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어떤 언니가 다가와 자기는 21살이라며 남자친구의 유무를 물어보았다.
"남자친구가 없다고? 이렇게 예쁜데? 너 정말 예쁘게 생겼다! 남자친구 엄청 많을 것 같은데..! 남자친구가 왜 없어?" 놀란 표정으로 이해가 안간다는 듯 얘기했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언니는 날씬하시네요"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녀는 나의 키를 물어보았고 자기도 168cm라고 하면서 우리는 키도 똑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박진숙과 나는 대학교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진숙은 1년 늦게 들어온 재수생으로서 동그랗고 커다란 얼굴에 턱을 가리기 위해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항상 푸르고 다녔다. 그녀는 혈액형도 물어보았는데 자기는 B형이라고 하면서 남자친구는 A형인데 군대에 가서 사실상 남친은 없는 거라고 한다.
진숙과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나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같이 다니게 되면서 학기 초 서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입장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저절로 같이 다니는 무리가 형성되었다.
선배 언니들과 인사하는 미팅 자리에서 선배들이 나의 남자친구 여부를 물어보며 소개 시켜 준다고 전화번호를 얻었다. 여자만 있는 과다 보니 선후배 사이가 엄격한 편이어서 거절은 못 하겠고 할 수 없이 소개받은 각각의 남자를 한 번만 만나고 안 만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진숙은 자기한테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사람들이 몰려들고 관심 두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매일 학교가 재미없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주목받는 내 옆에 초라해진 진숙은 점점 같은 무리지만 나랑은 개인적으로 멀리하게 되었다. 선배 언니들 떠난 술자리에서 진숙은 어느 정도 친숙해져서 자기한테 예쁘다고 칭찬을 해왔던 과대 한테 자신 없지만 애교 섞인 조그만 목소리로 살며시 물었다.
"율보다 내가 더 예쁘지"
난 깜짝 놀라 그녀의 얼굴을 몇 초간 유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그것도 나랑 같은 레벨로 생각한다고?! 정말로 충격이었다. 자신을 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안 그래도 평범한 사람인데 큰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너무 황당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과대는 나랑은 친밀감이 없으니 진숙한테 “언니 예뻐” 라고 했다. 진숙은 당연히 나를 칭찬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말에 놀라서 갑자기 자신감이 생겨 눈 크게 뜨며 “율은 하나도 안 예쁘지! 전혀 아예 안예뻐.못생겼어. 내가 예쁘지.나만 나만!" 라고 손가락으로 나한테 엑스표를 하고 손바닥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사실 인냥 받아치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 후 몇 번 더 그러기에 어이 없어서 ‘정말 착각은 자유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숙은 내가 조용해 나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괜히 나를 언급하며 존재를 알려줘서 사람들이 관심 갖게 되면 예쁘다는 걸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절대 나에 대해 입을 닫기로 결심했던 모양이다. 그 후로는 그런 언행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저렇게 예쁜 사람도 조용하면 못 알아볼수있구나..생각했나보다.
진숙과 나는 같은 과목을 들어 수업 끝나고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 했기에 길을 나서면 다른 애들이 나에게 와 선배 언니들도 네가 후배 중에 가장 예쁜 애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네가 제일 눈에 튀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진숙은 듣기 싫다며 앞질러 가는 다른 애들 무리에 들어가서 인사도 없이 자기 갈 길로 가고는 했다.
여름방학 나의 생일 파티로 종로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바로 전날 진숙이 전화해
알바해야해서 못 간다며 정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사장님 바꿔준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바로 바꿔 사장이 진숙이 일해야 해서 생일파티에 못 간다고 마치 로봇처럼 한 문장 말하고 다시 진숙을 바꿔 주어서 내가 알았다고 했다.
단톡으로 조율해서 정한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다른 시간에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못 오면 할 수 없는 건데 일부러 사장과 짜 맞춘 듯 전화 바꿔주는 게 싫은 사람 생일 파티에 와서 축하해 주는 게 내키지 않으니 너무 티 나게 행동하는 것이 웃기기는 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진숙은 혼자 나와 라이벌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신경 쓰이는지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루두루 예쁘다고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진숙은 자존심이 상하는지 지는 것 같아 절대 누구에게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하루는 그래도 학과 들어와서 아무도 모를 때 처음으로 인사 나눈 사람이 진숙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예상과는 다르게 나를 싫어하는 걸 눈치채서 우리 친하게 지내자고 했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안 된다며 우린 성격이 너무 똑같아서 절대 친하게 지낼 수 없다고 되도록 멀리하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혹시 진짜로 진숙 언니가 본인을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의아해하며 나랑 레벨 자체가 다른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혼자 신경 쓰는 그녀가 너무 안타까웠다.
