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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wonderland Jun 29. 2024

어머님! 아이가 방과 후 수업에 오지 않았어요

케냐에서 전학 온 초등학교 2학년, 편의점 플랙스

케냐에서 국제 학교를 다니다 학기 중에 갑자기 한국 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딸아이 지아.

태어나서 9년, 평생을 케냐에서 살았던 지아에게 갑작스러운 한국행을 하게 만든 나는 크게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마음 깊숙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해외에서 오랜 산 아이들은 초, 중, 고등학교만 문제없이 다니면 12년 특례라는 제도를 이용해 한국의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아주 쉽다고 들었는데, 엄마가 되어가지고 아이 미래를 위해 좀 더 케냐에서 버텨주지 못한 죄책감도 더해졌다. 


케냐에서 학교 생활과 친구들을 참 좋아했던 아이가 "케냐는 지금 몇시지? 지금쯤이면 친구들은 수영하고 있겠다~샨타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아이를 똑바로 보고 있기가 힘들어 괜히 딴청을 부리곤 했다. 

지나치게 단호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엄마 때문에 케냐에서 한국으로 갑자기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지아가 한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케냐를 그리워하며 계속 힘들어하면 어쩌지? 


통영에서 살 집을 정하고, 전입 신고를 하고, 학교를 배정받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며 머리끝부터 빨 끝까지 시나모롤 캐릭터로 장착한 지아의 전학 첫날. 

"반가워 지아야~반가워~끼~~ 야~~~~"

쭈뼛쭈뼛 긴장하며 교실에 들어선 지아를 20명 남짓의 2학년 1반 아이들이 큰 소리로 환영해 맞아주었고 지아는 반 친구들의 환대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함박웃음을 지으며 교실로 입성했다. 

미리 신청해 놓은 방과 후 수업까지 잘 마치고 급식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며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온 지아의 첫날은 "너~~ 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였어"로 평가되며 마무리되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도 전학 온 아이의 엄마 마음을 아셨는지 문자를 남겨주셨다.

[지아 어머니~지아는 오늘 학교 생활 즐겁게 잘하고 미술 방과 후 수업을 갔습니다. 점심도 남기지 않고 배부르게 잘 먹었어요. 하교할 때는 미술 방과 후 같이 하는 친구와 정문까지 가 있을 거예요.]


'역시 내 딸이야! 넌 잘 적응할 줄 알았어. 휴~ 다행이다 정말.'

딸아이의 밝은 모습에 죄책감과 불안함으로 얼어붙었던 내 마음도 함께 녹아내리며 아이에게,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너무나 고마웠다. 


전학 둘째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는 지아가 꼭 다니고 싶어 했던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매일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아이는 혼자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가서 1시간씩  피아노를 배우게 되고, 피아노 수업이 끝나면 내가 학원으로 픽업을 가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몇 번이나 시간과 동선을 알려주며 확인시켰다. 


전학 셋째 날, 계획했던 대로 지아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피아노 학원에 갔고 나는 피아노 수업이 끝나는 4시에 학원에서 지아를 픽업했다. 모든 일이 마치 계획이라도 된 듯 착착 진행되었다. 


자,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의 하루  스케줄이 이렇게 짜였으니, 이젠 내 스케줄을 만들 차례다.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서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혼자 만의 자유 시간을 갖길 얼마나 기다렸었는가!!

도서관 투어, 카페 투어, 수영 배우기요가 수업, 맛집 탐방, 책 읽기, 명상, 글쓰기 등등 한국에 와서 하고 싶었던 일들의 목록을 설레는 마음으로 꺼내보며 가장 먼저 지역주민센터 요가반에 등록했다.



전학 넷째 날, 오전에 밀린 집안일을 마치고, 혼자 여유로운 점심을 먹은 후 요가 수업에 갔다. 계획대로라면 요가 수업을 마치고도 지아 픽업까지 3시간 남짓 여유가 있다. 한참 요가 수업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지아 어머님~ 지아가 방과 후 수업에 오지 않았는데요. 무슨 일이 있나요?]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안전상의 문제로 케냐에서는 스쿨버스 또는 학부모가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의 등하교를 시켜 주어야 했다. 지금까지 아이가 이렇게 학교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있을 수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터라 나는 이 낯선 상황에 잠시 동안 멍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아이를 찾아야 하는 거지? 도대체 지아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요가수업에서 나오는데 "띠링" 문자가 왔다. 

피아노 선생님이다. 

[어머님~ 지아가 오늘 배가 아프다면서 방과 후 수업은 안 갔다고 하고요, 지금 피아노 학원에 왔네요] 

[네? 아~ 그래요 선생님. 일단 그럼 피아노 수업받게 주시고요, 제가 한 시간 후에 데리러 갈게요.]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피아노학원에서 지아를 픽업해서 돌아오는 길.

지아는 굳은 얼굴로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어쩔 줄 모른다.

"엄마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왜 선생님한테 말도 없이 방과 후 수업에 안 갔어? "

"..."

"솔직히 말해. 진짜 배가 아팠어? 배가 아픈데 피아노 학원은 어떻게 갔어?"

"... 사실은... 수업 끝나고 친구들이 편의점에 가자고 해서... 내 용돈으로 친구들 음료수 사주려고 갔어. 친구들이 방과 후 수업은 안 가도 되는 거라고 해서.. 음료수 다 먹고 그냥 바로 피아노 갔어. 근데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

"당연하지!!! 방과 후라도 수업은 선생님과의 약속이니 니 마음대로 빼먹은 건 약속을 어긴 거니까 안 되는 거고.... 친구들이랑 편의점 간 거는.. 음.. 잘못한 건 아니지만... 아무 말 없이 지아가 사라져서 엄마가 놀랬잖아!!"

나는 풀이 죽은 아이를 다독여 안아주었고, 아이는 놀라고 당황했던 나를 안아주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이는 난생처음 엄마 없이 아이들과 함께 한 하굣길이 너무 신이 났단다. "걸어서" 편의점에 가고 "스스로" 물건을 사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으며(케냐에서는 불가능한 T.T), 자기 용돈으로 친구들한테 음료수를 한턱 쏜 것도 완전 신이 났단다. 


다음날 바로 아이 핸드폰 번호를 등록했고, 위치 추적 어플도 깔았고,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이동할 때는 무조건 전화를 하라고 일러주었다. 지아는 자기 번호가 생겨 친구들과 카카오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꺄~악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도 지아도 아직은 모르는 게 많고, 아무리 한국이라도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 이렇게 하나씩 겪어가며 배워가며 아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나도 학부모가 되어 다시 돌아온 한국 살이에 적응해야 하는 거지. 하다 보면 언젠가 편해지겠지 뭐. 


통영살이 2달째

놀랍게도 아이는 나보다도 더 빠르게, 더 잘 한국 초등학교 생활에 적응을 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CU와 사랑에 빠졌고, 친구들 사이에 유행이라는 이름도 모를 매운 중국 간식을 찾아 먹으며 맵찔이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반에서는 웃긴 표정과 웃긴 춤으로 친구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가끔은 친구들에게 배워온 경남 통영 사투리를 써가며 나를 웃겨주기도 한다. 2학기에는 반장 선거에도 도전하겠단다.  


잘 웃고, 잘 웃기는 나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아이 덕분에 나는 매일매일 내가 몰랐던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통영살이, 매일이 파릇파릇하다. 

잔디깎이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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