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은 웃는 거야

#13. 소소한 시선이 닿는 순간

by 도슨트 춘쌤

정진아의 <틈은 웃는거야>라는 시가 있다.

‘사람에겐 틈이 있으면 안된다고?

아니, 완벽하려고 하지마...

벌린 입을 봐 미소를 만들잖아 틈은 웃는 거야’


완벽함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빈틈은 죄악이다. 하지만, 나는 빈틈 투성이다. 구멍 난 빈틈을 매우려 애쓰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버린다. 빈틈을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는 게 빡빡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예민해졌다.

또, 나의 틀에 사람을 평가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많아졌다.

완벽이란 허상에 맞추기 위해 나를 혹사한 결과 나는 지쳤고, 힘들어졌다.

빡빡함 속에서 질식사 할 것 같은 날,

보는 그림이 하나 있다.

김홍도가 그린 <주상관매도>는 빈틈의 극치를 보여준다.

56p, 김홍도, 주상관매도, 1806..png

김홍도, <주상관매도>, 1806.




실물로 이 그림을 보면, 빈틈이 더 크게 와닿는다.

길이가 무려 164cm에 달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김홍도는 어떻게 이 큰 종이에 저렇게 많은 빈틈을 주었을까?

이런 궁금증에 김홍도가 쓴 '老年花似霧中看'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김홍도는 이 그림을 늙어서 그린 것이다. '늙은 나이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그의 글 귀 속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이 문구를 보고, 다시 그림을 본다. 강물 위의 작은 배 위에 있는 노인이 보인다. 이 노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이 <주상관매도> 아닐까? 나이든다는 것은 어쩌면, 여백을 두고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하는 힘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 위의 노인처럼, 살다보면 빈틈이 지닌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 말이다. 요즘은 나의 빈틈뿐아니라 타인의 빈틈을 이해하며 사는 것이 삶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빈틈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빈틈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삶을 웃게 만드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수업 중 학생들의 빈틈이 보인다.

그러나 그 빈틈이 틀린 것이 아닌,

성장의 가능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격려 한 스푼,

그 빈틈에 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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