예쁜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데에 익숙한데 우리는 서로 칭찬을 해주는 입장이 아닌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친해질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진숙 언니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름 방학 끝나고 학기 시작일 날 친구들이 내 생일 파티 때 찍은 사진을 혼자만 빠진 진숙에게 보여주었다.
진숙은 내가 방학 때 잠깐 염색한 머리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혼잣말로 파란색처럼 보이는데 무슨 색인가 하며 혼자 중얼거려서 옆에 있는 친구가 나에게 진숙 언니가 너 무슨 색으로 염색한 건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고 해서 블루블랙이라고 진숙이 들리게 대답했다.
다음 주 진숙은 자기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여 학교에 와서 많은 학생을 놀라게 했다. 아주 튀는 오렌지색으로 염색해서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진숙을 좋아하는 기가 센 과대가 진작 염색하지 그랬냐며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때부터 미팅에 가도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쁜 언니라며 앞에 앉아있는 상대 남학생들한테 소개했다. 보통 많은사람들 앞에서 칭찬받으면 고개숙이는게 정상인데 그녀는 나를 의식해서 일부러 턱을 꽂꽂히 들었다. 그런 진숙을 보고 다들 꼴사납다고 한마디씩했다.("전혀 아예 안예뻐.누가봐도 예쁜얼굴아냐..") 진숙은 자신이 더 이상 과에서 존재감 없는 왕따가 아닌 자신을 알아봐 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일부러 나를 신경 안 쓰는 듯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
과대는 평범한 사람한테도 너무 예쁘다며 난리법석 쳐서 주위에 다른 애들이 역시 넌 왜 그렇게 보는 눈이 없느냐며 ”저 얼굴은 예쁜 얼굴 아니야.“하며 진정시켜 주었다.
미팅 자리에서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여러 무리와 함께 진숙과 나는 길고 커다란 테이블 자리에 함께 앉게 되었다.
처음 본 남학생 오빠들이 있는 자리여서 설렜다.
나를 보자마자 휘둥그래진 눈으로 "너 진짜 예쁘게 생겼다! 미스코리아 진이다!" 너가 미스코리아 나가면 다른 애들은 다 기죽어 탈퇴하겠다”하고 감탄하며 소리쳤다.
그 테이블에 앉은 오빠들 전부 다 역시 나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신상을 비롯한 취미 특기들을 묻기 시작했다.
나와 진숙과의 중간 자리에 앉은 현정이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진숙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율이 인기가 많네! 원래는 진숙이가 많은데." 그녀의 말에 모두가 당황하며 놀랐다. 앞에 앉아있는 오빠들도 현정이 가리키는 진숙을 슬쩍 보다가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어이없어 다른데로 고개를 돌렸다. 박진숙과 어울려 지내는 안현정은 진숙보다 한 살 더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서 아무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목소리 큰 사람 편들며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목소리 큰 과대가 진숙을 띄어 주니 옆에 있는 현정도 덩달아 진숙을 띄어 주게 되어 둘이 친해지게 되었다. 학기 초에는 현정이 알바로 일하는 병원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의사들이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와 진짜 예쁘게 생겼다!“라고 하니 현정이 웃으며 하는 말은 ”진짜 예쁘지. 우리 애들은 다 예뻐“라고 했다. 얼마 후 큰소리로 진숙을 띄어주는 무리가 생기니 그쪽과 어울리고 어느 날 진숙한테 칭찬했다. 항상 나만 칭찬하던 현정이 어느날, 자기한테 예쁘다고 해주니 진숙은 어리둥절하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 빤히 쳐다 보며 아무 말 못했었다.
