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가 되면 매번 다이어리를 샀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을 적곤 했다.
갖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았고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도 참 많았는데 이제는 여건상 달릴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런 건지 내게 소원이 없어졌다. 무기력증이 있긴 하지만 음식을 제법 잘 챙겨 먹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거 같다. 작은 목표라도 적어볼까 수첩을 뒤적였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해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니가드닝을 하면서 햄스터도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정성이 부족했는지 1년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예전에는 그저 떠나고 이별했다는 마음에 눈물이 나거나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빈자리가 느껴져 크게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고양이를 오래 키우고 나이 들어 보낸 경험도 있고 해서 참 눈물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그때 경험이 제법 컸는지 되려 눈물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작은 생명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조용히 빈자리를 지켜주던 반려동물이 사라지자 주인을 잃은 집기들만큼이나 쓸쓸함이 컸다.
이런 주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인지 가드닝을 하면서 이렇게나 꽃이 풍성한 적이 없게 꽃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내 헛헛함을 화초에 관심을 주면서 희석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필연적으로 이유가 있어서 꽃 피는 것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라도 좋았다. 여느 때보다 화사해진 꽃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있다.
꽃이 피기 좋다는 것은 병충해가 생기기 좋다는 뜻과 같다. 정말 꽃이 피자마자 살펴보니 역시나 해충들은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막 발아해서 새순을 올리는 애들도 병충해가 진입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오래된 화분들은 좀 티가 안 나는데 막 발아하는 애들은 쭉쭉 잘 성장하다가 급 덜 자라는 시그널을 보낸다.
정말 말없는 식물이지만 잎새 내기를 더디게 한다든지 갖고 있는 잎새 자체도 뭔가 시들시들한 느낌이 든다.
새순을 내는 어린이들은 줄기를 점점 굵게 만들기를 애써야 하는데 멈춰있다면 병충해들도 같이 자란다는 신호이다. 물을 줬을 때 물과 다른 반짝거림을 발견하거나 화분 받침에 작은 흙 같은 게 움직인다면 빨리 처리를 해달라는 얘기이다. 문을 자주 열 수 없기에 약품을 고농도로 희석해 흠뻑 적셔주었다. 식물을 잡거나 해충을 잡거나 둘 중 하나이지만 지금 못 잡으면 다른 화분들로 옮겨갈게 뻔했기 때문이다.
베란다에 옮겨가 약품 처리를 해주고 물이 좀 빠지고서야 제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기존에 있던 화분 배치를 새롭게 하고 나니 확실히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식물들은 걱정보다 강했다. 처음에는 좀 시들하다 금방 회복했다.
이렇게 꽃대를 올리는 애들은 대체로 잎새도 깨끗하고 건강해서 꽃을 피우는 애들도 있지만 제법 응애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꿋꿋이 꽃 피우는 애들도 있었다. 몇 번이고 꽃대를 포기하고 잘라서 새로 키워야 하나 고민을 했었지만 잎새는 약해도 꽃봉오리는 제법 건강했다. 이번에 올린 꽃이라도 보고 정리하자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꽃만 보면 그저 피워진 꽃만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키우고 보면 꽃마다 사연이 있다.
그렇게 보면 내게 소원이 사라진 것은 가드닝을 하면서 배우는 부분이 있고 채워진 부분이 있어서인 것 같다. 너무 그렇게 바랄 일도 없고 꼭 이뤄야 할 일도 없다는 걸 매번 상기시켜 주니까 말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다가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죽어버린 화초들도 내게 알려준 부분이 있었고 다 죽어가는 화초의 뿌리를 잘라내고 줄기 삽목으로 뿌리가 자라고 새순까지 자라나는 걸 보면서 말이다. 하물며 화초를 키우면서 생기는 작은 목표도 결코 쉽지 않고 크다고 꾼 꿈도 제법 얼렁뚱땅 이뤄지는 걸 보면서 소원이라고 명명하는 게 의미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올 한 해도 이 화초들이 뭘 또 알려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