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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Sep 07. 2021

비가 내리고 막걸리가 흐르면 아빠와 얘기가 깊어진다.

비가 올 때 할 수 있는 말

올해는 여름 장마가 아니라 가을 장마인 모양이다. 무더웠던 여름날을 식혀줄 장맛비가 때를 잘 못 맞춰 가을에 오고 있다.

 

때아닌 가을 장마에 어리둥절 하지만 좋은 것도 있다. 선선한 가을날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전과 막걸리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기름진 전에 톡 쏘는 막걸리, 그리고 얼큰한 취기를 달래주는 가을 비바람의 조화는, 다른 계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을만의 매력이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밤과 함께 이야기도 깊어진다.



    “가서 막걸리 좀 사 와라!”


계속되는 가을비에 결국 우리 집도 전을 부치고 말았다. 물론 막걸리도 빼놓을 수 없었다. 점점 없어지는 전과 비례하여 우리 가족끼리 부딪히는 술잔도 늘어났다. 그렇게 기분 좋게 먹다 보면 가족끼리 못 했던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럴 때 주로 아빠와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엄마와는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같이 밥 먹을 때나 함께 외출할 때, 이것저것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빠는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시기 때문에 같이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가족끼리 술을 먹는 날 아빠와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쉽지가 않네요…”


이날 나는 아빠한테 그동안 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놨다.


작년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는 나만의 콘텐츠를 제작해보고 싶었다. 회사에서도 음악 콘텐츠 에디터로 일했으나, 회사 간판 없이 나만의 콘텐츠로 승부를 봤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1년 뒤 브런치를 개설했고, 지난 6월 브런치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됐을 때, 누적 조회 수 10만을 달성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나 퇴사할 거야”, “나 유튜브(SNS) 할 거야”라는 ‘직장인 2대 허언’을 나는 실제로 지킨 것 같아 뿌듯했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지난 7, 8월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다. 전보다 많은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구성해 보려 했다. 그 사이에 자격증도 하나 더 따고, 책도 더 많이 읽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해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의욕 넘치는 마음과 달리,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으면 ‘뭐… 뭐부터 해야 하지?’하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뭔가 하나를 시작하면 다른 것을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런 기분 탓에 뭔가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게 일상이 조금씩 헛돌기 시작하더니,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성취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퇴사 후 그동안 제대로 뭔가를 하긴 했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분명 조금씩 내가 목표했던 것을 이뤄나가고 있었지만, 높인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탓인지, 그동안 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쫓겨서 하지 마. 아직 아빠가 한창일 때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


그동안 강하고 무섭기만 했던 아빠는, 나약한 소리 한다고 질책하기는커녕, 진심으로 위로를 건넸다.


아빠는 함께 옆에서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성실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항상 모든 일에 열심이셨다. 그렇게 아빠는 자수성가하여 우리 가족을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 아빠는 그래서 항상 나에게 ‘성실’과 ‘노력’을 강조하셨다. 그런 아빠에게서 “괜찮다”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당연히 “더 열심히 해라”라는 답변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예상 밖인 아빠의 위로에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곧 목이 막히며 울컥했다. 진심 어린 아빠의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되니, 답답한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빠의 진심 어린 위로에 나도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다시 아빠의 잔을 채워드리고 아빠와 술잔을 부딪혔다. 그렇게 그날 아빠와 나는 깊은 대화를 나누며 큰 막걸리 통 3통을 비웠다.




다음날 나는 막걸리 숙취에 앓아누웠다. 원체 숙취가 심하기도 하고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저녁까지 끙끙 앓았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시며, “그거 먹고 그러냐” 하고 웃으셨다.


그렇게 끙끙 앓고 난 다음 날 아침, 숙취가 풀린 건지 그동안 골머리 썩였던 근심이 사라진 건지, 마음이 평온해졌다.


밖을 보니 비는 그쳐 있었고, 어느새 하늘은 맑게 갰다.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는 이미 아빠가 출근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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