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국을 끓여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무 육수를 내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또 그 무가 묽어지고 한번 물이 들기 시작하면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유난히 향과 색이 강한 재료도 많다. 고추나 양파, 마늘, 갓, 당근 같은 재료는 자기 개성이 참 강해서 누구나 봐도 역할이 분명하다. 그러다 배추, 무, 호박 같은 자기 색은 뚜렷하지 않지만 어디든 섞이기만 하면 중간 역할을 참 잘해주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주체가 되는 반찬이라도 그 맛 자체가 강하지도 않고 오히려 간장의 맛, 양념의 맛, 그 부침가루의 향까지도 전달하는 것이다. 마치 태극기의 흰색 바탕같이 드러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안다고 해도 껍데기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자신을 인식한다. 그런데 식견이 있고 자신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자신의 본성은 어떤 정체성인지 어디에 가까운지 말이다. 평소에 그렇다 할 색도 의견도 강하지 않게 산다. 그냥 섬섬함을 전제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하루를 사는 게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바운더리라는 것도 유리하다는 것도 안다.
자신이 순박하고 맑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부정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신념대로의 마음을 비운 만큼 자신을 채우는 공부도 해야 한다. 더 이상 물들지 않게 말이다.
타고나길 배추향, 무향과 같은 사람은 시국이 어지러울 때 더욱 어지럽고 여러 가지 감정이 모두 있는 그대로 전달되고 그러다 보면 답답함의 이유와 목적은 잃어버리고 감정에 너무 휘둘리게 된다. 어느새 일상마저 기진맥진해져 버린다. 아예 색이 분명한 사람들은 끄떡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배추, 무와 같은 사람들은 어찌 됐든 영향을 받고 동요되지 않을 수 없다. 차분하게 고유의 색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흔들거리는 시국에 은은한 배추, 무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단무지나 무 초절임처럼 전혀 다른 색으로 순박해지기 마련이다. 한번 물든 배추나 무가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모습이 자신임을 아는 사람들은 순간순간 돌아서 내가 어떻게 배추향, 무향을 지켜내야 하는지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배추와 무의 향을 느끼려면 침착하고 평화로워야 한다. 침착하고 평화로운 힘은 수많은 소란스러움을 압도할 힘이 있다. 큰 파도가 일어났다고 바다가 동이 나는 일은 없었다. 큰 파도가 일어났다고 하늘과 맞바꾼 적이 없었다. 고요함은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더 잘 지켜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고요함은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었는지 알고도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