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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기혐오

by 맨오브피스

데이비드 고긴스만큼 강인해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 본인의 한심한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를 닮고 싶었다. “에이~ 그 정도는 괜찮아~”라며 나를 감싸주는 주변 사람들 말에 악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예의상 해주는 말이라도, 타인이 나에게 뭔가를 해주었다는 사실은 힘이 된다.


동시에 그 말에 기대어 어물쩍 넘어가는 나의 모습은 혐오스러웠다. 위로받는 것은 괜찮다. 기대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위로를 받았으면 이제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해결책을 살펴보고 행동해야 하지 않나? 그치만 먹고 사느라 바쁘다고… 그러면 문제를 철저히 무시하든가!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뻔뻔할 줄도 몰랐다. 그럼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나는 정체되어 있었다.


배려에 기대어 적당히 넘어가는 나의 태도가 행복과 공허의 짬짜면을 만들었던 것 같다.


나이도 적당히 들었겠다, 나는 남의 시선에 더 이상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가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신경 쓰였다. 이렇게 보였으면 어떡하지, 저렇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왜 걱정하고 앉았는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면 고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실체도 없는 걱정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푸시식 꺼지는가?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는 비전과 완다라는 두 인물이 부엌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비전의 이마에는 미지의 힘이 담긴 마인드 스톤이 박혀있는데, 완다는 그에게 "(그 힘이) 두려워?"라고 묻는다. 그리고 비전은 "이 힘이 뭔지 이해하고 싶을 뿐이야"라고 답한다. 그렇다.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도대체 나는 왜 뻔뻔하지도 돌진하지도 못하고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묘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어중간한 성취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더 밀어붙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힘든 일이니까. 적당히 마무리 지어도 다른 이들은 나를 인정해 줄 것이다. 이 정도도 잘한 거라며 스스로를 감싸면 만족스럽기까지 하다. 그럼 거기서 만족하고 끝낼 일이지, 왜 불편해하고 있지?


결국 나는 스스로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인스타그램 필터처럼 결과물의 약점을 요령 있게 가려왔던 것이다. 나는 그 원리를 불쾌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리 행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약점을 외면하는 스스로가 멋있는가?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운가?

어정쩡한 마음으로 보내는 하루가 보람찬가?


있는 그대로 보자, 있는 그대로... 고통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 살 걸...'이라며 후회하는 노인이 되기 전에 뿌리 뽑아야 했다. 뭔가가 납득이 안 되면? 납득될 때까지 알아보면 된다. 납득이 되었으면? 행동하면 된다. 그렇게 안 할 이유가 있는가? 그냥 하기 싫다고? 그럼 당당히 하기 싫다고 하면 된다. 그건 또 아니라고? 너 이 자식 하나만 해라!


나는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 게 아니라, 더 나아지고 싶었다. 30년 넘게 요령 피웠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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