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라에몽 지갑

by 윤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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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 지갑은 복학 후, 단령이가 아트박스에서 선물로 사다준 전역 선물이다. 뭔 전역 선물이 도라에몽 지갑이냐. 그리고 뭔 대학생이 그런걸 들고 다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사실 2학년때까진 국민학교였지만 비밀로 하기로 한다).


인쇄 공장을 다니시던 아버지는 딱히 두 아들에게 줄건 없고, 남는 종이를 잔뜩 얻어오는 일이 있었다. 별 관심 없던 형과 달리 아기때부터 종이접기나 그림 그리기. D.I.Y 부루마블(서울 대신 경남 양산시가 가장 비싼 버전인)을 만들어 놀았는데, 딱히 재능이나 손재주를 발견하기엔 정말 그냥 놀이 수준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마을버스 타라고 준 동전으로 깨비책방에서 도라에몽을 한 권 빌려가는게 인생의 낙이었던 나는 정신 차려보니 덕계 초등학교 도라에몽 팬클럽 회장이 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게 잘 보여야 도라에몽을 보게 해줬으니까(지금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작가에겐 한 푼도 안 가는 방식의 만화 공유였다). 그래도 명색이 회장인 나는 싸인펜으로 도라에몽을 열심히 그려, 코팅지로 코팅하고. 가위로 오린 뒤 펀치로 구멍을 뚫어 열쇠고리를 만들었다. 팬클럽에 들어오면 이걸 받을 수 있다. 인생 첫 덕질과 동시에 동인 활동이었다. 팬클럽 외의 친구들에게 수요가 제법 있어서 200원에 판매하기도 했으니, 첫 수익 창출이기도 했겠다. 말하자면 도라에몽은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위>의 재미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 자연스럽게 만화가를 꿈꾸다가 디자이너, 뮤직비디오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꿈을 키워갔다. 장르를 바뀌었지만 한번도 창작자의 길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도라에몽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완전히 아닌건 아니고 그리 심한 과장은 아니다 정도?


참고로 도라에몽 주머니에서 나온 기상천외한 아이템들이 딱히 꿈과 희망을 주진 않았다. 그것들은 어린 나이에 봤어도 너무 허무맹랑했다. 특히 만약에 박스? 장난하냐


https://www.youtube.com/shorts/_m76wFW3n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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