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누리고 있다. 겨울을 기다렸다는 말이 무섭게 찬바람과 함께 옷은 저절로 두꺼워지고 손은 주머니에 항시 숨겨놓았다. 움츠리는 몸에 저절로 가드닝도 좀 뜸해졌었다.
식물을 하나, 두 개씩 둘 때는 계절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작지만 우리 집 사이즈에 적절한 미니정원을 가꾸기 시작하자 첫겨울을 보내는 게 설렘도 있고 난제이기도 했다. 겨울의 꽃나무들이 잘 넘어가면 그때서야 나는 처음으로 사계절을 보내본 식집사가 되는 것이다.
아직 1년 차 겨우 쭈뼛거리는 식집사의 눈에는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 노랗게 시들어가는 것,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 등등이 모두 보인다. 애니시다는 이 추운 날, 꼭 베란다에 둬야 한다고 했다. 내가 손이 시려 주머니에 넣어두는 데 애니시다 잎이 내 손처럼 시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베란다는 샷시문을 닫으면 찬바람은 막을 수 있지만 온도 자체가 차서 과연 이 여린 잎새가 남아있을까 싶었지만 내 고민은 기우였다. 오히려 새 잎을 내면서 잎사귀 한 톨도 떨어뜨리지도 않고 잎새를 노랗게 물들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겨울에 더 파릇해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인지 모를 정도였다. 또 어디서든 잘 크고 삽목 번식도 쉬운 제라늄은 오자마자 별 미동이 없더니 죽어갔다. 겨울에 실내에서 키우면 꽃을 본다고 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한 아이만 살아있고 다들 죽어갔다. 그렇게 다른 곳에서는 쉬운 꽃이 우리 집에서는 참 어렵고 다른 곳에서는 죽기 쉬운 꽃나무는 오히려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지난주부터 유난히 찬바람이 많이 불었고 점심때마다 구름이 많았다. 광량이 적으니 부랴부랴 광량이 그나마 들어오는 곳으로 자리 배치를 해보았다. 광량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한 친구들에게 우선순위 배치를 해주고 비교적 반 양지에서도 잘 크는 초록이들은 차례로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꽃을 피우는 화초들을 관리하면서 그저 묵묵히 잘 자라는 튼튼한 초록이들이 오히려 새잎을 부지런히 올리고 있었다. 광량이 적으니 끝이 타들어가지도 않고 오히려 끝이 매끈하게 잘 나오게 되었다. 작은 자연이지만 정말 배우는 게 많은 가드닝이다. 한쪽은 햇빛이 최대한 많이 들어오는 곳에 식물등에 광량을 최대치로 맞춰주고 겨우겨우 꽃송이를 내고 있는데 반대쪽은 오히려 햇빛은커녕 식물등에서 남은 불빛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최대치를 찍어주고 있었다. 여름에는 너무 뜨거워서 멈춰있었고 가을은 너무 애매해서 눈치만 보다가 안정적으로 온도가 잡히자 열심히 새순들을 올려주고 있는 듯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꽃들도 푸른 잎 없이는 초라해 보이듯이 꽃이 더 앙증맞고 예뻐 보이게 하는 초록이들의 묵묵한 성장에 초보식집사의 마음에 더 고맙고 기특할 따름이다.
요즘은 가드닝 할 때의 화초들처럼 무계획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기준이 되는 루틴은 있지만 나머지는 알아서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우리 집 화초와 초록이들처럼 너무 애쓴 것은 오히려 물러지고 되려 과감하게 버려둔 것은 튼튼해졌다. 그래서 식집사로서 더 확장되는 안목을 갖게 했고 이 겨울에 어찌 보면 티도 안 날 것 같은 초록이들도 성실하게 새잎을 내고 있다는 걸 보면서 너무 멈춰서도 안된다는 걸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