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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자리 묻어가기

by 미니작업실




최근 정치적으로 크게 놀라는 뉴스를 접하다가 이어서 삶 속에서 크게 슬픈 일이 일어났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처음에는 '가짜 뉴스가 아닐까?'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놀라운 뉴스 자체로만 보이다가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일상에서 크게 슬픈 일로 흡수되며 누군가의 지인과 지인의 이야기로 전해 듣게 되었다. 저마다 가슴 찡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고 애걸복걸 사는 삶이 허무하기까지 했다.

미리 써둔 글이 무의미해졌고 일상에 재미를 더하는 일에 매몰되어 살아가다 아무런 의미 없음을 증명하듯 일상을 무참히 짓밟고 지나갔다.

그저 황망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일이라 직간접적으로 각자의 슬픔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슬픔을 공감하고 힘을 주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멀리서나마 조용한 애도나 기도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건 속에 들어가 필요한 음식이나 물품을 직접 배달하는 방식으로 어떤 사람은 직접 찾아가 위로해 주는 방식 등등 말이다. 저마다 슬픔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무너지기 쉬울 때는 하루에 꼭 해야만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심장이 벌렁거려 잠이 오지 않더라도 시간을 채워 잠을 자주고 입에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더라도 한 끼는 먹어줘야 한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만나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 만날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커피숍에 앉아 군중 속에 자신을 놓기만 해도 나쁜 생각에만 빠지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너무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도 너무나 귀찮은 그 일들을 숙제처럼 하고 있을 때면 어느새 주변도 달라져 있을 것이고 자신에게도 마음의 근력이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번번이 넘어지고 무너져도 괜찮다.

나는 이렇게 슬픈데 세상은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무심히 지나갈 때 참 서럽고 허무하고 더 아프게 느낄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오히려 더 일상을 잡으며 복귀하기에 더 쉬운 조건이 된다.

어떤 사람은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을 겪으면 애도는커녕 사건 자체가 직면이 안될 때도 있고 그렇게 슬픔을 감당하기에 기운조차 벅찰 수도 있다. 그럴 때 오히려 무던하게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일상에 충실히 살아내는 것으로 그 귀찮은 열정으로 버텨낼 수 있다.

일상에 대소사가 있을 때 일상 제쳐두고 뛰어나갈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마저도 안 되는 사람들도 많다. 생계라는 것은 삶의 목적은 아니지만 생계는 생존과 연결 돼 있어 그 자리를 구분하기가 참 어렵다. 그렇기에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뚜벅뚜벅 지켜 나가면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즉각적인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삶 전체가 굴러가는 것에 힘을 보태주기만 해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슬픔을 삭힐 도구가 되어준다. 어떤 사람은 너무 슬픈 사람을 무던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위로를 전달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자기가 어떤 방식으로 위로받고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잘 없다.

그러나 대부분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배려와 관심으로 슬픔을 씻어간다.


이렇게 큰 재난이 닥쳐 누구나 슬픔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시기에 이미 지나간 아픔이 돌아와 다시금 돌아보며 상처를 더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일상이 돼 무거웠지만 힘들다는 말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 저마다의 위치에서 서로가 구조요청을 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신호를 알아채 자기가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음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칠흑 같은 사건을 맞이한 수많은 가족들이 언젠가 슬픔자리가 어디에 있었나 찾을 정도로 무던해지길 기도해 본다. 혹 생각보다 빨리 웃게 되고 밥을 찾고 일상을 되찾아감을 탓하지 않길. 너무나 잘해나가고 있음을 응원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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