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태현 Feb 06. 2024

2.좋좋소를 때려친 갓무원

#주 주사 이야기2





"근데 왜 사기업 그만두셨어요? 사기업 좋지 않아요?"


왼쪽 눈 두덩이에 붕대 반창고를 붙인 박 주사님이 내게 묻는다. 오늘 아침 첫 출근길에만 해도 기분이 너무 들떴는데, 사기업 경력 10년 차임에도 늘 새로운 조직에 신입으로 들어간다는 건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새로운 조직에서 같이 일하게 된 누군가가 이전 직장에 대해서 물어올 땐 더욱.


"네? 아... 음... 그냥 뭐 개인적인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죠. 그리고 당연히 사기업보단 공무원이 더 좋잖아요! 하하."

나는 감정을 최대한 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가벼워 보이기 위한 하하 웃음소리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웃음소리 너머로 이전 직장인 사기업에서 겪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망할 사기업에서 쫓겨날때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아주 볼만할 거다.

음.. 그래 책 제목은…

 "어떻게 회사까지 사랑하겠어?"​가 좋겠다.

아니면..

“우리 회사만 쓰레기야?” 정도?

망할 회사.

망할 직장.

망할 좋소기업!!


그때의 망할 기억을 간신히 머릿속에서 밀어내본다. 그러자 그 회사를 나와 공무원을 준비하던, 그래 무직자로 집에 갇혀있던 그때 기억이 이어진다. 한숨이 난다.


'사기업보단, 직장이 없는 것보단, 공무원이 훨씬 낫다'

한숨이 지나고, 한 문장이 마음에 떠오른다.

그러자 분명 머릿속은 고통스러운데,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역시 공무원이 최고다.  공무원이 된 내가 자랑스러워 눈이 반짝 거리는 것만 같다.

그런 내 눈에 전자 담배의 희뿌연 연기를 연신 뱉어내는 박 주사님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 근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왜지? 공무원인데 뭐가 걱정일까 생각이 든다. 반짝이는 눈으로 박 주사님을 관찰해 본다.


일단 머릿결이 굉장히 생 머리다. 두상에 딱 붙어서 늘어져있는 머리카락. 그 밑으로 아주 얇은 테의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트레이딩 같은 걸 하는 날카로운 경제전문가 같은 안경. 안경 너머 왼쪽 눈두덩이에는 두툼한 반창고가 붙어있다. 어디서 다쳤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한다. 초면에 그런 걸 물어보는 건 실례일 테니까. 실례를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걸 전 직장에서 배웠던 것 같다. 거기는 그런 게 당연한 세상이었으니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피부는 남자치고 굉장히 하얗고, 양 볼에는 살짝 주근깨가 보인다. 얼굴은 말랐고, 몸도 말랐다. 헬스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을 것 같은 여리여리한 몸이다. 목을 둘러싼 목 카라가 아주 날카롭게 보인다. 뭔가 날이 선 것 같은 느낌. 왜지? 공무원이면 편하지 않나? 궁금해지지만 역시 묻지 않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 사무실에 있을 때 남자 공무원 분들이 대부분 카라 옷을 입었던 기억이 난다. 이전 직장에서의 습관인지 나는 당연하게도 정장을 차려입었다. 직장생활의 기본은 각진 정장 아니던가? 목 카라의 캐주얼한 복장을 한 공무원 분들이 떠오르자 괜히 오바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근데... 저희 과에 남자는 주사님이랑 저 밖에 없나 봐요?"

가만히 목 카라를 보던 내가 문득 물어본다. 사무실에 들어서고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남자 공무원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네. 저희 과에는 과장님, 그리고 팀장님 세 분 중 두 분. 그리고 저. 이렇게 밖에 없어요. 높으신 분들 빼면 결국 저 혼자죠. 아니, 이제 둘이네요. 주 주사님이랑 저."

그렇단다. 왜인지 대답을 하는 박 주사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느껴진다.

그 짜증에서 괜히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진다.  

왜지? 또 궁금해진다. 하지만 역시 더 묻지는 않기로 한다. 초면에 질문이 많은 건 실례라는 생각이 또 든다. 10년 동안의 사기업에서의 생활이 생각보다 내게 많이 저며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에 괜히 또 짜증이 난다.


박 주사님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앳되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담배를 꽤나 오래 피운 듯 그 모습이 꽤나 자연스럽다. 나이는 잘 모르지만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 내가 마흔이니까 삼십 대 초반정도? 아니면 더 어리거나.

나이에 생각이 닿으니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마흔에 신입이라니. 앞으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물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10년의 사회 경력에서도 그런 부분은 전혀 문제가 안 됐다.

거래처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생활에서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잘 배웠으니까.

또 전 직장 생각이 나다니.

또 짜증이 난다.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속마음을 숨기는 가면을 쓰는 것쯤 일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서른에 8급 공무원이라니.

박 주사님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부러운 생각이 든다.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내 나이가 되면 박 주사님은 적어도 7급, 어쩌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늦게 공무원이 된 나니까 급수가 올라가는 승진에 목메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막상 눈앞에 앳된 얼굴의 상사를 마주하고 보니 부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애써 마음을 다독여본다.

다시 한번 사람 좋은 웃음 가면을 얼굴에 쓴다.


"그만 들어가시죠. 날도 더운데. 아, 사무실도 덥긴 하지만."

전자 담배의 뚜껑을 닫으며 박 주사님이 말한다. 그러고 보니 목 카라가 달려있는 상의가 반팔이다. 공무원은 반팔도 입는구나. 전 직장에서 영업사원으로 뛰어다닌 나는 늘 지금처럼 풀 정장을 갇춰입었다. 거기에 넥타이까지. 내가 아닌 회사의 얼굴로 거래처를 만나는 거니까 말끔하게 보여야 한다고, 그때의 내 사수인 과장님이 말했다.

그런데 반팔이라니. 공무원은 반팔을 입는다니!! 얼마나 좋은가?


정장 재킷을 꼬깃꼬깃 둘러 입어서인지 덥긴 덥다. 어서 시원한 에어컨 빵빵 나오는 사무실로 들어가고 싶다. 어서 공무원으로서 내 업무를 받고, 일을 하고 싶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전 직장의 끝자락에서 사표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왕따 비슷한 걸 당하며 서러웠던 날들.

그렇게 막상 직장을 나와 집에 들어앉아 공무원이 되겠다며 꾸역꾸역 공부를 이어가던 날들.

지난 고통스러운 날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어서 일을 시작하고 싶다. 어서 일을 배우고 싶다.


그래야 내가 하루라도 빨리 이 킹무원, 갓무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전 01화 1.살고 싶어서 킹무원이 되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