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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Nov 01. 2020

이중언어의 숨겨진 이야기

자랑이나 영업이 아닌 진짜 그냥 이야기

한국어와 독일어. 나는 태어나자마자 이중언어를 공기처럼 마시며 자랐다. 흡입해서 내 피와 살이 되었다. 그렇게 한 겹 한 겹씩 쌓아 올린 건축물인 나는 특이한 지층 위에 굳건할 중심을 설계한 결과물이다. 이중언어를 연로로 넣어야지만 가동되게끔, 괴짜 발명가가 애정을 담아서 만든 티가 역력한, 어떤 작은 기계다.


그래서 나는 이중적이다. 내 생각도, 성격도, 이야기도 전부 이중적이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중적이란 건 무엇일까.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를 영영 만나지 못하는 양면이 공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다. 한 단면에게 관심을 주고 온정으로 데우면 다른 쪽의 단면이 아리고 시리다. 반쪽짜리 동전이다. 동전은 온전해야 가치를 쳐준다.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하면 동전의 본래 가치가 사그라든다. 


모든 사람이 이중적이라고,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나의 이중성은 이렇게 정의된다고. 너의 이중성은 다를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 자신을 굴리고 굴려서 본전을 넉넉히 거두려는 여정은 우리 모두가 나눠 가지는 이야기이다.


이중 인간. 이중 인간의 시작도 이중적일뿐더러 뭔가 애매하다. 애매하다기보다는 오묘하다. 동전처럼, 던지면 앞, 혹은 뒤, 로 팍팍 나뉘는 것이 아니니까. 결정을 판가름할 정도로 확실한 동전 던지기처럼, 유와 무, 흑과 백을 깨끗하게 갈라주지 않으니까.


쉽게 말하면, 나는 생후 8개월에 부모님 품에 안겨서 독일로 이주했다. 나는 그때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흔해진 그 지역의 한인 주재원 중에서는 첫 세대에 속하셨다고 한다. 그때의 한국의 분위기처럼 지금은 바래지고 지워진, 하지만 그때는 분명 꽤나 중요했을 기업에 의해 발령받으셔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발걸음을 하신 모양이다. 어떤 생각으로 비행기에 오르셨을까? 부모님의 심정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 것은 자녀의 숙명일까?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큰 고민은 없으셨길 바란다. 과거의 젊으신 부모님은 많이 웃고 계셨으면 좋겠다.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그렇게 이주했고, 아기의 인식의 한계 상 독일에서 보낸 첫 몇 개월과 해는 어땠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냥 나를 부모님 손에 전적으로 맡겼으리라. 내 주변과 바깥 세계의 지각변동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물갈이라는 것을 아기인 나도 했는지, 여쭤본 적이 없어서 모를 일이다.


어쨌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내가 세상이라는 대상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기도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다. 인생에 관한 멋들어진 비유라는 생각도 들지만 남들이 공감할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변화는 나보다 훨씬 컸고, 내가 제 발로 걸어 나와서 그것을 맞이할 시점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미리 마련한 채.


첫 몇 년 동안의 기억은 매우 섞여 있다. 엉킨 털실처럼 매우 한국적인 기억과 매우 낯선 독일적인 기억들이 정말 매우 엉켜 있다. 한국의 냄새와 언어와 예절이 하얀 실이라면, 독일의 날씨와 언어와 사람이 검은 실이라면, 내 기억은 회색이다. 희한한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처음부터 독일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혹은 한국과 독일이 각각 다르게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정에서 쓰이는 언어는 99프로가 한국어로 이루어졌던 것은 확실하다. 책을 포함한 대부분의 문물도 한국어가 많았고, 이러한 풍토는 내가 후년에 자라나는 수년간 그대로 이어진다. 내가 어릴 때 책을 넘칠 정도로 많이 사주셨다는 엄마의 넟두리를 후에는 정말 자주 하셔서 그건 확실한 것 같다. 


책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한국 특유의 뭐뭐 전집, 위인 전집 등등을 포함해서 전래동화도 있었고, 나는 책에 꽤나 빠져 사는 어린이였던 것 같다. 평생의 정서의 기반이 이런 시절에 만들어지는 것일까? 내 정서에는 한국이 깊게 녹아들어 있다. 부모님이라는 한국이. 철자라는 한국이.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나라인 한국이. '나'라는 사람의 시초부터 아주 먼 나라였지만 내 얼에 서려있던 한국이. 얼에 서렸다는 표현의 느낌도, 분명 그 시절의 어린이가 전래동화를 읽으며 체득한 개념이 있어서 교신이 가능하다. 그 작은 어린이가 아직도 참 많은 일을 맡고 있다. 그때의 언어로 오늘까지 교신을 한다. 적어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고 일상에서 응용할 필요가 없는 개념들은 특히나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루는 분자처럼 중요하다니, 신기할 일이다. 이렇게 내 안의 기억과 내 안의 한국인과 교신할 때 대체재 없이 떠오르는 단어인 걸 보니 말이다.


