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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pr 03. 2022

여유,餘裕

넉넉함을 남긴 마음의 공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작지만 큰 소란이 일었다.

부부 두 사람이 버스를 탔는데,

남편 분 뒤를 따라 타던 아주머니가

"앞에 남편이 냈어요."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아저씨는,

"두 사람이라고 말을 하셔야지. 두 사람 찍은 게 없어요."

라고 하셨고, 앞서 자리에 앉은 아저씨(남편)는,

"아까 말했잖아요."라고 하셨다. 


결국 카드를 한 번 더 찍었고,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화가 사그라들지 않은 아저씨(남편 분)는 자리에 앉은 채, 본인이 아까 말하고 탔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이 나쁘다며 소리쳤다. (그치만 부부의 바로 뒤에 따라 버스를 타던 나 또한 듣지 못했다.)

버스 아저씨는 아저씨한테 그런 거 아니라 기계한테 그런 거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하셨고,

이에 아저씨는 내가 기분이 나쁜데 뭘 넘어가냐고 소리쳤다.


두 사람의 높은 언성을 실은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불편한 상황들에, 옆 자리 승객들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하차했다.

불편한 내부 분위기와 달리, 바깥 풍경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막 피기 시작한 개나리, 진달래, 풀잎, 푸른 하늘, 바람, 새소리 그리고 햇빛.


여유로운 저들과 달리 우리에겐 여유가 없었다.

남은 것도(餘), 넉넉한 것도(裕)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의 하루하루에 너그러움이 사라지기 시작한 게.

부러지지 않고, 휠 수 있는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한 게.


여유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다 안을 수 없다면,

적어도 부드럽게 스쳐, 둥글게 지나갈 수 있게.

그저 툭 던지고 가벼이 내 갈 길 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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