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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래서 뭘 어쩔 건데?

by 맨오브피스

'바뀌고 싶다 →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게 인생 아닌가? →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닌가? → 그러나 바뀌고 싶다 → 하지만…' 이런 생각이 끝없이 돌고 돌았다.


일단 책과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뒤졌다. 원래부터 자기 계발 콘텐츠를 좋아하긴 했다. 부지런히 살아라, 돈을 모아라, 시간을 아껴 써라, 죽어라 일해라 등등... 다 좋은 이야기지만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 부지런히 살고 있었고, 돈도 착실히 모으고 있었고, 시간을 딱히 낭비하는 편도 아니었고, 일에도 밤낮없이 매진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하라는 소리가 제일 난감했다. 나는 일에서 성취를 느끼고 있었고, 쉴 때는 원하는 만큼 게임을 했으며, 아내와도 적절히 시간을 보냈다. 이미 어느 정도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배부른 소리인가? 번아웃인가 싶었지만 나는 과거에 번아웃되어 봐서 안다. 그 느낌과는 달랐다.


그럼 뭐냐고 대체…


어느 날 우연히, 정말 우연히 스토아 철학에 대한 영상을 클릭했다. ‘스토아 철학이 알려주는 인생의 교훈 10가지’ 느낌의 뻔하다면 뻔한 썸네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기적적 우연이라고나 할까. 아마 자기 계발 영상과의 연관 콘텐츠로 흘러 들어왔지 싶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을 연마하는데 힘쓰고, 내 통제권을 벗어난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투자로 부자 되는 10가지 꿀팁!' 같이 자극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뭔가 와닿았다. 삶의 자세라는 평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했다. 영상 속 철학자의 흉상을 쳐다보는 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충동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꼭두각시가 되지 말라(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 같은 말은 괜히 나 들으라는 것 같았다. 변화에 목말라있어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소비한 그 어떤 콘텐츠보다 흥미로웠다.


아마 나는 더 멋있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스토아 철학은 어째서인지 멋있었다. 근거는 없지만 나를 더 멋있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여태껏 살면서 철학을 접한 적이 없기에, 그 신선함이 주는 충격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적당히 일하고 돈 벌고, 너무 힘들지 않게 운동하고, 심심할 때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치킨이 당기면 시켜 먹고... 나름 행복한 세팅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모습은 아니라 느낀 듯하다. 행복한 삶은 소중하다. 그러나 그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더 큰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고통을 극복한 뒤 느끼는 해방감. 못할 것 같았던 일을 해낸 뒤 체감하는 성장감. 후회 없이 다 해냈다는 후련함. 그게 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잊어버린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터닝포인트가 되는 장면에서 반드시 화장실을 간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본다. 영화 주인공감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거울 속 나를 쳐다보았다.


얼굴은 뭐 그럭저럭 평범한 것 같으니 불만 없었다. 그런데 몸이 좀 별로였다. 현대의 30대 남성에서 흔히 보이는 적당한 뱃살과 옆구리살, 처진 가슴 근육… 적당히 불행하지 않은 나의 생활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그냥 만족하면서 살까? 아니면 뭐라도 빡세게 해 볼까? 하지만 그건 귀찮고 힘들 텐데. 근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잠깐, 뭐 이리 생각이 많아?


일단 몸을 움직여 생각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해치우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적당함이 문제다 적당함이! 적당한 몸을 매일 목격하는 현실부터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다음날 바로 헬스장 PT를 등록했다. 원래는 돈이 아까워 PT라는 존재를 멀리했었다. 하지만 내 삶을 바꾸는 여정에 쓰는 돈이라 생각하니 괜찮았다.


헬스장 관장님 권유로 인바디 검사를 했는데, 나의 몸은 체지방률 30%가 넘는 비만. 옷으로 잘 가려져 있었지만 현실은 지방이 몸속에 촘촘히 쌓여있는 상황이었다. 인바디 기계가 '나름 운동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비웃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팩트는 팩트니까. 원래 아저씨 되면 다 그렇다는 자기 위로로 회피해선 안 됐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40대라는 한탄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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