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배 꼬인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책상 위에 여러분의 이미지와 잘 맞는 과일 하나씩 올려놨어요. 선물 받은 과일 바구니에 있던 거니 잘 챙겨 먹어요~”
최근에 팀 내에서 승진한 팀장님의 단톡을 받고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책상 위엔 어떤 과일이 있을까?
아보카도.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껍질에 초록빛도 제멋대로 도는 그것. 주변 동료들의 책상을 살펴봤다. 팀장님이 받은 과일 바구니는 꽤 고가였던 모양이다. 샤인 머스캣, 망고, 용과 등 화려한 수입과일들이 딱딱한 사무실 책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샤인머스캣? 씻어서 껍질째 먹어도 될 만큼 엄청난 당도를 자랑하지. 보기만 해도 싱그러움 그 자체인 과일! 망고? 내가 한때 태국에 미쳐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지. 노랗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과일! 용과? 흠... 사실 이 과일에서 팀장님이 진짜 팀원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과일을 배치했다고 강하게 믿게 됐는데, 그 이유는 강렬한 외모로 한 번 본 사람들은 꽤 ‘인상적’으로 보는 파트장의 자리에 용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보카도를 수식하는 화려한 말들 고급 식재료, 숲 속의 버터, 슈퍼푸드 따위는 내게 와닿지 않았다.
정말 딱딱하고 못 생긴 아보카도. 나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란 생각뿐이었다.
그즈음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던 상사의 해고 소식을 들은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고, 회사 아니, 팀 내에서 내 입지가 얼마나 좁은 지를 새삼 느끼고 있던 시기였다. 자기 효능감이 바닥을 쳤다.
12년간 월간지 마감을 하며 “지겨워”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내가 전직 같은 이직을 하고 무려 2년이나 지난 시점이 돼 서야 내 일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잡지사에서 일반 대기업으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던 상황이 그때가 돼서야 벌어지고 만 것이다.
연봉, 규칙적인 근무시간 그리고 연애까지, 이직의 목적이자 목표였던 것을 모두 다 이뤘지만 회사에서 내 존재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게 느껴졌다.
40대가 가까우면 혹은 15년 정도의 연차가 쌓이면 니런 고민은 안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보카도를 받은 날, 친한 친구는 아무래도 내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으니 새로운 팀장에게 제대로 된 업무를 받을 수 있게 면담하라는 조언을 했다.
하지만 아보카도를 아보카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날은 잦아졌다.
너무 못생긴 과일이라며 아보카도의 외모를 탓했지만,사실 고소하고 몸에도 좋은 아보카도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샐러드가게에 가면 주저하지 않고 아보카도를 토핑으로 추가해서 먹을 정도로 아보카도 러버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아보카도가 아무리 맛있게 숙성이 됐어도 손 대지 않았다. 정말 확실히 내 멘탈에 문제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있는 그대로 아보카도를 보지 못하는, 배배 꼬인 내 잘못이었다.
연재할 글은 현재 진행 중인 잔뜩 속이 꼬인 꽈배기의 부끄러운 기록이자, 한때나마 아보카도의 외모를 지적(?) 하기 바빴던 나의 반성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를 그 꼬인 마음을 풀어가는 과정을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어쩌면 그 시작은 그 마음을 제대로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부터 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