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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Apr 07. 2022

Ep3. "희망퇴직 신청 공고"


회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경영구조의 악화에 따라 불가피하게 희망퇴직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공로를 보상하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다음과 같이 희망퇴직을 시행하오니 직원분들의 많은 협조를 바랍니다.


'하.. 노인네들.. 어떻게 40%를 추가로 감축 하란 거지. 그래, 악역은 내가 다하란거지.. 망할.. 전염병을 욕해야 하나, 저 꼰대 임원들을 욕해야 하나..'

'아니지.. 이딴 지시에 아무 소리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시간에도 이러고 있는 나를 탓해야 하나.. 휴..'


어느샌가 주변을 둘러보니 사무실 본인 자리만 불이 켜있음을 깨달은 서 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조트 회사에서 우수한 조직관리 성과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서 부장은 적어도 7년에  번은 무조건 이직!이라는 본인의 신념을 따라 이 회사 운영관리부로 옮겨왔더랬다. 비록 본인의 주 전공인 해외영업 파트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꿈꿨던 항공업계로의 이직 오퍼를 그로써는 놓칠 수 없었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잦은 유럽 출장에 아시아 태평양 총괄 매니저와의 미팅 등 본인이 꿈에도 그리던 업무환경에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창궐하고, 그것이 항공업계에, 그리고 본인의 삶에 이토록 지독한 영향을 끼칠 줄 몰랐다. 어릴 적 유행처럼 무섭게 퍼지던 세계화, 지구촌 등 지구를 하나의 세계로 엮어놓은 지금의 현실 앞에 전염병의 창궐은 한순간에 지구촌을 중환자 병동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글로벌 항공사들은 단항을 결정했고, 자국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폐쇄조치에 돌입했다. 몇십 년간 탄탄하게 쌓아왔던 항공 사업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오늘만 해도 도대체 몇 군데의 거래 여행사가 폐업 소식을 알려왔는지 셀 수가 없었다. 덕분에 쌓이는 미수금과 인건비 절약을 위한 숨 막히는 감축 조정.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 그나마 현재 회사 수익은 항공화물 가격이 급등해서 그나마 버티고는 있지만, 과연 이것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관리부 총괄인 서 부장이 보기에 당장 내일이라도 회장이 "이제 그만하고 쉬고 싶네"라고 하면 끝나버릴 회사.

그만큼 갈라지고 있는 살얼음판 위에 서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극심한 역경이 닥치고 있는 상황임에도 이 회사를 걱정하는 내부 직원은 과연 얼마나 될까?


회사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력풀이 전부 투입된 임원회의에서 나온 금일 결과는 참담했다.

전체 정직원의 40% 추가 감축 시행.

전체 인원의 3분의 1을 희망퇴직이라는 아주 고결한 이름으로 빨간 종이를 칼로 베어내듯 정리한 게 바로 지난달이었다. 아직 그 빨간색이 마르지도 않았을 건데.. 또?

그리고 더 최악인 건 이번에 정리 대상인 직원들은 지난번 희망퇴직자에겐 제공되었던 위로금 명목의 1년 치 월급도 지급되지 않는다. 말만 희망퇴직이지 정리해고란 뭐가 다른가. 지난번엔 그나마 위로금이라도 챙겨주니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려는 젊은 직원들을 주축으로 그래도 퇴직 희망자들이 더러 있었다. 이제는 그나마도 없을 건데.. 정말. 이 회사는 겉으로는 참 있어 보이는 글로벌 회사인데, 이런 순간에는 본인의 생각만 밑어붙이는 회장과 그를 추종하는 전무, 상무, 이사 임원진들 뿐. 정말 회사 발전을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직원들은 정리대상 1순위. 이미 빈자리로 남아있다.

이 회사로 이직한 후로 서 부장이 가장 공을 들여온 개인의 결정으로 흔들리지 않을 사내 시스템, 조직체계 구축 노력들이 얼마나 완벽한 헛짓 거리였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된 하루였다.


"후.. 도대체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눈싸움에서 이기면 답이라도 뱉어낼 것이라 믿는 것처럼 서 부장은 한참을 뚫어지게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보낼 공지 메일을 클릭해야 하는데, 그 조건이랄 게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형편없어서 계속 망설이게만 된다.


이 메일을 받은 당사자들은 또 도끼눈을 부릅뜨고 나를 죽일 듯 노려보겠지..

왜 맨날 악역은 내가 하게 되는 걸까..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을 제시해서 포장이라도 잘하려고 해야 그나마 목표 감축인원을 맞출 수 있지 않겠냐며 임원진에게 목 핏대 세워 아무리 얘기해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눈빛은 "그럼 네가 나갈래?"로 돌아오니.. 그 눈빛에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딸, 아들 자식새끼들의 얼굴이 여실히 담겨있어 결국 나도 그저 평범한 힘없는 월급쟁이일 뿐인거지로 귀결되는 현실이라니..


메일 보내기가 완료되었습니다.

서 부장의 손가락이 마치 전쟁 터 군인이 총방아쇠를 당기듯, 마우스를 클릭하였다.

'이 메일은 작은 탄환처럼 그들의 눈동자에 닿고, 그다음 머릿속과 심장으로.

그리고 부들거릴 주먹에 박히겠지..'


"이 짓도 못할 짓이다 정말.."


오늘따라 사무실이 너무 어둡다고 느끼던 서 부장이 말했다.


"끄ㅏ톡!"

"깜짝야. 뭐야 이 시간에. 설마.. 아직 회사에 남아있는 직원이 벌써 메일 본 건.. 아니겠지..?"


설 팀장: 해외영업 3팀 주아인 과장 금일 사직서 제출. 면담 요청시 거부 필요.



"뭐?? 주 과장이 사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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