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YK Sep 11. 2022

나다움. 당신 다움을 간직하고 걸어가자.

변화에 주눅 들지 말고 당신 다움을 간직하고 걸어가자.


운동할 때나 걸을 때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 주변의 소리에 귀를 열어놔라. 이어폰을 끼고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그 시간 그곳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다. 걷기를 하거나 뛰기를 하거나 운동을 하다 보면 이어폰을 끼고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운동을 동시에 한다. 사람들은 시간에 쫓긴다. 시간을 더 잘 활용하고 싶어 한다. 스마트폰이 생긴 후부터는 한 가지만 하지 않는다.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 간다. 운전을 하면서 문자를 보내고 운동을 하면서 음악을 듣고 검색을 하면서 통화를 한다.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싫어한다. 무엇인가를 계속하고 있어야 한다. 음식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도 식사 전 음식 사진을 찍어야 한다. 먹는 것보다는 사진이 중요하다. 인스타에는 내가 어디에 있었다는 흔적들을 남기는 놀이가 이미 정착되어 있다. 골프장에 가면 골프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증숏을 찍는 게 유행이다. 그래서 옷을 몇 벌 가져가서 예쁜 인증숏을 남기고자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에 하나씩이라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고리타분해한다.


그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재미없고 무료하다. 시간도 없고 바쁜 세상에서 지금 하나에 하나씩만을 하는 게 너무 고지식하게 느껴진다. 문명의 기기가 발달할수록 우리는 그 문명의 기기를 따라가야 하는 숙명에 빠지게 된다. 그런 것들을 따라가지 못하면 꼰대가 되고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되어간다. 사람들이 꼰대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쫓아가지 못함에 부끄러워하기조차 한다. 하나에 하나씩이라는 말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 되어 있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해 내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지금 시대에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듯하다. 정말 하나에 하나씩 느리지만 그렇게 걸어가는 사람들은 늦쳐지고 미련한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인가? 장인이라는 사람들은 지금도 곳곳에 존재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묵묵히 지켜오며 자신의 전문성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혼자서 걸어가며 많은 굳은 살을 벗고 또 벗어 한 분야의 장인이 되어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다. 기나긴 시간이 주는 가치를 스스로가 깨닫기 전에 묵묵히 걸어온 것이고 그게 지금은 스스로가 장인이 되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즉흥적 반응과 순간의 멀티플 레이저 사고가 아닌 하나의 길을 소신껏

 걸어온 것이다. 분명 힘들고 고난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수도 없이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헛되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동시 다발적으로 생기는 세상의 변화 속에 자신이 걸어온 길이 외롭더라고 묵묵히 걸어온 시간이 그들에게는 장인이라는 전문성을 선사해 준 것이다. 되돌아보면 다시는 걸어오지 못할 듯 하지만 이미 자신은 우뚝 솟아난 큰 나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조금씩 허리가 굽고 힘이 약해져도 자신이 걸어온 길의 흔적은 남을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를 소화하려 한다.


 하나에 하나씩을 말하는 것은 고지식하고 볼 품 없어 보인다. 그럴 시간조차 없다. 하루에 해야 할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늘 플러스를 이야기하지 마이너스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하기만 하기에 우리의 삶이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빼어야 시간과 여유가 생기지만 계속 플러스만 해 나가고 있는 게 현 사회의 모습이다. 멀티는 효율을 이야기한다. 효율은 시간 대비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말이다. 효율을 만들기 위해 회사에서도 자동화를 요구하고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것들을 소화하기를 원한다. 회사원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진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다른 것들을 찾고자 하는 욕구는 높아지게 된다. 일을 함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마이너스 일처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회사는 더 나은 것들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빨라지는 속도에 회사의 생존들이 위태롭기 때문에 묵직하게 하나를 밀고 나가는 게 버거워지는 게 현실이다. 회사는 더욱 사람들을 푸시한다. 사람들은 빠른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기까지 한다. 변화는 속도에 나이도 부담되는 시대가 되었다. 어디까지 우리는 변해가는 시대에 따라갈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변화를 쫒기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분야에 장인이 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것도 갑자기 변화의 바람을 탈 수도 있다.



누나가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네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고모는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혼자 살다 보니 내가 죽기 전에 조카하고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살다 이 세상을 떠날 때면 아무것도 없는데 욕심부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살아 있는 동안 재미있고 행복하게 고모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살아가려고. 그게 조카에게 선물하고 가족들에게 베푸는 거 아닐까. 그리고 너는 너무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해.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 갖고 싶은 물질도 많아지거든 그리고 새것이 계속 나오거든. 물질주의에 빠지면 네가 따라가지도 못하는 물질의 집착에 너를 잃게 되니 살아가는데 너무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해. 가족들과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작은 행복들을 찾는 게 더 즐겁게 사는 방법일 거야."


누나와 아이의 대화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멀티 플레이어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의 세상에서 그리고 플러스의 사회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덧붙이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물질주의처럼 변하는 것만을 쫒고 그 흐름에 휩쓸려 가지 말고 자신의 확고한 철학을 단단히 세우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작은 행복들을 만들어 가는 것. 그런 삶을 잊지 말고 살아가면 행복은 우리 곁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것에 휩쓸리고 남들이 하니 나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누구에겐가 나의 잘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 이 모든 것들은 나다움은 사라지고 남다움만을 추종하는 팔로우로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다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리고 나다움은 멀티플레이어를 지양한다.


나다움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찰하며 걸어가는 것이다. 열매 꽂이 지고 열매가 맺지 않아도 그것은 나무이다. 열매를 못 맺혔다 해도 나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무는 나무이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 다움을 잃지 말고 다움을 간직하며 시간의 축척을 믿고 한 발씩 한 발씩 걸어가자.

이전 19화 자기 주도적으로 산다는 것? 나를 찾는 마음 챙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