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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41화 다시 봄

 3월에 들어서자 봄기운을 잔뜩 머금은 운동장 잔디에도 푸른빛이 감돌면서 생기가 느껴진다. 독도와 진순이는 준석이 던진 공을 쫓아 운동장 여기저기를 거침없이 누비고, 준석은 자신이 던진 공을 물어오는 그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슬기는 아들 율을 태운 유모차 옆에 서서 운동장 위로 드론을 띄우고 촬영 중이다. 봄을 맞아 숙박 앱과 소셜미디어를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서다. 유모차를 탄 율은 손에 쥐어진 딸랑이 장난감을 흔들며 엄마, 엄마 하며 흥겹다.

 “사장님, 저는 준석이가 벌써 아들이 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선우가 커피를 마시며 휴게실 창밖으로 하늘에 떠다니는 드론을 올려다며 말했다. 미자는 식탁에 앉아 기타를 연습 중이다.

 “왜, 너무 빠른 것 같아서?”
 “네, 요즘에는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센데 쟤들은 그런 거 없이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은 거잖아요.”

 “결혼이 자꾸 늦어지는 건 갈수록 사는 게 팍팍한 것도 있지만 결혼하려면 이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생각도 큰 영향을 미칠 거야. 그런데 사는 게 생각대로만 되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인 거지. 그러고 보면 준석이랑 슬기가 현명한 거야.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을까만 생각하니까 하나씩 길이 열린 거잖니. 그래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나 보다. 선우 너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할 조건을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렴.”

 “저도 가끔 그런 생각하는데, 막상 닥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내 생각대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사람을 만날 때 조건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인 사람을 만나야지. 그러면 남들 하는 대로 따라 살지 않고 둘만의 행복한 삶을 일구는 걸 더 가치 있게 생각할 테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사장님?”

 선우는 말끝에 한숨을 내쉰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내일 당장 네 눈앞에 짝이 나타날 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학교는 복학 안 할 거니?”

 “네, 부모님은 펄쩍 뛰시는데, 저는 지금처럼 요리하고 다양한 사람도 만나면서 사는 게 좋아요. 저는 아침에 눈 뜨면 여기 올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은 거지. 아무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거야.”
 “사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힘이 나는데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래. 나도 응원하마.”

 그때 펜션 정문으로 은색 SUV 한 대가 들어와 별관 쪽으로 향했다. 사고로 폐차된 차를 대신해 새로 구입한 재하의 차였다.

 “사장님, 재하 형 차 들어왔어요.”

 “그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점심 아직 안 먹었을 텐데, 선우가 두 사람 먹을 식사 준비 좀 해줄래?”

 “네, 그럴게요.”     

 잠시 후 휴게실 문이 열리고 재하와 선영이 손을 잡고 나란히 들어왔다.

 “다녀왔어요, 고모.”

 선영이 미자를 보고 말한다. 재하도 미자에게 “다녀왔습니다, 고모님.” 하고 꾸벅 인사한다.

 “어서 오렴. 수고했다. 재하도 고생 많았어.”
 “고생은 운전한 선영 씨가 했죠, 뭐.”

 재하와 선영이 식탁 의자에 나란히 앉는다.

 “그래 재활치료는 힘들지 않았고?”

 미자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묻는다.

 “이제 재활치료 받으러 굳이 병원까지 안 가도 되겠어요, 고모님.”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도 좀 더 받아야 하지 않아?”

 “걷는 게 많이 자연스러워져서 집에서 운동하면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잘됐네, 잘됐어. 그동안 고생했네.”

 “목발 짚고 퇴원할 때는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빨리 목발 없이 걷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이게 다 아침저녁으로 걷기 연습 도와준 선영 씨 덕분이에요.”

 재하가 애정 어린 눈으로 선영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만큼 재하 씨가 잘 따라줬잖아요. 재하 씨가 제일 고생 많았어요. 그래도 무리한 운동은 조심해야 하는 거 알죠?”

 “그럼요.”

 머리 수술을 받느라 머리카락을 바짝 밀었던 재하는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 교통사고 이전처럼 스포츠머리다. 미자는 재하가 건강을 되찾아 그의 예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누나랑 형 배고프시겠어요. 식사하세요.”

 선우가 음식을 가득 담은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온다.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고맙다, 선우야.”

 선영이 음식을 식탁에 차리는 선우에게 말한다. 

 “이야 맛있겠다. 잘 먹을게, 선우야.”

 재하도 눈을 크게 뜨고 웃으며 말한다.

 “네, 누나도 형님도 많이 드세요.”

