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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May 19. 2024

누구나 안주머니에 사직서 한 장씩은 품고 있다.

삶의 방향을 바꿔버린 종이 한 장.

오랜만에 친구 A와 소주 한잔 마시다가 안주로 친구 B의 안부를 꺼냈다.


"시간 참 빠르다"


벌써 B의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라니.

멈춰있던 시곗바늘이 갑자기 뱅글뱅글 빠르게 도는 기분이다.

결혼 안 한 친구들과 있으면 시계가 멈춘 것처럼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데, 결혼한 친구의 아이 소식을 들으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미래의 시간으로 점프하는 기분을 느낀다.

안티 에이징을 위해선 아이들의 나이를 묻지 말아야 하는 걸까. 점프한 시간의 숫자만큼 순식간에 늙어 버린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만약에' 시리즈로 넘어갔다.

친구 A가 말했다. 

"만약에 그때 선봤던 사람과 결혼했다면 지금쯤 나도 초등학생 아이가 있었을 텐데.. "

"그러게. 그때 왜 헤어졌냐. 좀 잘해보지" 

친구는 이어질 내 잔소리를 예상했는지 급하게 화제를 돌리며 나에게 질문을 넘겼다. 

"넌 예전에 다니던 회사 그만둔 거 후회한 적 없냐?" 

"응? 갑자기 그건 왜?"

"그냥.. 네가 다녔던 곳 꽤 괜찮았잖아. 만약에 계속 그 회사 다녔으면 너도 지금쯤 돈도 모으고 결혼도 하고 남들처럼 살지 않았을까 해서"

"글치.. 거기 계속 다녔으면 진작에 나도 결혼해서 무난하고 순탄하게 잘 살고 있었겠지"

"그러면, 그만둔 거 후회 안 되냐?"

"글쎄.."


글쎄.. 잠시 멍 때림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날의 나는 서부영화의 총잡이처럼 하루종일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뺏다 하면서 하얀 봉투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봉투 구겨지는 거 아냐? 그래도 제출할 때는 빳빳해야 최소한의 예의일텐데...


안주머니의 하얀 봉투는 솜털처럼 가벼웠지만, 겉면에 꾸욱 눌러쓴 '사직서'라는 세 글자는 마치 부적에 쓰인 주술적 기호처럼 자꾸만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마법을 부렸다.

나는 출근하면서부터 그 마법의 봉투를 안주머니에서 밖으로 꺼낼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업무가 끝날 때쯤 꺼내는 게 낫겠지' 생각하다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상무님이 내게 오시더니 지난 3년간 고생했다며, 내년 정직원 승진 명단에 내 이름이 있을 거라고 넌지시 귀띔해 주셨다.   


뜻밖의 소식에 나는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는 드렸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사직서를 준비한 걸 아는 사람은 아직 없다. 

그럼 이번 일은 안주머니와 나만 아는 비밀로 하고 조용히 봉투는 찢어 버릴까?

사직서는 '안주머니 탈출 미수사건'으로 종결짓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회사에 계속 다니면 내년부터는 "어느 회사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H 회사요."라는 답변 다음 "아직 비정규직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마치 '둘이 어떤 관계야?'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아. 우리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야'라고 답 해야만 하는 '3년째 썸 타는 관계'처럼 '어느 회사 다니세요?'는 늘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 이성을 소개받는 자리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제 정규직이 되면 그냥 당당하게 " H 회사 다녀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냥 이렇게 계속 다니면 내 삶은 평화롭고 무난하게 흘러갈 것이다. 부가적인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회사의 정직원.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동일 업종의 다른 회사에 비해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다.

때 되면 좋은 사람 소개받고 이 사람이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결혼도 할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평범한 삶'으로 포장된 승차감 좋은 도로의 출발선이다. 

그런데 나는 왜 품 안의 사직서를 당장 찢어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걸까.



사실 처음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정직원 승진 예고를 들은 날로부터 일 년 전쯤부터다.

나는 비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었다.

업무시간의 대부분은 내가 책임자인 담당 업무를 하고, 저녁시간이 되면 '총무과' 업무를 보조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늘 야근이었다. 총무과 일은 언제나 다른 직원들의 업무가 끝난 후부터 시작됐다. 

거기다가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이사회와 감사 날짜까지 잡히면 업무량은 더더욱 늘어나 차라리 평일에 야근하지 말고 휴일에 출근해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하루는 눈 뜨면 회사 가고 퇴근하면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바로 잠들어야만 하는 게 전부였다.

가끔 야근이 없는 주간도 있었지만, 그런 날을 미리 예상하고 저녁 약속을 잡거나 다른 스케줄을 계획하면 어김없이 일거리가 생겨났다. 그래서 여자친구와도, 어떤 모임에서도 나는 '미리 약속'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늘 '그날 퇴근 해봐야 참석여부를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에 '야근 머피의 신'이라도 붙은 걸까 싶을 정도로 그 타이밍은 늘 절묘했다.

한 번은 당분간 특별한 일은 없을 거 같다는 부장님의 말에 회사 근처 헬스장을 등록한 적이 있었다. 

언제 또 늦게 마칠지 모르니 매일 가겠다는 건 사치일 테고, 가능하면 일주일에 2~3번이라도 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등록했는데, 거짓말처럼 등록한 바로 다음 날부터 야근이 다시 이어졌다. 

