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1 오리엔테이션
공식적으로 과정을 시작하기 전, 박사과정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은 전체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번, 사회과학 대학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번, 경제학과 박사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번, 총 세 번이 있었다. 박사과정을 해 나가면서 필요한 것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은 전체 박사과정 세션에서 제공을 해주었지만, 가장 실질적인 것들은 경제학과에서 제공해준 오리엔테이션이 가장 유용했다.
미국과는 달리 코스웤이나 박사 자격시험이 없는 대신에 1년 차가 마치면 업그레이드 (전공에 따라 Confirmation) 세미나라는 구술시험이 있는데, 약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가량 그간의 연구에 대해 교수님들과 동료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한 후, 심사 교수님들(Examiner, 일반적으로 두 명)에게 혹독한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에 적절히 대답했는지, 그간의 연구성과가 적절한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합격한 학생은 PhD Candidate이 되고, 불합격한 학생은 한 번의 기회를 더 받는다. 만약, 두 번째 업그레이드에서 불합격한다면 박사학위 수여를 못하고 과정을 중도 탈락하게 된다.
그런 살벌한 설명은 경제학과 오리엔테이션에서 알려줬는데, 다행히 같이 학위를 시작하는 5명의 친구가 같이 듣다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총 4년이 소요되는 경제학과 박사과정에는 약 스무 명가량의 학생이 있었는데, 이번에 나와 같이 시작하는 학생들은 나이지리아 중앙은행 출신인 Sunday, 오만 정부 장학금을 받고 온 Maryam, 60 가까이 되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영국 장교 출신의 Richard,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에서 유학 온 Xiaoyu 이렇게 5명이었다. 한 달 후 이집트 정부 장학금을 받고 오는 Noha도 같은 동기인데 학생에 따라 시작 시간을 조금 늦게하는 것도 용납을 해주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좁은 책상에 개인용 PC가 한 대씩 놓여있는 박사과정 연구실로 이동했다. 몇 자리를 제외하면 내 컴퓨터가 모두에게 노출되는 개인 사생활이라고는 전혀 없는 공동 공간이었지만, 캠퍼스 내에 내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나름 소속감을 주었다. 이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며 2년 여를 보내게 될 터였다. 논문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해는 논문 저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2인 1실로 사용하는 개인 연구실을 제공해주는데 그때까지는 이 방에서 다른 동료 학생들과 기쁨과 슬픔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나의 오리엔테이션은 이렇게 끝났다. 내가 좌충우돌하는 사이 아들의 학교도 알아봐야 했다. 아들은 11년 10월 생인데, 만약 8월 30일 이전에 태어났다면 영국의 유치원 과정 Reception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만 4세가 되지 못하다 보니, 한국의 어린이집 같은 Nursery에 들어가야 했다. Nursery의 경우 영국 정부에서 하루에 3시간은 비용을 지원해주므로 주 15시간까지는 무료로 보낼 수 있었지만, 당장 영어를 배워야 했기에 우리가 조금 돈을 부담하더라도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풀타임으로 보내기로 했다.
영국 교육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던 터라, 어떤 기준으로 학교를 골라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었는데, 마침 집 근처에 있는 학교 두 곳이 있어 방문해보니, 한 곳은 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노는 환경이었고, 나머지 한 곳은 영국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아담하지만 차분해 보이는 환경이었다. 두 곳 다 마음에 들었지만, 기왕이면 학 잔디밭이 있는 곳이 낫겠다 싶어 그곳으로 선택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학교에서 Admission을 주자마자, 선생님들의 방문이 있었다. 두 분의 선생님들이 집에 방문해서 아이와 같이 사진을 찍고, 아이의 방에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어정쩡하게 통역 비슷한 역할을 해야 했는데, 아이를 배려해주고 아끼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느껴질 수 있었어 좋았다. 결국 그분은 아들의 인생 선생님이 되셨는데, 그 날부터 2년간 아들을 친아들처럼 돌봐주셨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 나와 아들과는 달리,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다. 영어를 꽤 잘하는 아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식 엑센트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또,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는지 당황스러워했다. 얼마 안 지나서 약간의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아내가 일주일에 반나절은 자기를 위해서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부부끼리 조촐히 시내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 커피숍들을 돌아가면서 방문해서 커피 맛을 비교해보고, 성당 앞 벤치에 앉아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둘만의 유럽여행'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내도 차츰차츰 영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불확실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들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주어졌다.
동네 커피숍 탐방기 (온 시내에 있는 커피숍이란 커피숍은 다 다니면서 품평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