그러다 이동하는 시간이 흘러 다른 테이블에 이동했는데 아까 테이블에 앉은 나와 친구들이 같이 이동 해서 다른 자리에 앉아있는 새로운 오빠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근데 좀 전 자리에 같이 있었던 오빠가 다시 나에게로 와서 친한 척 또 말을 걸어왔다.
"아까 개네가 너를 엄청나게 질투 시기 하나보다. 너무 예뻐서 피곤하겠다....원래 적당히 예쁜 사람 띄어주지...."하며 아까 벌어졌던 이야기를 꺼냈다.
맞다.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런 말을 내뱉은 현정이 무례했다. 같이 다니는 진숙을 위한 거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놀랐어도 그 덕분에 진숙만은 현정과 더 친해졌을 수도 있겠다.
그 자리에 앉은 남학생 오빠들과 우리들은 어느 정도 친분을 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친구가 나한테 말했다.
"아까 진숙 언니가 너 음식에 담배 재 털었는데 네가 안 먹어서 다행이야!" 그 말 듣고 놀랐다 나는 진숙이 담배 재를 음식에 몰래 털고 눈 마주쳤는데 "흥"하며 재빠르게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을 보았다.
너도 봤냐고 그녀에게 되물었다.
나는 누가 나에게 저렇게 천박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 창피해서 말을 안 하려다가 친구가 봤다고 하니 증인이 있어 오히려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진숙이 나한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친구가 물었다.
나는 진숙이 나를 질투하는 것 같다고 내 입으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혹시 자신이 튀고 싶은데 너 앞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시기하는 것 같다며 눈치 빠른 친구가 재빠르게 말했다.
진숙 언니가 예쁜 것은 아니지만 못생긴 것도 아니고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너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정말 충격이라고 얼굴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까 현정이 한 언행도 언급하며 ”왜 저렇게 한 사람을 하늘 높이 끌어 올려 주냐. 덕분에 하나도 안 예쁜 진숙언니는 공주병 걸렸잖아. 주제 파악해야지. 애들이 띨띨하고 무식하니까 진숙 언니가 사네“ 라고 했다,
그렇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과대처럼 눈에 튀게 언행을 안 할 뿐이지 진숙이 나를 이기기 위해 튀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결혼식 자리에서도 진숙을 띄어주었다. "우리과에서 가장 예쁜 애야" 그러니 다른 애들이 말했다. "예쁘면 얼마나 예쁘다고 저렇게 띄어주냐. 띄어주는 사람이나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이나. 온갖 꼴깝들을 심각하게 떤다"
1년이 지나고 후배들과의 미팅 자리에서 과대가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쁜 언니라고
후배들 다 있는 자리에서 진숙을 소개해주었다.
내 옆에 있는 친구가 그걸 보고 ‘왜 저렇게 난리법석을 치냐. 진숙이 재벌 회장 딸이라도 된데? 아빠 취업 시켜 준다고 했는지. 큰돈 빌려준다고 했는지. 꼴깝들을 너무 떤다. 만약 안시켜주면 억울해서 어떡하냐. 얼마나 끌어올려줬는데” 하니
주변에 있는 애들이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짜 예쁜 사람은 여기 가만히 있는데 저기서 난리법석을 친다며 우리도 이렇게 창피한데 율은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울까라고 했다.
“진숙언니가 튈려고 많이 노력을 하니까 친한 애들끼리 띄어주는 거지. 띄어주려면 개인적으로 해야지. 다른 사람들 피해주면서 과의 수치라고 다 분노하잖아. 율이 아무리 신경 안 쓴다 해도 기분은 나쁘지. 율 정도는 돼야 과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과대가 진숙을 띄어주자, 진숙 옆에 있는 현정이 또 말을 받아쳐 "그래, 제일 예쁜 진숙이 술 한 잔 받아라." 하며 소주를 가득 부은 잔을 건네자, 진숙은 그 말이 사실인 듯 일부러 나를 의식 안 하는 척하면서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받아 마셨다.
친구가 혼잣말로 말했다. ’코미디 그룹 결성했냐? 진짜 예쁜 사람한테는 못생긴 사람 취급하고 평범한 사람에게 엄청 예쁜 사람인냥 하늘 높이 띄어주는 게. 자꾸 그러면 율 상처받아. 예쁜 사람도 상처받아 당연히 주눅 들지. 진숙은 속으로 엄청 찔릴 텐데....‘
옆 친구가 말했다. "율은 신경도 안 써. 무시하는 거지"
참다못한 옆에 있는 정원이가 그들한테 말했다.
