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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wonderland Jul 15. 2024

고라니의 습격

동물의 왕국 케냐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나는 케냐에서 살다왔다. 야생 동물의 천국, 사파리의 나라 아프리카 케냐 말이다. 

10여 년 간을 아프리카 말라위, 케냐에 살면서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대한민국 통영에서 일어났다!

 


2박 3일간의 부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오후, 대문 안쪽에 못 보던 까만 열매가 한가득 떨어져 있다. 

너! 정체가 뭐냐!!

 반들 반들 윤기가 나는 처음 본 열매들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막대기로 쿡쿡 찔러보던 나와 딸아이는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똥이다~~~ 똥~~~~ 꺄~~~~~~~누가 우리 집에 똥 쌌어~~~" 

고양이 똥도, 개 똥도 아니다. 가끔 길고양이가 들어와 마당에 똥을 싸놓고 가기도 하고, 까치, 까마귀, 참새들이 마당 테이블 위에 하얀 똥을 싸며 날아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나, 이 낯선 똥의 출현은 나와 딸아이를 멘붕에 빠뜨렸다. 

이게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아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들어온 거지? 

우리가 없던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우리 집에 침범해 들어와서는 이렇게 대놓고 영역 표시를 해놓고 도망을  가다니! 


이런 형태의 똥을 본 적이 있다. 

이건 케냐에 살며 국립공원에 사파리를 갔을 때, 야생 동물들을 자유롭게 놓아 키우는 리조트에서 보았던 사슴이나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의 배설물이다

그 야생 초식 동물의 똥을 대한민국에서, 우리 집 대문 안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누가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는가?  

딸아이와 나는 커다란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흡사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그놈의 흔적을 찾아 집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뒷마당 쪽에서 생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출된 형태 그대로 단단히 뭉쳐져 있는, 두 덩어리의 똥을 추가로 발견했다. 

정신이 혼미해진 채 뒷마당의 똥을 급히 빗자루로 쓸어 담아 담장 너머로 던져 버리려고 하던 찰나 잡초 더미가 높이 쌓여있는 담장 뒷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내가 삐죽삐죽 자란 정원의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서 자른 나뭇가지들을 담장 밖으로 던져 쌓아 놓았던 곳이었다. 몇 달 동안 던져 버려둔 잡초와 나뭇가지 등이 조금씩 쌓여가다가 담 바깥쪽에 제법 높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 엄마~ 여기를 밟고 담을 넘어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왔나 봐~" 

"그래 이 높이면 점프를 잘하는 무엇인가가 밟고 넘어 들어올 수 도 있었겠다"


딸아이와 나는 혹여라도 다시 낯선 생명체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을 막기 위해서  곧바로 삽을 들고 담 뒤쪽으로 나가 나뭇가지와 높이 쌓인 잡초들을 멀리멀리 흩트려 놓고 집안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어떤 놈이 우리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 이렇게 똥을 싸놓고 나간 거야?!!! 

씩씩 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한번 기겁을 했다!!!  

텃밭이!  내 텃밭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T.T 


이 텃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2달 전에 통영에 이사 와서 전원생활을 시작하며 매일매일 정성 들여 잡초를 뽑고  흙을 갈고, 퇴비를 주고, 까만 비닐로 씌워 만든 밭이다. 여기에 방울토마토, 애호박, 가지, 상추, 오이 모종을 사다 심고는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물 주고 가지치기하며 애지중지 돌보며 초보 농부인 나는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고, 농사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차였다. 

이 사건이 있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이렇게 건강하게 쑥쑥 자라며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고 있던 텃밭이 아주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풍성했던 오이와 호박잎은 모조리 뜯겨 앙상한 줄기만 남아 있고, 튼실하게 익어가던 호박은 온 데 간데 없어졌다. 체 익지도 않은 방울토마토 열매는 모조리 사라지고 상추도 뿌리만 남기고 모조리 뜯어져 있다.  까만 비닐 덮게 곳곳에는 그놈(?)의 발에 밟혀 찢긴 흔적만 곳곳에 남아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추측만 할 뿐 알 수가 없었다, 이놈의 정체를!! 

토마토야 오이야~ 어디갔니~~
호박열매들, 탐스럽던 상추들~ 어디갔어!!


다음날 해 질 녘. 

초토화된 텃밭을 정리하고 마당에 길게 자란 잡초를 뽑고 있는데  덩치가 크고 갈색을 띤 무언가가 후다닥 집 건물 뒤쪽 수풀에서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급히 고꽹이를 집어 들고 쫓아갔다.  (이 와중에 이걸 찍겠다고 핸드폰을 챙긴 내가 놀랍다.^^)

놈은 쏜살같이 나를 피해 텃밭으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그놈은 "고라니"였다. 

너였구나. 고라니!!
고라니는 단독생활을 하며 대개 새벽과 해 질 녘에 가장 활동이 많다. 물을 좋아하며 수영을 잘한다. 고라니는 번식기 중 “또르륵 또르륵” 소리나 짖기, 휘파람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를 내나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수컷은 다양한 방법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방어하는데, 배설물을 통해서 표시하기도 하고 이마로 나무를 문지르거나 발가락 사이의 분비선을 통해, 또는 얇은 나무줄기를 엄니로 긁어 껍질을 벗겨놓는 형태로 표시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라니 [Inermis] (서울동물원 동물정보)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이나 한국에 개체수가 가장 많다는, 초식동물 중에도 먹성이 좋아 농가의 작물을 보면 뷔페처럼 마구 먹어대 유해 조수로 지정된 그 고라니였다. 


어찌 되었건 이 놈이 지금 우리 집 담장 안에 있다!! 

다시 한번 고꽹이를 들고 이 놈을 쫓아가며 혹시라도 놀라 날뛸 고라니가  도망갈 수 있게 출입문을 열어놓았다.  

멘붕 온 고라니

정작 만나고 보니 나보다 더 당황한 건 이놈이 분명하다. 

텃밭을 지나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고라니는 출입문을 열어 놓았는데도 찾지 못하고, 닫힌 대문 위로 풀쩍풀쩍 뛰어 대문을 온몸으로 쾅 쾅하고 몇 번 부딪히더니 다시 텃밭 쪽으로 쌩 하고 도망간다.  괜히 마음이 짠한 것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놈이 텃밭으로 또 도망간 뒤, 차량용 대문까지 다시 활짝 열고 다시 고라니를 기다렸다. 

한참 뒤, 내가 조용히 기다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라니는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가는 열린 대문으로 빠져나갔다. 

 

고라니! 탈출하다. 

이렇게 나의 텃밭을 엉망으로 만든 1박 2일간의 고라니 소동이 끝이 났다. 

지아와 나는 검색창에 "고라니"를 찾아보고, 고라니의 기괴한 울음소리를 따라 하며 한참 동안 즐거웠다. 

지아는 지금도 혹시 대문 앞이나 어디엔가 까만 콩 같은 고라니 똥이 발견되지 않을까 열심히 찾고 있으며 내심 그 똥을 기다리는 눈치다.  

어쩌면 지금도 담장 밖에서 호시탐탐 내 텃밭의 열매가 다시 열려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통영살이 2달째, 뜻밖의 손님 덕분에 시골 살이가 더 즐거워졌다. 

이놈의 고라니! 다시 한번 나타나면 너 목줄 달아 집안에서 키워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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