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정원 2

관계 정원 배경

by 장동혁

* 1981년 전북 진안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걱정거리 하나가 생겼다. 난생처음 맞이한 변화로 피하거나 거부할 수 없어 근심은 커져만 갔다. 틈만 나면 안방 거울 앞에서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려 감추고는 민머리를 떠올려보았다. 지나던 아이들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내기할 정도로 머리를 길렀던 나로서는 민머리가 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숱한 고민에도 아랑곳 없이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이발소 거울 안에서 체념한 채 앉아 있는 한 소년과 마주하게 된다. 보자기가 둘러지고, 서늘한 금속성 물체가 머리칼을 헤집고 들어왔다. 무심한 바리깡(이발기)이 딸깍거리며 지나간 자리마다 어김없이 허연 길이 났고, 하얀 보자기 위로 시꺼먼 뭉치가 흘러내렸다.


머리칼이 지워진 얼굴은 상상 이상으로 생경했다. 허탈해져 돌아오는 길에 양복점에 들러 황금색 단추 달린 까만 교복을 맞추었다. 내친김에 성지서림에 들러 참고서의 왕 ‘완전 정복'도 장만했다. 대체 뭘 정복해버리겠다는 건지 이름도 무지막지했다.


작은 신체 변화 하나가 불러온 동요와 미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나를 움츠려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체성의 일부였던 긴 머리를 잃고 돌아오던 그해 겨울은 사거리 빵집 쇼케이스 안에서 부옇게 빛나던 미색 케이크 상(象)과 함께 유독 침침하게 남아 있다.


모든 게 혼란하기만 하던 그때 잘 지났더라면 관계 정원의 비옥한 자양분이 되었을 사건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눈 마주치기 힘든 사람이 생겼다. 가슴께서 느껴지는 예리한 통증 때문이다.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친구만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가 돌아갔다. 1년 후배로 알고 지낸 지 좀 된 아이였다.


때로는 가슴이 너무 부풀어 올라 중심 잡고 걷기 힘들 정도였다. 급기야 벅차오르는 그 무언가를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만나보고 싶었지만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소심한 데다가 보수적이던 교회 정서상 남녀 학생이 한 공간에 머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게 새벽 만남이다. 새벽 네 시에 집 앞으로 나와 줄 수 있느냐는 말에,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왜 그러는지 알려달라고 졸라댄다. 난처해진 나는 지금은 안 되고 내일 나오면 말해줄 거라 답을 한다.


밤 새 눈이 내렸고, 친구와 둘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대책을 세우다 보니 금새 날이 샜다.


쑥색 반코트로 기억한다.

그런데 세상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밤새 내린 눈으로 익숙하던 마을은 지워져 버렸고, 대문 앞에 서 있는 아이는 더 이상 무슨 일인지 알려달라고 떼쓰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고개만 떨군 채 말이 없다.


나왔으니 무슨 일인지 알려 달라는 일격에, 밤 새 친구와 짜낸 형편없는 시나리오는 아득해져만 갔다.

일단 걷자!


이 회피성 발언이 그때 내 머리가 고안해 낸 유일한 언어였다. 숨 막힐 것만 같은 정적을 배경으로 뽀드득 소리만이 오갔다. 새하얗게 변해버린 세상 안에 오직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비현실감 속에서 그 어떤 언어가 탄생할 수 있을까.


적막감과 옥죄어 오는 무능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결국 무슨 말인가를 꺼내놓고 말았다. 그 말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그 아이가 내놓은 답만큼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선배로서 존경할 테니 후배로서 아껴 달라던 그 말. 몇 번이나 되뇌었을까. 너무나도 완벽해 보여 절망스러웠던 그 말을.


남몰래 키워왔던 희망이 부질없음을 자각한 순간 집들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해석의 여지없는 명백한 거부 의사로 받아들인 나는 그만 발길을 돌리는 게 좋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성가대 지휘자와 반주자로 눈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될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고,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말 대신 글로 마음을 전하기로 맘먹는다. 비뚫어진 우표를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그러던 어느 날 성경책 사이 고이 접어두었던 편지가 발각되고 만다.


싸늘한 형광등 아래서 온기없는 설교가 이어졌고, 지엄한 명령과 함께 제법 뜨거웠던 내 염원은 산산이 흩어져 관계의 정원에 뿌려졌다. 갈기갈기 찢긴 편지와 함께.


인생을 리듬이 있는 댄스보다는 분석하고 정리해야 할 명제로만 바라보는 반(反) 카리브적(Caribbean) 풍토가 탄생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설렘과 초조함 사이를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며 키워온 실낱같은 소망은 그렇게 뿌리 채 뽑혔다. 그 상실감은 계절이 두 번 바뀌어 투닥투닥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마당 한쪽에서 진한 오이향이 풍겨올 무렵에야 잦아들었다.


우리는 관계를 배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계를 맺어간다. 크던지 작던지, 풍성하던지 스산하던지 자기만의 관계의 정원을 가지게 되는 이유다. 무슨 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자랄지는 정원의 토양에 달렸다. 잘 가꾸어진 건강한 관계로 채워진 정원에서는 풍성한 소산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나온 열매나 가지, 잎들이 자양분이 되어 토양은 비옥하다.


꼭 한 번 말하고 싶었지만 미루고 미루다 해묵은 과제가 되어버린 미안하다는 말. 용기와 지혜 부족한 나에게 길조(吉鳥)처럼 날아든 전화 한 통은 회한으로 죽어가던 나무에 변화와 성숙이라는 싹을 돋게 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을 걸어와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 그분의 아량에 감사를 느낀다.




한 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관계의 정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느긋하게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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