"솔직히 율도 예쁘지! 율이 조용하니까 그런 거지.... 진숙언니는 수다도 많이 떨고 잘 어울리고 하니까 그런거고. 율이야말로 완전 예쁘지.학과가 아니라 학교에서 가장 예쁘지"라고 하니 옆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맞아! 율이 진짜 예쁘지. 진숙 언니도 예뻐.... 율은 진짜 예쁘고.." 하니 또 다른 아이들은 “율은 예쁜데 착하고 겸손하잖아. 본 좀 받아라. 율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냐. 율도 얼마나 힘들겠냐, 여자들은 질투하지, 남자들은 들이대지..” 라고 했다. 진숙을 포함한 그를 띄어 주는 집단의 무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차라리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 아이들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랬을까.... 하고 생각했다. 애들이 말하는 내내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길 바라며 고개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우리끼리 자리에서 “율은 에이뿔이고 진숙은 씨정도밖에 안돼잖아.”라고 하니 모두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숙 무리가 워낙 센 성격들이 많아서 아무리 진숙을 띄어줘도 그냥 무시하기로 했었다. 중요한 건 모두가 진실을 알기에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을 쓸데없이 너무 띄어주는 게 이해가 안되서 아주 웃겼지만 티내지 않고 꾹 참았다.
튀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오히려 정원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언제나 분위기에 휩쓸려가지 않고 입바른 말을 잘하는 정원이였지. 아직도 그때 용기를 내 나서서 말해 준 그 친구가 기억에 남아 만나면 맛있는 밥이라도 사주고 싶다.
내가 예쁜 사람답지 않게 예쁜 척 자랑 안 하고 항상 낮추면서 오히려 털털한 면을 보여주고 칭찬을 들어도 조용히 살며시 웃는 정도이고 학교에서 튀고 싶지 않아 얌전히 지내고 있었다.
황신혜가 티브이에 나와 MC가 물은 적이 있다 "이렇게 예쁜데 학창 시절 때 인기가 정말 많으셨겠어요."라고 물으니
"아뇨, 저는 내성적이라서 얌전한 학생이었어요. 저를 몰랐던 애들도 있었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녀도 여자들만 있는 과에 들어갔다가 중퇴한 이력이 있다. 실제로 같이 학교 다녔던 사람들이 말하길 "아예 전혀 예쁜 줄 몰랐어. 그냥 퍙범했지. 눈에 하나도 안 튀었어. 화장도 하나도 안 하고 다녔고...."라고 했다.
진숙은 내 레벨과는 거리가 먼데 진숙을 포함한 그의 친한 기세고 목소리 큰 애들 몇 명이 장악해 버리려고 하니 아이들도 사실이 아닌 데에 동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이후 진숙은 성격이 더욱 세지고 나를 대놓고 더 싫어하는 표현을 해댔다.
어느 날은 벤치에 앉아 조별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진숙이 늦게 와 자리가 없어서 내가 일어나 “언니 여기 앉아”라고 하니 “예쁜 진숙한테 양보하는 거야?” 라며 현정이 말했다.
워낙에 몰상식한 사람이라 그날도 신경 안쓰며 무시했다.
‘우리 중에 누가 가장 헌팅을 많이 당하게 될까?’ 라는 질문에 현정은 ‘진숙이는 많이 당할 것 같고 율은 안 당할 것 같은데’ 하며 무례하게 굴었다.
그날 집에 갈 때 아이들이 현정의 무례함을 토로하며 나이값 못한다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어느 날, 학교서 공부하고 있는 데 "퍽"소리와 함께 누가 뒷통수를 세게 때렸다. 순간 지진이라도 난 줄 알고 너무 놀라고 아파 별까지 보였다. 돌아 보니 뒤에 앉은 현정이 잡지책 뒤편에 있는 사주를 읽으며 앞에 있는 ‘o’자가 들어 있는 사람이 훗날 자기 뒷통수를 칠 사람이라고 조심하라고 써 있는 글을 가리키며 상스러운 욕을 해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보는 사람이 많아 참았다. 지금 만나면 그녀의 뒷통수를 세게 100대는 때리고 싶다.