더군다나 회사는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생략했다. 저녁 안 먹고 일하면 막차시간은 피할 수 있지만, 체격을 키우고자 하던 내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헬스장은 등록한 날 이후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헬스를 비롯해서 그 당시 나는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가 컸다.

담당 업무상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더 큰 회사 사람들과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더 성장하고 싶은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당시 자기 계발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플랭클린 플래너' 인터넷 카페도 가입하고, 관련된 책들도 읽으며 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려 했다.


평일엔 시간을 확보하기 힘드니깐 어떤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에 편입학했다. 그 당시 방송통신대학의 수업은 모두 온라인 강의 혹은 교재로 진행하고 시험은 정해진 날짜에 지정된 건물에서 치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한 학기에 한두 번만 지정된 날(휴일)에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면 되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편입 후 한 학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시험날짜가 정해졌고, 나는 그날을 대비해서 주말마다 틈틈이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사회 날짜가 잡혔는데 하필이면 시험 치러 학교 가야 하는 그날이었다. 가능하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싶었지만 내가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시험을 포기했고, 학교도 그만뒀다.

어쨌든 회사생활이 먼저니까.


우연이었겠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이 회사에는 머피가 사는 걸까?

이래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다. 내가 뭔가를 계획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길 거니깐.  

회사 사정은 알지만, 언제 정직원이 될지도 모르고 일은 정직원 못지않게 하는 거 같은데(물론 업무의 중요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월급도 적고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다. 그러면 자기 계발이라도 해서 성취감이라도 느끼고 싶은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일상은 점점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사이도 좋아서 회사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우연히 대학 편입 요강을 보게 됐다.

에잇! 그냥 원서라도 한번 넣어볼까. 일종의 도박처럼. 많고 많은 대학 중에 딱 한 군데만 원서를 넣어보고, 합격하면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불합격하면 자기 계발이니 뭐니 다 잊어버리고 회사생활만 집중하자.계속 열심히 다니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동전 던지기 하듯 단 한 장의 원서에 운을 맡겼다. 그리고 면접을 본 후 합격을 통보를 받았다.

사실 막상 합격 통보를 받고도 며칠간 고민이 되긴 했지만 일단은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안주머니에 넣고 온 날 정직원으로 전환해 준다는 말을 들었다. 

기다려 왔던 정직원 소식인데.. 드디어 정직원이 된다는 기쁨 보단 머피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동안 회사생활과 자기 계발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던 '머피의 법칙'.

이번에도 그렇다. 

그만두려고 하니까 정직원을 시켜준다니. 

단순히 보면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전까지 계속 이어져온 머피법칙의 연장선일 뿐이다.

아쉬움은 남겠지만 나는 머피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계속 이어지는 머피의 울타리를 끊고 온전한 내 선택의 리듬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안주머니 속 사직서가 부화를 꿈꾸며 꿈틀거렸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따뜻한 사직서를 마침내 꺼냈다. 마술사의 모자에서 튀어나와 날아오르는 하얀 비둘기처럼 내 하얀 봉투는 상무님의 책상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퇴사를 만류하던 분들께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그리고 나는 그해 봄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편입학한 학교생활은 즐거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편입생과는 물론 기존의 재학생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했고 잊지 못할 추억들도 많이 남겼다.

그리고 4학년 때 나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빨리 학업을 마치고 졸업해서 취업준비를 할 건지, 아니면 이왕 편입한 거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갈 건지.

나는 영어가 굉장히 취약했기 때문에 보완할 필요가 있었고, 해외에서 한번 생활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어차피 늦은 나이에 편입한 거 일 년 더 늦는다고 큰 차이 있으랴. 어떻게 그만둔 회사인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나는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떠난다.


어학연수 기간 동안 수업료를 제외한 돈은 최대한 아꼈다. 

항상 마트에서 할인하는 저렴한 식재료로 집에서 직접 요리하고 점심 도시락도 직접 준비했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여행을 했다. 이왕 해외 나갔으니 dslr 카메라와 기본렌즈도 하나 구입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아마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나이 많은 졸업생으로 학교를 마치고 한마디 못하는 영어와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해외여행은 평생 꿈만 꿨을 거 같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내게 사진에 소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돈과 시간만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 기간 동안의 경험이 훗날 나에게 큰 자산이 된다. 나는 사진 관련 직업을 갖게 되고, 졸업 후에도 주기적으로 여행을 다니며 여행 콘텐츠와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다. 




"글쎄.. "

나는 잠시 멈췄던 말을 이어간다.

"글쎄.. 후회까지는 아닌 거 같다. 다만 주위에 안정적으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아쉬움은 있지. 없을 수가 없지..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거 같다.

물론 20대의 내 꿈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계속 그 회사를 다니는 게 맞는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때 회사 그만두고 계속 새로운 길을 선택한 덕분에 예전엔 몰랐던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됐고, 더 다양한 길을 발견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 거 같아. 그리고 그 경험들과 시간들이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좀 더 내 삶의 중심에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랄까. 

그전에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편리한 공간에서 관리비 내며 살아가는 아파트 주민 같은 삶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모든 걸 주도적으로 스스로 관리하고 가꾸는 단독주택 주인이 된 거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불안과 걱정도 있지만, 세상에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는 걸 인정하면 견딜 만 해."


"그래. 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됐다. 한잔 하자"


나는 맥주잔에 반정도 남아있던 소맥을 원샷한 후 잔을 다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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