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기상 시간을 계획하고,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9시 40분에 득달같이 침대로 뛰어들었고, 10시가 됨과 동시에 안대를 끼고 정면으로 누워 잠을 청했다. 아뿔싸! 나는 입면이 늦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에 MBTI J가 할 수 있는 모든 계획들이 떠올랐다. N들은 혼자 있을 때면 갖가지 상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던데, 나는 S라 상상은 못하지만서도 대문자 J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플랜 A, B, C... 를 수도 없이 엮어 댔다. 10시 30분쯤 되자 아직 밤잠을 깊이 들지 못한 둘째가 나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고, 남편이 득달같이 나가 아이를 달랬다. 다시 아이를 재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안대 속에서 눈동자를 하염없이 굴리고 있었다.
까무룩... 드디어 잠이 들었다 싶은데 어스름이 정신이 돌아왔다. 지금 몇 시지? 2시 37분?(쿨...) 지금 몇 시지? 4시 12분?? (쿨쿨...) 이쯤 되면 자는 게 아니라 일어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다고 해야 맞는 게 아닐까?
고요한 이 시간, 깨어 있는 것은 나, 휴대폰, 그리고 마이마운틴...
마침내 새벽 4시 30분, 삑- 손목시계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용수철처럼 일어났다. 이렇게까지 일어나 운동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자못 웃음이 나왔다. 사실 나에게 있어 4시 30분이 그리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의 기상 성정 상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했고 새벽 4시 50분까지도 익숙한 기상 시간이었기 때문이다(물론 그때 일어난 아들을 앞에 두고 나는 크게 혼을 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도 이제 일어날 시간(?)인데 지금 일어나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래서 자기 계발서에서 우려하는 점 -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마음, 내가 지금 일어나서 뭘 얻을 수 있지(너무 많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이미 미뤄서 지금이다) - 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다. 그렇기에 좀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서둘러 운동복을 갈아입고, 유튜브의 10분짜리 팔 운동의 속도를 0.75로 줄여 진득하게 덤벨 운동을 했다. 나는 새벽 운동 전에 팔 운동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건 바로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해야 하는 시간문제상 팔운동을 하면 마치 기지개를 하는 효과가 있어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언제 일어날지 몰라 분초를 다투는 시간 속에서도 팔운동을 하고 있자니, 3분 전에 일어난 사람 같지 않게(?) 눈알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삑- 삑- 삑~
우리 집의 러닝머신, <마이마운틴>에 올랐다. 적막함 속 무형의 기계음은 마치 알람시계 같은 소리를 낸다. 이 소리로 우리 집 애들 여러 번 깨웠었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며 운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운동 시작 40분째, 첫째가 일어났다.
"뭐든 하세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어제 읽었던 새벽 기상 자기 계발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새벽에 할 일 1순위가 운동인 이유, 그리고 굳이 4시 30분에 일어나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이들이 그만큼 일찍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난 5시 15분 기상으로 운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장렬히 실패한 전적이 있었다. 앞서 말한 마이마운틴이 울리는 무형의 기계음이 알람의 기능을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잠 귀 밝은 아이들이 줄줄이 일어나는 악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0분, 20분... 마이마운틴의 베어링이 둥글둥글 굴러가는 동안 다행히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5시 30분이 조금 지난 5시 37분...
그가 일어났다.
그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 좋을까? 몰컴 하는 도중에 아빠가 방에 들어오셨을 때의 기분? 냉장고에 숨겨둔 과자를 새벽에 몰래 꺼내먹는데 엄마가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로 나오는 것을 마주쳤을 때의 기분? 그 정도로 숨기고 싶은 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인 것만은 분명했다.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이마운틴 위에서 굴러가고(?) 있는 나를 보며 뭐라 뭐라 말했지만,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는 나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방 안에 들어가! 아직 일어날 시간 안 됐어!" 세 번의 외침 끝에 들어간 첫째는, 5분 뒤에 동생을 데리고 다시 나왔다.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었던 새벽 기상 첫날
아이들은 별달리 엄마인 나에게 요구하는 것 없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해는 이제야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 첫째가 거실로 들이닥치기 전, 어스름이 밝아지는 밖을 보며 '여름에는 새벽 5시 30분이면 밝아지는구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이들을 피해 저녁에 운동을 해 왔고, 또 아이들을 피해 더 이른 새벽 운동을 계획했지만, 어쨌거나 나의 운동 시간을 아이들에게 노출(?) 해야 하는 것은 나와 같은 아침형 인간 피가 끓는 내 자식들을 가진 내 숙명이구나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싫어 첫째가 만 5세가 될 때까지 마치 몰래 19금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나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숨겨 왔고, 실제로 내가 처음 아이들 앞에서 운동을 했을 때 아이들은 내 모습을 따라 하기 바빴다(마치 근위병과 같은 모습으로 러닝머신 위를 척척 걷는 모습을 흉내 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유난한 사람이 되는 게 싫어 노력했는데, 그것이 나를 더 별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 다시 운동을 시작한 오늘, 아이들의 태도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 엄마도 이런 거 할 수 있어. 엄마라고 말만 하고 주둥이만 터는(?) 거 아니야. 이젠 아이들이 나의 모습에 익숙해질 때가 되었다.
그거 아세요? 저 지금 일어난 지 6시간 됐어요
운동을 끝낸 시간은 새벽 5시 55분, 아이들이 안방을 두드리기 5분 전이었다. 우리 집에는 한 가지 룰이 있는데, 그건 바로 '6시 전에는 부모님 깨우지 않기'이다. 그것은, 6시에는 부모님을 깨우세요~ 가 아닌 6시 전에는 각자도생 하세요!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운동이 끝난 후 마이마운틴에서 내려온 나는, 아이들에게 "일어나서 나와 있는 건 좋아. 그렇지만 엄마가 운동을 할 때까지 엄마한테 말 걸면 안 돼."라고 이야기했고, 아이들은 알겠노라 했다. 어느 에세이에서 작가의 어릴 적 엄마는 일정 시간이 되기 전까지 자신에게 말도 걸지 않고, 말을 걸어도 모른 척했다고 한다. 어릴 적 작가는 그런 엄마가 자신을 싫어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커서는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저 '엄마의 시간'을 갖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시간'을 성취해 냈고, 그것이 아이들과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임을 알길 바랐다.
그 뒤로는 여느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 주었고, 첫째에게 약간의 공부를 시켰다. 둘째와 함께 블록놀이를 하기도 했다. 7시가 되니 출근 준비를 마친 남편이 나왔고, 바통터치를 한 뒤 그제야 땀으로 젖은 운동복을 벗을 수 있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출근 전의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렇지 않고, 그럼에도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에 더욱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내게 있어 운동의 의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침운동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 마치 부스터샷과 같은 기능을 한다. 아침운동을 끝내고 나면, 이미 나에게 오늘 하루는 시작됐고, 오늘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사실은 맞다. 부작용이 있다면, 반대로 아침운동에 실패하면 오늘 하루가 잘 안 될 것 같은 불안 또한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감정을 안고 갈 필요는 없겠지만, 운동을 함으로써 생기는 자존감만큼은 확실히 챙겨 가고 싶다. 나에게 새벽 기상은 어려운 게 아니다. 다만 이루고자 하는 길에 장애물이 많으니, 꾸준함을 위해서는 그것을 촘촘히 어루만져 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