 선우는 미자 옆에 앉아 선영과 재하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어 선영에게 묻는다.

 “근데 이번 달 콘서트 이야기 손님은 누구예요, 누나?”

 실제로 선영은 3월 첫 콘서트 이야기 손님 이름 칸에 ‘당일 공개’라고 공지했다. 

 “어-, 비밀.”

 “에이 그러지 말고 저한테만 알려주시면 안 돼요?”

 “정 그렇다면 선우 너한테만 특별히 힌트 하나 줄게. 잘 들어.”

 선우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선영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굉장히 유명한 분이고 재하 씨 팬이야. 힌트는 여기까지.”

 “재하 형님 팬인데 유명한 분이라, 더 모르겠는데요.”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영과 재하의 얼굴을 번갈아 살핀다. 미자는 그런 선우를 보고 생긋 웃는다. 

 3월 거북이 콘서트 이야기 손님은 진보라다. 선영과 재하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보라는 빠듯한 영화 촬영 일정에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병문안까지 왔었다. 오래 있지 못하고 금방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그 먼 길을 쉬지도 않고 단박에 달려와 준 보라였다. 선영과 재하는 그런 보라가 가슴 뭉클할 만큼 고마웠다. 보라는 그 뒤로도 자주 전화해 두 사람의 건강을 챙겼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는 3월에 다시 시작하는 콘서트에 자신이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보라가 콘서트 이야기 손님을 자청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그것은 선영과 재하가 몸 회복에만 신경 쓰게 하려는 보라의 사려 깊은 배려였다. 나중에 미자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영과 재하는 보라의 따뜻한 마음이 무척이나 고마워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선영이 이야기 손님을 비공개로 한 이유는 보라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고 펜션 식구인 선우에게까지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건 준석과 슬기의 생각이었다. 선우에게 두고두고 추억할 거리를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거북이 콘서트가 처음인 선우에게 이번 콘서트는 서프라이즈가 될 터였다. 

 콘서트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다. 지난해 월 2회씩 열었던 콘서트는 올해엔 한 달에 한 번만 열기로 했다. 선영과 재하에게 무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콘서트 사회는 선영이 아니라 선우가 맡게 되었고, 콘서트 영상 촬영은 재하를 대신해 슬기가 맡게 되었다. 

 5월 콘서트는 운동장 잔디밭에서 할 예정이다. 그때 이야기 손님을 따로 초대하지는 않지만, 이야기할 사람은 많을 걸로 예상된다. 그날은 재하와 선영의 결혼식이 있기 때문이다. 

 선영은 재하가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많은 것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 절절히 깨달은 시간이었다. 재하가 서둘러서 유튜브 생방송으로 프러포즈했던 것도 새삼 고마웠다. 그렇다고 재하는 결혼을 서두를 생각으로 프러포즈를 한 것은 아니었다. 전적으로 선영의 의견에 따를 생각이었다. 그래서 선영이 재하에게 "우리도 준석이와 슬기처럼 하루라도 빨리 가정을 꾸려요."라고 했던 것이다. 선영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재하는 선영의 말에 기쁘게 동의했다. 두 사람은 의논 끝에 신록의 계절이자 장미의 계절인 5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재하는 그날부터 불편한 걸음걸이를 교정하기 위해 재활에 몰두했고 그때마다 구슬땀을 흘렸다. 그 결과 이제는 사고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재하가 건강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라고 해도 하나 틀린 말이 아니다.     


 식사를 끝내고 재하의 집으로 올라온 두 사람은 재하의 작업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멀리 내다보이는 섬진강 물줄기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선영 씨. 교통사고로 지금까지 힘들었지만, 그 계기로 우리의 사랑이 그만큼 깊어졌으니 사고가 시련이었던 건만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 있나 봐요.”

 재하가 선영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몇 년 전에 재하 씨 글을 우연히 보게 된 것도, 구례로 내려오는 고속열차 안에서 재하 씨를 만났던 것도, 재하 씨가 펜션에서 이렇게 가까이 사는 것도 다 우리를 사랑이라는 바다로 이끄는 물줄기였던 거예요. 살다 보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 안하고 살 때가 많은데, 이번에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저는 확실히 깨달았어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재하 씨고 펜션 식구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행복하다는걸요.”

 선영의 말을 듣고 있던 재하가 선영의 볼에 입맞춤하고 그윽하게 선영을 바라본다.

 “선영 씨, 과거에는 당신의 기쁨만을 사랑했다면 지금은 당신의 슬픔까지도 사랑해요. 나 역시 내 안에 있는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도 선영 씨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활짝 열게요.”