20대초반에는 순진순수하기에 나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하는 수준이 안 맞는 사람과도 어울려 지냈던 걸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었다고 생각된다.
진숙 자신도 안다. 자신이 나보다 안 예쁘다는 것을. 하지만 자존심이 있어 사람들 앞에서만큼은 초라해지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1등이 되고 싶을까.
진숙이 다른 친구를 자기 집에 재우고 다음 날부터 그 친구도 내가 무슨 말 하면 "흥. 넌 공주라 그런 적 없지?" 하며 비꼬며 말했다.
나는 더욱 얌전히 지냈다.
캠퍼스 오빠들과 미팅 자리를 가졌다. 오빠들이 나를 보며 하나같이 ’우와 지인짜 예쁘다! “하니 친구가 ‘미스코리아잖아’라고 칭찬했다. 오빠 중 한명이 ‘미스코리아가 뭐야. .네가 미스코리아 나가면 다른 애들 다 죽겠다! 넌 진짜 예쁘게 생겼다!“하며 나한테 관심을 많이 갖고 대화를 이어갔다. 앞에 앉은 현정과 진숙은 ‘왜 거기에만 몰려 율에게만 말 시켜요?’하니 오빠중에 한명이 ‘아 예쁘잖아요!”하며 당연한 듯 고함을 질렀다. 다른 애들은 당연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진숙과 현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기분이 나쁘다는 듯 ’아---‘하며 소리를 크게 질렀다. 현정은 항상 머리를 푸르고 다니다가 오늘 처음 똥머리를 한 나를 보고 ’너 누가 그렇게 머리하래?‘하며 기분 나쁜 듯 말했다. 오빠들은 진숙과 현정이 나를 그렇게 대하는 게 이해가 안가는 지 눈치를 살폈다. 가장 예쁜 것도 사실이고 친구를 칭찬하면 인정해주는 게 정상인데 별로 안 친한 가보다 하고 의아해하며 서먹한 분위기를 못마땅해했다. 미팅 가면 제일 못생긴 현정이 꼭 훼방을 놓고 그 옆에 진숙은 안 좋은 표정으로 말을 거두곤 했다.
진숙이 질투하니 옆에 있는 현정도 덩달아 질투하고 나를 멀리하고 둘이 친해졌다.
그리고 졸업 후 2년이 지나고 나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서 진숙과 마주쳤다.
서로 웃는 얼굴에 반가워하지만 속은 진짜 반가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서로 아주 잘 안다.
남자친구 있냐고 진숙이 또 물어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른 애들은 다 있는 남친이 왜 맨날 예쁜 우리 둘만 꼭 없냐고 얘기해서 나는 살며시 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기는 현정 언니랑 아직도 만난다면서 그 언니 이번에 결혼하는 데 신랑 될 사람이 부자라서 맨날 5성급 호텔만 데려간다고 하며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은 원래 다 일찌감치 결혼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직도 현정과 만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그렇게 자신을 띄어 주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아직도 여전히 외모에 대해 언급한다는 게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한 주부들은 싱글 여성들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부러워한다. 또한 아이가 없는 부부는 출산과 육아의 고통을 모두 겪은 안정된 가정을 부러워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겪은 부부는 자녀가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가 하면 워킹맘들은 사회에 나가서 치이고 할 필요가 없는 오로지 가정에만 신경 써도 되는 전업주부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전업주부들은 또 자기의 커리어를 살리면서 자기만의 일을 가지고 사는 워킹맘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동화 백설 공주에는 질투심에 가득 찬 왕비가 나온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했던 왕비는 더 아름다운 백설 공주가 나타나자 존재 가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다. 그녀에게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 자신과 능력이 비슷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래서 그 상대를 억압하고 영원히 추방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책 '행복의 정석'에서 "현명한 사람은 누군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망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스로 만족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각각 다른 존재로 인정하고 내버려 둘 때 시기심과 질투심은 비로소 사라질 수 있다. 백설 공주의 계모처럼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거나 가장 멋져 보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빠지는 사람은 결코 질투심이나 시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더 멋진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가치는 꼭 최상급에 속해야 빛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당함을 잃지 않을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