그렇게 낯섦을 보통으로 여기며 자랐고 계속 자라서, 다양한 연대기를 거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독일에서 보내게 되었고, 그 후에도 여러 나라를 오가며 교육도 많이 받았다. 이 책에서는 그런 연대기를 오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실용적인 요소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체험이 꾸밈없이 전달될수록 실용적이기에는 너무 개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체험을 간접 체험하고 나서 오히려 자신의 길이 보일 때도 있다. 


이중 인간의 체험을 실용적으로 꾸며서 전달한다면,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자랑이 되거나, 영업이 되거나. 둘 다 의도가 아니다. 자랑이기에는 너무 꾸밈이 없다. 영업이라기에는 내가 팔 만한 것이 없다. 


다만 이중언어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한 번쯤 적어 내리고 싶었다. 


자랑과 영업과 밀접히 겹치는 영역이 이중언어라는 주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랑을 적당히 해야 영업이 가능하고, 영업의 주체와 대상을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고도 분명히 존재하는 영역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 자체로도 희소성이 있는 이야기이고, 또한 자랑에도 영업에도 더욱 깊이를 더한다. 


이중언어. 다중언어도 있겠지만 주제는 이중언어다. 더 이상 한국적일 수 없는 가정에서 고이 보듬어져서, 가끔은 찬바람 쐬지 못할 한국 아기처럼 보자기에 칭칭 감긴 느낌으로 독일의 한 복판에서 양분을 먹으며 성장했다. 내 또래의 주재원 자녀들은 통상적인 주재원 체류 기간인 몇 년을 채운 후에 전부 귀국한 지 오래고, 교민분들과 그분들의 자녀는 오히려 나의 성장통까지 가장 가까이서 함께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겉도는 느낌이 그때도 있었다.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토요일마다 열리는 한국학교에서 오전에는 주재원 반에 앉아서 한국 교과서를 들추며 어울리고, 오후에는 교민반에서 한국어 기초를 배우는 척하며 어울렸다는 그림이 가장 함축적일 것이다. 주중에는 동양인이나 외국인이 적었던 독일인 학교에 다닌 것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이 세 가지의 문화공간 중 어디를 이토록 열심히 오가도 항상 미묘하게 겉도는 느낌은 내 삶의 동반자였고, 어른이 된 오늘은 나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우 오랜 과정이 전제되기는 하다. 그래서 이중언어와 연관되는 주제를 볼 때, 가령 언어교육이나 유학에 대한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를 보게 될 때 자랑과 영업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가 내 이중언어의 정체성과 가까이 있으니까. 이중언어로 자라면 당연히 무관심이 주되기는 하지만 가끔은 부러움도 받고, 나보다 사업 수완이 좋고 배경이 비슷한 사람은 영업도 곧잘 한다. 당연히 이중언어를 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하지만 이중언어로 인한 이중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숨겨진 이야기가 매우 많다.


왜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을 속 시원하게 본 적이 없는지 생각해 봤다. 하나는,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한국과 독일의 양쪽의 끈을 나처럼 질기게 끝내 놓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 이유는, 내 자발적인 노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끈을 놓지 않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주변 환경이 그렇게 유도하고 나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실 삶의 풍파 앞에서 한국문화를 가지런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가정환경과, 철자와 내향성을 향한 왕성한 욕구를 충당하고도 남은 지지와 안정성, 그리고 편하게 양국을 오갈 수 있었던 자원이 이중언어를 가능케 했다. 그 언저리에 추가적으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나의 자발적인 노력이나 성형이라는 것은 이런 기반 요소의 중요함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이런 요소의 황금비율이 드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정확하게, 모든 요소의 배합은 각자의 황금비율을 지닌다. 콕 집어서 나의 경우에는, 이중언어가 매우 일정하게 유지되는 환경에서 나름의 완벽한 이중 인간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중언어의 이야기가 드문 또 하나의 이유는 어쩌면, 이 이야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중 인간들의 생각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어떤 환경이라도 신기하게 뇌의 배려로 인해서 무감각해진다. 너무 설레거나 너무 심장이 벌렁대서 건강에 무리가 가지 말라는 친절한 배려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묘한 상황과 평생 함께했대도 본인에게는 일상이다. 


그런데 이중언어는 사실 이야기가 많다. 한쪽에서 노력해도 다른 쪽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이중 인간이 동전 하나를 녹이기 전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영영 서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언어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언어로 풀어내고 소통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중언어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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