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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것과 진심 사이

by 미니작업실


어린 시절 엄마는 명절만 되면 크고 작은 선물을 사러 같이 장에 나서곤 했다. 엄마는 받을 사람에 따라 정성이 돋보이는 선물, 가볍고 실용적인 선물, 애매한 관계의 선물을 준비하셨다.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고 그저 형식적일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준비한 선물은 받는 사람마다 제각각으로 고마워했고 어쩌다 남는 선물은 또 신기하게 새 주인이 나타나 받아가곤 했다.


또 명절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뵐 때면 그 나이의 나는 수줍음이 너무 많았다. 그 만남을 오롯이 즐기지 못했고 좀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진심이진 않았지만 언제나 반갑게 마주해 주고 즐거워하셨던 할머니의 미소, 할아버지의 손길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추억으로도 유지되지만 그 속 마음을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 모습이 꼭 진심을 다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때의 어색한 형식적인 안부 인사가 지금 생각해 보면 잘했던 것이었다. 형식적으로 갔지만 또 순간순간 진심일 때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진심이 옅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만남 자체로 뜻깊을 수 있고 어떤 만남은 적당한 진심의 농도가 관계를 편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설 명절이 다가왔다. 우리 집에 화초와 새로 데리고 온 아기 햄스터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 몸이 불편해도 아이에게 인사드리러 오고 할머니를 뵙고 사촌들을 만나게 하려 형식을 차려본다. 요즘에는 왠지 옛날 스타일 같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인사치레를 챙겨본다. 때로는 모든 행동에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의 인사를 드려봐야겠다. 아이도 시간이 지나 지금의 기억을 간직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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