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키즈였던 나에게 단독 주택, 전원주택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꿈같은 단어였다.아주 어릴 때 빼곤 초등학생 때부터 아파트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다른 주택의 모습은 낯설고 신비로운 생활공간이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60%가 넘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나머지가 빌라, 다세대 주택, 일반 주택 등에 거주한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잠깐 다세대 주택 생활을 1년 정도 한 것이 전부인 나에게 마당이 있는 집은 확실히 내 삶의 영역에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할머니 집이나 어렸을 때 친구 집에 갔을 때 느끼는 감정이 전부였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인 90년대에는 많은 친구들이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넘어가는 시점이었고 중고등학생 때는 거의 모든 애들이 아파트에 살았다. 도시에서 자랐기에 그런 주거 환경이었겠지만 확실히 30대 후반인 소위 M세대에게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은 낯선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전원주택의 이미지는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중년 혹은 노년 부부가 푸른 잔디가 깔리고 정원에서 화초를 가꾸며 소소하게 농사지으며 사는 여유로움의 이미지가 나에겐 있었다. 1층이나 2층으로 지어진 집에는 삶의 여유가 묻어 나오고 차 한 잔의 쉼이 있는 공간이거나 다락이 있어서 다소 비밀을 간직한 광경이 있는 곳으로 어찌 보면 내 주변보다는 영상 매체를 보고 느낀 게 많았다. 이런 나에게 전원주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아프게 되면서 였다. 평소에 같은 세대의 어른들보다 정정하고 건강해서 우리와 장거리 여행도 곧잘 떠나서 함께 둘러보고 지냈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병을 겪게 된 것이다. 2021년 1월, 우리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병원 검진을 받았는데 너무나 큰 병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온 가족이 충격에 휩싸였다.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몇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몇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수술 대기실에서 혼자 의자에 앉아 기다린 시간이 끝난다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자 마음은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했다. 수술실 앞에서 내내 대기하면서 심각하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수술과 별개로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긴 항암 치료를 받게 되었다.
수술 후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앞으로 있을 항암 치료와 이후 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와 어머니는 각자 집이 있었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고 흙을 밟으며 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 그런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같이 살고 싶은 나의 마음이 모아져서 주택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런 의중을 아내에게도 이야기했는데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던 아내도 마당 있는 집에 호의적이었기에 이해를 하고 같이 사는 것에 동의를 했다. 갓 초등학교를 들어간 아이에게 물어봤을 때는 장난감 옮기기가 싫다고 이사에 대해 별다른 생각은 없어 보였다.그래도 상상력을 키우고 층간소음 걱정 없이 뛰놀 수 있어서 아이에게 좋을 듯 싶었다.일단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와 아내는 일을 해야 했고, 어머니도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사셨고 아이 교육 문제도 있어서 도시 안에 있는 주택을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집을 찾아보는데 그게 전원생활을 꿈꾸던 막내 외삼촌 내외에게도 알려져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몇 년 전부터 시골에서 집을 지어 살고 싶어 한 외삼촌네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와 굉장히 친해서 왕래를 자주 하며 지내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아파트 생활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외삼촌은 전부터 교외에 땅을 사서 이사 가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게 되어 단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데리고 단독주택으로 가려던 우리를 보고 어머니와 외삼촌 내외가 함께 교외 주택에서 살면 어떻겠냐고 하며 추진을 하셨다. 외삼촌은 건축에도 관심이 많고 외숙모가 운영하는 공방 인테리어도 주도하며 나름 지식이 많은 편이라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그렇게 우리와 어머니가 함께 가는 시나리오는 스톱이 되어 없던 일이 되었고, 외삼촌 내외와 어머니가 함께 교외 주택을 지어 사는 것으로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진행이 잘 안 되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사도 인생에서 큰 일인데 그보다 더 한 집 짓기는 얼마나 어렵고 큰 일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느새 세상의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어머니는 찬바람에 모든 것이 얼던 2월 말에 수술을 하고 병상에서 일어나 수술 자국도 아물며 거동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퇴원 후에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기거하면서 수시로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면서 새싹이 피어나는 봄이 되었고 외삼촌 내외와 교외 주택으로 가는 시나리오가 백지화되었을 때는 녹음 짙은 5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금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시나리오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내에게도 다시 설명을 하고 추진을 하게 되었다. 일단 어머니는 항암치료가 끝나고 요양병원 퇴원 후에 빠른 시일 내로 이사를 가고 싶어 했기에 완공된 주택을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도시 안에 있는 주택 매물을 찾아보다가 도심 전원주택 단지에 마침 매물이 있길래 부동산에 연락해보았다. 도심에 몇 군데 전원주택 단지가 있어서 우리는 이곳을 타깃으로 골라보기로 했기에 나온 매물에 관심이 갔다. 그 단지는 도심 안에 꽤 큰 전원주택 단지로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고 우리도 예전부터 알던 곳이라 더욱 마음이 움직였다. 부동산과 만나기 전에 먼저 아내와 나, 아이까지 우리는 주말에 동네 산책 겸해서 둘러보기로 했다. 각각의 개성으로 지어진 집은 서로의 매력을 뽐내며 푸른 하늘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집은 마을 중간에 위치하고 도로 옆이라 괜찮은 느낌이었다. 평일 오후 퇴근 후에 우리는 부동산 중개사를 만나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경량 목조로 지어진 집은 2층에 다락까지 있었고 방도 넉넉해서 어느 정도 조건을 충족했지만 황토로 마감을 해서 울퉁불퉁한 바닥에 관리가 조금 안된 느낌이었다.
어머니에게 답사 다녀온 이야기를 한 후 관심이 있어서 직접 모시고 재방문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연락을 해서 방문을 했는데 리모델링 비용이 워낙 많이 나와서 매매 계약을 하는데 난항을 겪다가 결국 무효가 되었다. 다른 집들도 뭔가 우리가 원하는 구조, 비용이 맞지 않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엔 토지 구입을 하고 직접 집을 짓기로 했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생각하지도 않은 전원주택 짓기가 현실화되었다. 평생 아파트에서 살다가 삶을 마감할 줄 알았던, 그게 아니더라도 단독 주택은 생각하지도 않던 내가 직접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까지 오게 된 게 신기할 따름이고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 갈지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긴팔 옷이 어색한 초여름의 중심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