지럽히는 구석이 있다. 그 외에도 계절에 맞춘 다양한 시즈널 원두를 소개한다. 지금은 시기가 가을이라서 ‘단풍 블렌드'를 소개하고 있다. 말린 무화과와 메이플 시럽의 향을 담았다고 한다. 단번에 가을을 연상시키는 원두 향미다.
이곳을 자주 드나들던 때, 내점의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던 건 다름 아닌 브런치 서비스였다. 지금은 아쉽게도 종료되었지만 (광화문 테라로사, 2022년 3월부로 브런치 서비스 종료) 당시에 이곳에서 제공하던 브런치 메뉴는 정말 훌륭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제공하는 브런치 서비스는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인기가 좋았다. 이 시간대는 카페 내부가 늘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기억이 있다. 인근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직장인, 소규모 모임을 하러 나온 중년의 신사숙녀들 그리고 나 홀로 브런치를 먹기 위해 나온 싱글족까지 손님의 색채는 다양했다.
이미 끝나버린 브런치 서비스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글까지 쓰고 있는 건 메뉴들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기 때문이다. 식사 때마다 약 대여섯 가지의 메뉴가 준비되는데 이중 내가 3~4개를 고르면 접시에 담아 주는 방식이다. 커다란 뷔페용 팬트리에 음식이 가득 담겨 있고, 정성스레 만든 그 음식들을 눈으로 보고 직접 선택해서 골라 먹을 수 있다니. 왠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국 고등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재미있었다.
음식은 자연의 소재를 최대한 활용한 깔끔한 맛이 났다. 재료와 조리법에 공을 들인 듯한 티가 역력히 났다. 브런치 메뉴에 음료를 포함할 수 있는 옵션이 있었는데 그러면 오늘의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마실 수 있어서 그 조합 역시 놓칠 수 없었다. 강릉 본점에서는 여전히 브런치 서비스를 제공 중이라고 하니 근처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테라로사는 매장 내부가 드넓고 시야가 막혀 있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모든 매장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내점 했던 매장들은 전부 층고가 높고 공간이 탁 트여 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있어도 답답하거나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적었다. 테이블 배치도 너무 붙어 있거나 떨어져 있지 않고 균일하게 놓여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통일감이 있고 손님과 거리감을 적당히 유지하고 있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톤에 위배되는 요소들이 적다. 소품들은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색채는 하나의 정수를 잃지 않고 있다.
예전에 테라로사 강릉 본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건물의 붉은색 톤의 벽돌이 먼 나라에 있는 사원을 연상시켰다. 내부는 차분한 톤의 나무를 배치해 두어서 안락한 느낌이 강했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도 특색이 있었다. 1층과 2층이 마치 커다란 광장을 이어 붙인 것처럼 드넓게 배치되어 있었다. 공간을 최대치로 활용한 듯한 인상이었다. 주문하는 카운터 근처에는 커다란 장식장이 있고 다양한 원두와 커피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손님들이 오가는 동선이 편리하도록 섬세하게 배려한 공간 배치가 눈에 띈다. 내외부 인테리어는 중학동 테라로사에서도 비슷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어딜 가든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도록 신경을 썼을 것이다. 고유한 색채를 잃지 않기 위해 들여야 했을 노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테라로사는 광화문 근처에 들를 일이 생길 때 늘 생각나는 카페 중에 한 곳이다. 분위기도 한몫하지만 무엇보다 커피 맛이 훌륭하다. 스페셜티부터 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까지 뭐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다. 그 외 메뉴들도 개성이 있고 품질 역시 고르다. ‘오늘은 별로네’라고 느꼈던 적이 없다. 다양한 부분에서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의미다. 손님 응대, 위생, 맛 등에 있어서 퀄리티 컨트롤에 엄격한 편인 듯하다. 또한 그것이 바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어서 12월이 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두인 ‘윈터 솔스티스'를 맛보러 가고 싶다. 간 김에 원두도 한 패키지 사 와서 아침에 핸드드립으로 내려서 먹으면 근사할 것 같다.
사는 게 아무리 바빠도 절기를 챙기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면 어쩐지 조금은 특별한 기분이 든다. 심지어 내가 마신 원두의 이름이 절기인 경우에는 그 특별함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계절의 변화는 온 우주를 지배하고 있고 모든 생명체에 골고루 적용된다. 그렇기에 절대 피해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에 예외 없이 적용되지만 그 사실이 ‘언어'로 통용된다는 건 어딘가 모르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는 인간이 참 흥미로운 것 같다. 우주의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심지어 원두의 이름으로도 활용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