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 어둠 사이로 불그스름한 주황빛 가로등만이 차가운 공기를 흩트리고 있다. 그 새벽의 가운데 갇혀있던 그녀가 차에 시동을 건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아니 딸이 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직접 운전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는데, 딸이, 그리고 남편이 없어지자 자연스레 운전을 하게 되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렇게 언제 취득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낡디 낡은 운전면허증을 낡은 장롱에서 찾았고, 알음알음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가, 운전이라도 할 수 있어서 이렇게 딸이 있는 바다에 올 수 있으니 말이야. 처음 운전 배울 때만 해도 엄두도 못 낼 일이었는데... 다행인 건지... 참.”
그녀의 차가 어제 그녀가 서있던 바닷가를 옆에 나란히 한 채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차와 바다 사이, 왜 자신이 부둣가에 이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덩그러니 누워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녹슨 거대한 배가 여전히 그대로 뉘어있다. 많은 이들의 염원으로 그 배는 그곳에 나와 있었지만, 또 어째서인지 많은 이들은 그 배를 뭣하러 끌어내냐 비난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건져진 배는 아무런 손길도 닿지 못한 채, 저렇게 뉘어있게 된 듯했다.
운전하는 그녀의 시선에 배의 어둑어둑한 실루엣이 들어오자 머릿속에 또다시 그동안 겪은 많은 생각이 스친다. 그런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녀가 운전석 창문을 빠른 속도로 열어젖힌다. 그리고는 마치 끝나지 않을 길처럼 눈앞에 펼쳐진 새벽의 텅 빈 도로를 향해 세차게 차량 속도를 높인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운전 발길질에 놀랐는지, 그녀만큼이나 작지만 강한 경차가 굉음을 내며 앞으로 돌진한다.
쾅.
바로 그때, 거대한 바다, 그리고 끝없는 하늘이 놓인 그 틈바구니에서, 턱없이 작기만 한 그녀의 경차가 난데없이 하늘 위로 붕 날아오른다.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불길한 검은 실루엣의 배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회전과 함께 그녀의 차가 빠르게 회전하며 공중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그러더니 이내 세상의 법칙을 서둘러 따라야 한다는 듯이 바닷가와 도로를 갈라놓는 날카로운 잿빛 철조망으로 날아가 처박힌다.
그리고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듯, 하늘이 바닥에 펼쳐진 차바퀴가 의미 없는 공회전을 계속한다.
다 낡아빠진 신문지처럼 잔뜩 구겨긴 그녀의 경차 앞 좌석에서 새벽의 차가운 어둠을 뚫고 새빨간 피가 비집고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의식을 잃어가는 그녀의 눈에 도로를 물들이고 있는 자신의 피가 보인다.
‘신이 있냐고?’
왜 그 질문이 그 순간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지내던 고통의 시간 동안 수도 없이 되물었던 질문이었고, 그때마다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한 채 허공에 떠돌기만 했던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핏물이 계속 차량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 순간에도, 그 질문이 흐려지기만 하는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러더니 오직 그 다섯 글자의 핏빛 질문만이 그녀의 곁에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이 있냐고?
신이 있냐는 질문은...
너무 진부해..’
그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그 핏빛 질문에 들려온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 대답이 자신의 것인지, 누구의 것인지
그녀는 끝내 알지 못한 채, 의식을 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