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너라서 더 소중해!
수월하게 이뤄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출산은 긴박했다. 갑자기 양수가 마르기 시작한 것이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고, 출산 예정일은 앞당겨졌다. 그렇게 다윤이를 조금 더 일찍 만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다윤이는 건강했다. 조리원 기간을 활용해 나는 아기 침대 위에 걸어 둘 그림을 준비했다. 바로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이다.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아몬드 나무>, 1890.
이 그림은 반 고흐가 막 태어난 조카를 위해 그린 그림이다. 동생 테호는 형의 이름인 빈센트를 따와서 아들 이름으로 정했다. 반 고흐는 너무나 기뻐, 어머니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아기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아몬드 꽃은 진실한 사랑과 희망을 뜻한다. 그리고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는 꽃 중 하나였다. 반 고흐는 아몬드 꽃을 그리며, 조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아몬드 꽃은 4월의 탄생화라고 한다. 다윤이가 태어난 달의 탄생화가 아몬드 꽃이라니!
2.55kg, 출산 후 마주한 다윤이는 정말 작았으나 목소리 하나는 우렁찼다. 손가락과 발가락도 문제없었다. 엄마와 마주한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있는 다윤이의 모습은 상상만 했던 순간이었다. 눈물이 절로 났다. 신비로웠다. 열 달 동안 아내의 배 속에 있던 꼬물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말이다.
아내는 제왕절개를 한 덕분에 고통을 ‘후불’로 지불해야 했다. 침대에 앉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군대와 출산을 선택하라!’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한 듯한 표정으로 ‘군대’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출산은 생명을 건 일이자,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순간임을 알게 되었다.
라파엘로 산치오, <시스티나 성모>, 1512.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에 왔다. 아내와 함께 나섰던 집에, 세 명이 들어온 것이다. 다윤이를 안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시스티나 성모>처럼 빛나 보였다.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답게 우아하며 경이로운 그림이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구름을 타고 있는 장면이다. 그림 속 마리아의 배경처럼, 육아하는 아내의 모습은 고통을 견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aura)가 생겼다. 그렇게 그녀는 어머니가 되었다.
몽테뉴는 “사람이 고통을 알지 못한다면, 동시에 기쁨 역시 줄어들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고통을 알고 나야, 기쁨이 온다. 꽃도 마찬가지다. 겨울을 경험해야 한다. 그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봄이 오고, 꽃을 피운다. 반 고흐가 그린 ‘아몬드 꽃’처럼.
나의 ‘그녀’가 다윤이 ‘어머니’로 되는 순간은 출산이란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으로도 많은 고통이 우리 가족 앞에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순간을 두렵게만 보지 않기로 했다. 기쁨이란 ‘꽃’이 피는 직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