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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15. 2023

새벽 4시 30분, 러닝 하기 딱 좋은 시간(?)

러닝이 끝나자, 비로소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집을 나서 보기로 했다


전날의 소란 이후, 출근한 뒤에도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내게 새벽 운동을 그만두라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지만, 내가 내는 소음으로 인해 안 그래도 잠이 없는 첫째가 계속 영향을 받을 것을 신경 쓰여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전에도 새벽 운동을 관둬야 했으니까. 나의 욕심(매일 새벽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싶다는)으로 인해 나머지 가족들이 다 힘들어하는 것 같았으니까.


나의 시간은 아직까지도 내 것이 아닌 걸까. 머릿속이 쉬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공휴일이 되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굳이 집에서 운동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 밖에서 러닝을 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지하철과 버스의 첫차를 각각 검색해 보았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지하철의 첫차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결국 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왜 자가용을 타지 않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뚜벅이이기 때문이다.


간만에 한 번도 깨지 않은 잠을 잤다. 며칠간 너무 잠을 설쳤기 때문이리라. 항상 알람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오랜만에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알람에 의해 일어났다. 조심스레 안방을 나와 거실에 준비해 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트레일조끼에 이온음료 한 병을 찔러 넣은 뒤 집을 나섰다. 내가 없는 집안 공간의 식구들이 오랜 숙면을 할 수 있길 바랐다.


새벽의 공기는 생각보다 불친절했고,
새벽이 내려앉은 장소는 생각보다 친절했다


나는 평소 러닝을 좋아한다. 집에서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혼자 한강이나 여의도공원에서 운동을 한다. 집 근처에는 러닝을 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 나는 공원과 한강을 대중교통을 통해 다닌다. 여의도공원은 버스로, 한강은 지하철로 다니곤 했는데, 새벽 5시경에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으니 자연스레 목적지는 여의도공원이 되었다.

집 앞 정류장에는 여의도공원행 버스가 한 대밖에 없어, 더 많은 버스가 오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정류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길인데도 괜스레 낯설고 어색했다. 나를 스치는 모든 이들이 의심스러웠다. 각종 흉흉한 소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번에는 좀 더 기다리더라도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겠다. 동트기 전의 분위기를 너무 얕봤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의 버스 배차시간은 10분. 그렇게 걸어간 정류장에서 결국 난 집 앞에도 멈추는 버스를 탔다. 새벽이라 판단의 적중률이 그리 좋지 못했나? 몽롱한 나를 태우고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비어있는 공원 화장실에조차 누군가 있었다. 그럴 수 있음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비상용 벨을 훑었다. 의외로 내 마음의 준비가 새벽 외출에 걸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새벽의 바람은 한여름에 걸맞지 않게 선선했다. 나는 금세 그 분위기가 좋아졌다.


새벽을 여는 러닝의 상쾌함

러닝을 하면서 몇 번이나 대회를 나갔다. 마라톤대회는 늘 8시쯤 시작하다 보니 대회가 있는 날이면 6시 30분쯤 집을 나서곤 했다. 러너들에게 새벽이란 그리 어색한 시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갓 5시를 넘긴 시간부터 뛰는 것은 내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8월, 매일매일 최고기온 35도를 넘기는 날씨. 새벽 5시는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을처럼 시원했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게 걷기 뿐이었기에, 평소의 페이스보다 30초 정도 늦은 속도로 시작했다. 워치의 알림이 속도가 늦다며 연신 삑삑 댔지만 개의치 않았다. 달리면서 느낀 것은, 그 시간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는 것이었다. 나만 있으면 어쩌지? 가로등이 켜져 있지 않으면 어쩌지? 전날 했던 고민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음을 알게 되자 웃음이 나오며 깊은 안도를 느꼈다. 마음이 안정되자 점점 다리에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페이스가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던 새벽


진득하게 10km를 뛰었다. 5분당 6km의 페이스를 뛰면 딱 1시간 만에 10km를 들어오게 되는데, 적당히 느긋했던 페이스 덕에 1시간이 조금 못되어 10km를 채울 수 있었다.

트레일조끼에 끼워둔 이온음료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은 6시 15분. 이동시간 탓에 약간의 시간이 더 들긴 했지만 여전히 이른 시간이었다. 이제야 동이 터 오는 것이 보였다. 오늘의 내 하루가 시작됐구나, 비로소 진짜 내 것 같은 하루를 보냈구나. 단전에서부터 차오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전 7시가 넘어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 모두 일어난 지 한 시간도 넘어 얼굴의 부기조차 모두 빠져 있는 듯했다. 그래, 이게 우리 집이지. 새벽 4시 반에 구태여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뛰쳐나간 나나, 7시 남짓에 들어온 엄마를 보며 어딜 갔다 이제 오냐고 다그치는 자식들이나, 다 똑같은 핏줄이구나. 그래 오늘 하루도 힘내보자, 내 새벽은 이미 완벽했으니까. 괜스레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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