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차가 바닷가에서 이제 막 빠져나오던 거대한 모래 운송용 트럭과 부딪혔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바닥으로 꼬꾸라져 다 부서져버린 차량에 끼인 채로 그녀가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었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도착과 동시에 병원에서는 그녀의 보호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몸 담았던 위원회의 누군가가 달려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남은 가족은 그녀 자신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하얗게 질려 윙윙 소리만 낼뿐인 입원실 의료 장치들과 무슨 희망이라도 꿈꾸는 듯 날카로운 물결을 그려대는 초록색 선 안에 갇힌 채 가만히 눈감고 병실 침대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병실 위 그녀의 눈이 갑자기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예랑이 눈을 뜬다.
예랑의 눈앞에 그녀의 현실이 끝나있었고, 예랑의 현실로 돌아왔다.
수많은 눈동자 중 인간 형태일 때 눈의 역할을 하는 두 눈동자 사이에 깊게 자리 잡았던 미간 사이 주름이 그제야 천사의 그것답게 새하얗게 펴진다. 그녀와 연결되어있던 예랑의 시야가 어느새 병원을 떠나 슬픔 나무의 정원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있다.
‘신이 있냐는 질문은 진부하다라... 신이 있냐고? 신은 있지. 그것도 무려 셋이나. 하지만 그들의 뜻이 무엇인지는... 누가 알까? 그들이 이토록 가련한 인간들에게 왜 이렇게 가혹한 시련을 내리는지, 누가 봐도 악한 인간들을 왜 벌하지 않는지, 모두 알 수 없는 일이지. 천사인 나도 모르는데, 혼란과 불안 속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알 턱이 있나...’
그녀의 의식과 연결되어 마지막 질문을 피할 수 없었던 예랑은 생각했다.
그녀가 수없이 되뇌어 물었던 신의 뜻을 천사인 자신에게 물으면 뭐라고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인 자신도 무려 셋이나 있는 신의 고귀한 뜻을 알지 못하므로. 이런 면에선 인간과 천사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천사를 상상하고, 커다란 날개를 그리며 감탄하고, 머리 위 천사의 고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 하지만, 천사인 예랑이 보기에 천사는 생각보다 무력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알기에 계속 발전하려 노력이라도 하지만, 천사들은 그런 노력이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세월을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은 하늘이 날고 싶으면 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시간을 멈추고 싶으면 사진을 찍어 종이에 시간을 가둬 그 시간의 순간을 추억한다. 천사와 비교하면 한없이 짧기만 한 그들의 생을 기록하기 위해 책을 만들고, 그 기록이 후대에 전해지며 끝없이 발전을 이어간다.
역시나 천사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왜 인간과 이런 차이가 있는지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것 또한 그저 신의 섭리라 생각할 뿐. 아니, 이런 의문을 갖는 천사가 있지도 않았다.
자신의 현실로 돌아온 예랑이 여전히 자신의 손이 그녀의 수호령 위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서둘러 손을 뗐다. 수호령은 그제야 본래 모습대로 의식을 회복하더니, 서둘러 중년 여성의 뒤로 숨었다. 예랑이 다시 한번 자신의 눈을 깜빡여 시야의 초점을 조절한다. 그런 예랑의 눈길에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여전히 멍한 표정의 중년 여성의 영혼이 보였다.
그녀의 눈으로 그녀의 기억을 지켜보고 나니, 병실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던 그녀의 표정과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 모습에 왠지 무슨 위로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응당 천사라면, 그래 인간들이 그렇게 믿어대는 천사라면 작은 위로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예랑은 이내 자신의 하얀 입술에 힘을 줘 섣불리 새어나가려는 위로를 꾹 참아 막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예랑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슬픔을 다 안다는 듯한 위로가 당사자에게는 씻지 못할 상처로 내리 꽂힐 수 있다는 것을.
천사로서 위로를 건네면 인간의 다음 질문은 뻔했다.
그래서, 위로 말고, 자신을 위해서 무얼 해줄 수 있냐고.
그런 인간의 질문에 천사는 할 말이 없다.
천사가 인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욱이 그들이 원하는 걸 해줄 수 있을 리 없다. 그들은 항상 생각보다 더 한 걸 원하므로.
“흠흠. 인간, 다시 묻지. 인간계로 돌아갈 기회를 선택한다면...”
잠시 숨을 고른 예랑이 중년 여성을 향해 이전에 물었던 기회를 다시 한번 물었다. 왜인지 아까와 달리 중년 여성의 영혼을 똑바로 마주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같은 질문에 바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던 중년 여성이 이번에는 왜인지 아무런 말이 없다. 가만히 예랑의 말을 듣고 있던 그녀가 예랑의 곁으로 한걸음 다가선다. 그녀의 기억을 공유해서였을까, 예랑은 이번에는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제지하지 않는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예랑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예랑 너머 아직 아픈 기색으로 누워있는 아기 천사 예꼬로 시선을 옮긴다. 그녀의 눈동자에 슬픔인지, 감탄인지 알 수 없는 가느다란 빛의 줄기가 스쳐간다.
“천사님, 저는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 대답은 같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눈동자에 스치던 빛의 줄기가 이내 희미하게 번져 사라지고,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예랑의 귓가에 닿는다. 그녀의 뒤편으로 모습을 감췄던 수호령이 그녀의 손을 가지런히 잡은 채 그녀와 마찬가지로 예랑을 올려다본다.
슬픔이었다.
예랑은 그녀의 슬픔에 무어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인간들이 바라는 천사처럼. 그 천사의 모습 그대로 그녀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하지만 천사는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았다. 특히 이렇게 죽음 말고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다는 눈동자를 가진 인간에게는.
“저는 이대로 죽고 싶어요, 천사님.”
예랑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고민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여전히 예꼬를 바라보며 자그마한 숨결로 말을 내뱉는다. 예랑은 왜인지 천사로서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지만, 이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내는 천사의 역할 그대로 자신의 빛의 고리를 빠르게 회전시킨다. 갑작스럽게 새하얀 빛을 내며 회전하는 빛의 고리에 놀란 그녀의 수호령이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며, 예랑의 눈치를 빠르게 살핀다. 예랑이 왼쪽 팔을 그녀에게 곧게 펼치더니 다섯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얼굴 앞에 활짝 펼친다. 그 상태로 예랑이 눈을 질끈 감는다. 빛의 고리와 예랑의 손에서 눈물만큼 눈부신 빛이 끝없이 쏟아져 그녀의 영혼으로 쏟아진다. 그리고 잠시 뒤.
짤랑-
'바람...?'
오랜만에 불어오는 낯선 바람의 어색함을 느끼며 예랑이 감았던 눈을 뜬다. 예랑의 눈앞에 있었던 하나의 슬픈 영혼과 그녀의 수호령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엔 아기 천사 예꼬의 색색대는 작은 숨소리, 그리고 더 작은 바람과 함께 처연한 풍경 소리만이 울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