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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wonderland Jun 18. 2024

좋은 기분

일과 삶을 돌보는 태도를 엿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행복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책(종이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을 꼽겠다. 

케냐에 살며 아쉬운 대로 전자책으로 책을 읽긴 했으나 전자책은 왠지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고 그 기분과 몰입도가 종이책을 따라갈 수가 없다.


통영에는 총 4개의 시립도서관과 1개의 경남교육청 소속 도서관이 있고, 거리도 모두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나는 그날 발길이 이끄는 대로 또는 그날 끌리는 산책로와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간다. 


통영시립도서관은 집에서 10분 거리, 롯데마트와 가까워 쇼핑을 할 때 들르기 좋다. 

통영시립충무도서관도 집에서 10분 거리, 바닷가 산책로와 황톳길 맨발 걷기 장이 근처에 있어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에 좋다. 유아, 어린이 도서관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어 딸아이와도 가끔 가서 시간을 보낸다. 충무 도서관에서는 시원한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통영 도서관은 아기자기한 예쁜 식당 와 카페가 정겨운 봉수로에 위치해 있는데, 맛있는 튀김덮밥과 전혁림 미술관, 입구의 숲길이 너무 멋진 용문사와 가까워 책을 읽다가 산책을 하러 가기에 좋다.  

전혁림 미술관, 통영  시립 도서관, 봉수길 정겨운 목욕탕[약수탕]
튀김덮밥, 봉수길, 통영 시립 도서관

모든 도서관에 회원증을 만들어가지고 도서관에 갈 때마다 여러 권의 책을 빌려 집에 쌓아 놓고 읽는데, 그걸 보고만 있어도 왠지 배가 부르고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물론 빌려다 놓고 가끔은 아예 펼쳐보지도 못하고 반납하는 책들도 있다.  

가까운 도서관에 가고, 책을 빌리고, 때론 도서관에서 때론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일은,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나에게 제일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일 중 하나이다.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 "기분"을 많이 살피며 나의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어떤 선택을 할 때도 그 일을 해야 하나 하지 않아야 하나 따지기보다는 선택을 할 때 내 기분이 좋은가 아닌가를 따진다.

 

그러던 차에 너무 좋은 책을 한 권 만났다. 아마도 내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에 도서관의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와 선택된 것이겠지?

제목도 "좋은 기분(작가 박정수)"이다.

<녹기 전에 BEFORE IT MELTS>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통해 사람들과 '시간'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 젊은 사장님이 쓴, 신입 직원 고용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였던 160페이지 가량의 글이 책이 되어 발간되었다. 


<녹기 전에>의 아이템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화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보다 오래가는 화두는 없습니다. 영원조차 시간에 속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좋은 기분이나 행복이라는 개념도 사실 시간을 음미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시간 속에는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고, 환경이 있고, 공동체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녹기 전에>는 이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시간이라는 화두에서 파생된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P16, 좋은 기분 중에서 


대기업에서 만들어낸 그럴듯한 브랜딩이 아니라,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의 치열한 고민과 사색을 통해 만들어진 <녹기 전에>라는 브랜딩이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럽고도 놀라웠다. 작가님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 일을 대하는 마음, 세상을 보는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되어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참으로 오랜만에 쉬지 않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지난 8년간 케냐에서 커넥트 커피를  운영하면서 내가 가졌던 마음과 철학, 직원들을 대히며 해왔던 고민들이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겹쳐서 떠올랐고, 커넥트 커피에 들어서며 먼저 반갑게 웃어 주었던 손님들, 낯선 땅에서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었던 손님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겹쳐졌다. 처음과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무뎌졌던 내 마음도 떠오르고,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과 타협하던 순간들의 부끄러움도 떠올랐다. 

장사가 안되고 손님이 없을 때 부끄러워 화장실에 숨어있었다는 작가님의 고백에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그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되어 짠해졌다. 


인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사는 간단히 말해서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일입니다. 즉, 나의 현재 상태와 대화에 임하고자 하는 의지 등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우리는 손님에게 좋은 기분을 드려야 합니다. 정말이지 그거 하나면 됩니다. 좋은 기분은 '기쁨'이나 '쾌락'어럼 정해진 기분이 아니라 '전보다 나아진 기분'입니다. 
행복의 공식은 매우 간단하지만 실제로 마음에 새기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만의 행복을 유지하는 깨달음을 얻고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마음의 근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저는 접객일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접객은 확실히 자기 수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매일 다른 사건이 펼쳐집니다. 그 사이에 우리는 각자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며 각자 다른 것을 배워갑니다. 
P85, 좋은 기분 중에서 


면접에서 만났던 수백 명의 친구들을 생각하며 직원을 대했던 내 마음이 작가님의 마음과는 많이 달랐구나 반성하게 되었고, 신입 직원들에게 인사를 가르치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다정하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어야 하는데 후회도 들고, 나는 이런 태도로 손님을 대했던가 돌아보게도 된다. 


우리는 좋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살아갑니다.
사실 누구나 이러한 삶의 목적을 어렴풋하게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목적이라는 게 글로 적거나 외운다고 해서 기억되거나 체화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좋은 기분이라는 감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포착하는 세상의 갖가지 감동의 신호들을 그냥 흘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P157, 좋은 기분 중에서 


작은 가게에서 마음을 담아 상품을 만들어 내고, 유리창 너머로 손님을 기다리고, 맞이하고(접객), 손님들과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 자기를 수양하듯 일하는 것. 

책을 통해 엿본 작가님의 일과 삶을 돌보는 하루하루가 너무 따뜻해서 당장이라도 작가님의 가게 <녹기 전에 https://www.instagram.com/before.it.melts/>로 달려가 "쌀"맛 아이스크림과, "쑥"맛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씩 맛보고 싶어 진다. 


" 사장님 책 너무 좋아서 통영에서 여기까지 달려왔어요~" 반가운 척도 슬쩍 건내보고 멋진 작가님과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다.^^  


좋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일 수 있겠다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100퍼센트 공감하며 ,  오늘도 내 온몸의 신경세포를 다 동원해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찾고, 그것들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기분 좋아지는 책 한 권을 읽고, 향이 좋은 커피 한잔을 마시고, 하루가 다르게 데워지는 공기와 바람을 느끼며 여유로운 아침을 호사롭게 누린다. 

기분이 너~~~ 무 좋다. 

 통영 도산면 네르하21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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