 “그래요. 우리 나이 들어서도 변함없이 흐르는 저 강물처럼 사랑하며 살아요.”

 선영이 재하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말한다. 재하는 그런 선영을 꼭 끌어안으며 선영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잠시 후 재하와 선영은 결혼 전에 들일 가구 이야기를 하다가 재하가 인터넷으로 먼저 디자인을 보자며 노트북을 열었다. 그때 바탕화면에 있는 파일 하나가 선영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들의 신화’라고 쓰인 파일이었다.

 “우리들의 신화? 이 파일은 뭐예요?”

 “아, 올 1월 1일부터 쓰기 시작한 거예요.”

 “혹시 벌써 다음 책 준비 들어간 거예요?”

 “다음 책 준비를 떠나서 우리에게 사랑이 어떻게 왔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기록하고 싶었어요. 교통사고 때문에 통 못 쓰고 있다가 퇴원하고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의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까 벌써 재하 씨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데요.”

 “원고가 어느 정도 써지면 가장 먼저 선영 씨한테 보여줄게요.” 

 재하는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사랑을 이대로 느끼고만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 순간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있는 대로 기록했다. 사랑이란 참 묘한 감정이라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따뜻한 햇빛이 대지에 스며드는 것도, 바람결에 나뭇가지가 춤추는 것도, 강물에 하얀 구름이 비추는 것도 다 사랑이었다.     


 콘서트 당일에야 이야기 손님이 영화배우 진보라라는 걸 안 선우는 너무 놀라 자칫 사회를 못 볼 뻔했다. 선영이 진보라를 선우에게 소개했을 때 선우는 그대로 굳어져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슬기와 준석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프라이즈!”를 외쳤다. 선우는 유명 영화배우가 자신에게 말을 걸 줄 전혀 생각 못 했던 터라 진보라를 소개하면서도 계속 버벅거려 관객들을 웃게 했다. 선우는 콘서트 후에 진보라와 찍은 사진을 대학 친구들에게 전송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4월부터는 야외 식당을 열었다. 점심시간에만 열리는 식당이었다. 식당은 펜션 건물 뒤쪽 공간에 초록빛 도는 캐노피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열 개의 흰색 둥근 테이블과 같은 색 의자를 놓았다. 메뉴는 스테이크와 파스타였고 요리와 서빙은 준석과 선우가 맡았다. 식당은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두 사람을 위해 미자가 제안했고 요리를 좋아하는 두 사람은 방방 뛰며 좋아했다. 캐노피는 준석과 선우가 도맡아서 설치했고 테이블과 의자도 중고가구점에서 사서 K마트 1톤 차로 실어 날랐다. 식당은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평일에는 주로 주부들이 모임을 위해 식당을 찾았고 주말에는 젊은 연인들이 찾았다.     


 5월 재하와 선영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거북이 콘서트에는 수도원에 있는 김 데레사 수녀, 진보라, 김달 작가, 현정과 수창을 포함해 지금까지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먼저 재하와 선영이 손을 잡고 잔디밭 끝에서 단상까지 걸어들어왔다. 선우의 사회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고 이어 이야기 손님들이 돌아가며 신랑 신부에게 한마디씩 덕담했다. 이어서 이환이 자기 제자들과 태권도 시범을 보인 후 오카리나를 연주했다. 그다음에는 미자와 보라가 단상에 올랐다. 축시를 낭송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호흡을 가다듬은 보라가 준석의 기타 연주에 맞춰 시를 낭송했다.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 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미자의 차례였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모든 순서가 끝나고 재하와 선영은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다시 단상에 올랐다. 선영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시작했다.

 “저는 책과 이야기와 음악이 있는 거북이 콘서트를 통해 많은 걸 느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 속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 이야기 중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가 가슴에 품은 이야기는 다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사서 읽으면서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하며 말보다 더 깊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죠. 그런 과정에서 누군가는 위로받고 누군가는 삶의 원동력을 얻기도 해요. 오늘 저희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러 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며 언젠가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선영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모두 재하와 선영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때 뒤쪽에 서 있던 누군가가 “키스해!”를 외쳤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손뼉에 맞춰 “키스해!”를 반복했다. 

 재하와 선영은 점점 커지는 외침에 잠시 당황스러워하다가 뭔가 결심한 듯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재하가 선영에게 서서히 다가가 선영의 입술에 키스했다. 사람들은 다시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우와 준석과 슬기가 연달아 하늘로 폭죽을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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