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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13. 2023

매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

정제된 시간의 간절함이 결국 4시 30분 기상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일상이 정제되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6번은 매일 오후 12시에 운동을 가요. 아플 때도요. 대신 일요일은 아무것도 안 해요."

국가대표 은퇴 후 출연한 <나 혼자 산다>에서, 윤성빈의 인터뷰는 나의 심금을 울렸다. 꾸준히 일정하게 무언가를 지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운동이라는 것. 그것은 내가 성인이 되어 끊임없이 추구한 무엇이었다. 물론 그는 과거 전문 운동인이었고, 나는 과거에도, 지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된 루틴을 지켜나가는 것이 보기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정된 시간의 틀 안에 살아간다. 정해진 시간에 등교를 하고, 출근을 하고, 일련의 정해진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하교, 또는 퇴근 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그것은 모두가 다양하다. 우리는 그것을 일과라 부른다. 어제는 친구를 만났고, 오늘은 혼자 영화를 봐야지. 어쩌면 내일은 미뤘던 운동을 갈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직장인들의 일과는 다채롭다. 퇴근 후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데요? 그것마저도 '일과'라는 것은 그들은 알까? 퇴근 후 부리나케 아이들을 하원해 밥을 먹이고 씻기며, 머릿속에 육퇴만을 기다리는 워킹맘의 입장에선 말이다.


변동 있는 일상 속 시간을 정제해 두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 혼자 산다>의 윤성빈처럼, 하루의 어떤 시간을 픽스하고, 자신만의 시간(특히 운동)을 보내는 사람을 동경한다. 나도 한때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3 때는 새벽 5시 45분에 일어나 러닝머신을 걸었고, 그 습관이 이어져 대학교에 입학해 제일 먼저 한 일도 하숙집에서 제일 가까운 헬스장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미루는 일과가 많아지는 것은, 시간의 여력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헬스장이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목욕 가방을 들고나갔다가, 다시 시간에 맞춰 하숙집으로 돌아와 때마침 TV에 틀어진 '아침마당'오프닝 음악을 들으며 차려진 아침을 먹었다. "학생 참 부지런해, 매일 새벽에 그렇게 나가고."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일과를 계속해서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학기가 지속되며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동아리 활동, 동기, 선배들과의 술자리. 고3 때도 이른 시간에 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땐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술을 먹고도 꾸역꾸역 운동을 나갔지만, 시나브로 운동을 빼먹는 일이 많아졌다. 너무 피곤하다, 오늘은 하루 쉴까? 오늘은 좀 더 자고, 공강시간에 잠깐 운동하러 다녀와야지. '새벽시간은 운동시간'이라는 핀이 부러지자, 일상을 고정하고 있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일상은 이렇게 될 수도 있었고, 저렇게 될 수도 있었다. '운동해야지'라는 내 계획이 24시간의 바닷속 부표처럼 떠다녔다.


내가 게을러서였을까? 아니면 음주를 시작하고, 만남이 많아지고, 동아리의 나머지활동이 많아져서였을까? 그렇다면 '게을러서'가 아닌, 너무 바빠서였던 것일까?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내게 시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새벽을 대체할 수 있는 시간'이 많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육아에 내 시간을 뺏기고, 새벽운동의 소중함을 느꼈다


나이가 들어서도 몇 번이나 다시 루틴 속 새벽운동을 넣으려고 했지만, 금세 실패했다. 졸리니 저녁에 해야지. 저녁에 할 일이 생겼으니 역시 내일 새벽에 해야겠다(그리고 매일 반복된다). 그렇게 내 운동 스케줄은 핑퐁처럼  새벽과 저녁을 오갔다. 한때는 역시 저녁운동이 맞는구나 느끼던 적이 있었다. 댄스학원, 크로스핏 등 운동학원에 등록했을 때였다. 사람들과 같이 땀을 흘리는 시간이 좋았다. 퇴근 후 저녁 운동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학원을 다니는 기간'에 한정돼 있었고, 결국 그 일과들은 일상에 정제되지 못하고 녹아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나와 남편은 도우미와 양가의 도움이 거의 없이 육아를 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맞벌이이기에, 서로의 여윳시간을 만들려면 각자에게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퇴근 후 육아는 야근의 그것과 같으니 쉽사리 운동하겠다고 집을 비울 수 없었다. 새벽운동도 여력이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우리 애들의 기상시간은 평균 새벽 5시 30분이었다. 내가 운동을 하기 위해선 남편이 결국 같은 시간에 일어나 있어야 했다. 결국 나의 선택은 '육퇴 후 운동'이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피곤한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홈트레이닝을 했다. 또는 집에 사둔 러닝머신을 하거나, 링피트를 했다. 그것이 내가 타협한 새로운 운동 시간이 될 것이라 믿었지만. 결코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결국 나는 새벽에 운동을 다시 결심한 것이다.

그것도 새벽 4시 30분에.


온전한(?) 나의 시간, 새벽 4시 30분


내가 다시금 새벽 운동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자기 계발서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한다>의 저자는, 4시 30분부터 일어나 출근하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오롯이 본인을 위해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8시에 출근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무려 3시간 30분이나 된다. 미혼의 나는, 절대 그 시간에 일어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일찍 자면 잠은 몇 시에 자야 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겠다고 결심했던 첫날의 나처럼 손가락을 꼽아보고 기함하며 포기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의 나 -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아이가 둘 있고, 새벽 6시면 아이 밥을 차려야 하고, 아침 8시에는 출근을 해 오후 6시에 퇴근한 뒤 다시 아이들을 픽업해선 오후 8시 30분까지 애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 그 시간이 너무나도 솔깃한 시간대였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래 더 일찍 일어나면 됐던 거야!' 그리고 그것은 아직까진 순조롭다.


매일이라는 루틴의 매력, 그리고 고정된 일상에 대한 간절함, 그것이 기필코 나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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