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테의커피하우스 Nov 05. 2023

달콤 쌉싸름한 선율

펠트커피 광화문점 - 청진동


펠트커피 광화문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3길 17 B2
키워드: 묵직함, 라테와 플랫화이트 맛집, 쌉쌀한 단맛



들어가는 말


진하고 쌉쌀한 맛의 따뜻한 라테가 당기는 날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비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을 때 라테가 생각난다. 혹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어김없이 고소한 맛의 뜨거운 라테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이럴 때 생각나는 카페가 한 군데 있다. 바로 ‘펠트커피’다.




은파피아노


펠트커피의 시작은 창천동의 작은 피아노 학원이다. 지금은 광화문에 매장이 두 곳이나 있고, 신사동에도 분점을 차렸다. 하지만 펠트의 시작은 찾아가기도 힘든 창천동의 뒷골목에 작은 피아노 학원을 개조해 간이 형태로 연 매장이다. ‘은파피아노’라는 예전 학원 간판을 떼지도 않고 그 아래에 카페를 열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피아노학원인지 갤러리인지 카페인지 모를 공간에 눈길을 주며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맛과 분위기로 단골을 형성하며 그들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던 어느 해, 나는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 이곳을 떠올리면 선율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은파피아노'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은파피아노 간판을 달고 있던 청진동 펠트커피, (2022년 1월 31부로 영업 종료)



찐득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펠트의 라테

신촌에 이사를 온 이후, 경의선 숲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걷다가 우연히 이곳을 들어갔다. 외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과 달리 내부는 화이트 톤으로 다소 지나치다 싶게 잘 정돈되어 있어 그 대비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커피를 제조하는 공간은 군더더기가 없이 정갈하고, 손님들이 앉는 자리는 테이블이 없이 단출하게 디귿자로 뻗어져 있다. 말 그대로 커피만 즐기러 온 사람에게 ‘마실 공간’을 제공한다는 느낌의 가게였다. 본 적 없는 시크한 인테리어에 한 번 놀라고 라테의 훌륭한 맛에 두 번 놀랐다. 진하고 고소하며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찐득한’ 텍스처의 라테는 이곳에서 처음 맛봤다.




심플한 메뉴


펠트 커피는 메뉴가 심플하다. 약 10개의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과 브루드 커피 그리고 콜드브루가 전부다. 심지어 작년까지는 커피가 아닌 음료 (Non-coffee)를 팔지 않는 행보를 이어왔다. 그야말로 커피 애호가들을 위한 장소를 유지했던 셈이다. 그 외의 대중까지 전부 품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최근에는 초콜릿 우유와 밀크티를 메뉴판에 올리면서 일종의 타협을 이루어낸 듯하다. 납득이 되는 선택이다.


진한 에스프레소가 이곳의 시그니처라서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브루드 커피나 콜드브루보다는 에스프레소 음료를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라테와 플랫화이트가 나의 추천. 평소에 라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곳의 라테는 싫어하기 힘들 정도로 중독적이라 말하고 싶다.


늘 라테만 마시진 않습니다. (사진은 고소한 원두의 아메리카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라테는 스팀 한 우유에 따뜻한 에스프레소 샷을 넣어서 마시는 음료다. 하지만 라테는 제조 방식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비율이 중요한데 어느 정도의 비율로 제조되느냐에 따라 우유맛만 나는 라테가 완성될 수도 있고 또는 쓴맛이 부각될 수도 있다. 비율도 중요하지만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어떤 상태에서 조합이 되느냐도 맛의 관건이다. 너무 높거나 낮지 않은 최적의 온도로 스팀 된 우유를 샷과 조합해야 맛이 겉돌지 않기 때문이다. 펠트의 라테와 플랫화이트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잡은 맛을 구현해 냈다.


달콤쌉싸르한 펠트의 라테


커피 메뉴뿐 아니라 디저트류도 심플하다. 과거에는 곁들일 수 있는 구움 과자와 파운드케이크를 하나씩만 놓고 팔다가 최근에는 그 종류를 늘려서 일반 케이크 종류도 두세 가지 추가되었다. 이 또한 카페의 베이커리화라는 최근 태세에 발맞춰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다수에게는 이러한 종류의 변화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특히 나에게는) 자신이 고수하던 것을 내려놓고 유행에 편승한 듯한 모습으로 비쳐 그다지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여담이지만, 모든 변화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을 거부하며 본인만의 철학을 고수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고집하는 몇 가지와 관련해서는 쉽사리 대세에 올라타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카페에서는 구움 과자와 파운드케이크 정도만 내놓아야 커피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듯하다.




콜링 문화


펠트 커피에서 음료 주문을 하면 영수증에 ‘숫자’를 적어 준다. 이 영수증을 버리면 나중에 메뉴가 나올 때 곤란해지니 버리지 않도록 하자. 이곳의 콜링은 숫자로 하기 때문에 ‘00번 손님’이라고 할 때 허둥지둥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수증에 적힌 번호를 기억하고 있다가 부를 때 받으러 가면 된다. 과거에는 이 콜링 문화에 익숙하지 않던 한국인들이 점차 이에 숙달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요즘은 다수가 카페 문화에 적응한 덕인지 아르바이트생과 손님 사이에 음료를 받아가지 않아서 생기는 실괭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정도로 우리 삶 속에서 커피를 마시고 향유하는 과정이 침투했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레 파생되는 커피 문화들에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무리하며

묵직하고 쌉쌀하며 달콤함이 느껴지는 이곳만의 라테는 라테 마니아라면 한 번쯤은 꼭 먹어봐야 하는 곳이다. 내가 종종 방문하는 광화문점은 오래 머무르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지만 적당히 세심하고 무관심한 듯하여 나름의 매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청계천 주변을 길게 산책할 때 한잔 테이크아웃해서 마시는 것도 추천한다. 흐드러진 풀숲을 곁에 두고 걸으며 계절에 어울리는 온도의 라테를 마시는 상상을 하면 왠지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전 02화 아 클래식이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