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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May 22. 2024

대신 선택해 달라는 사람의 2가지 유형

답정너와 네탓인에 대처하는 방법

지인 C는 선택할 일이 생길 때마다 단톡방에 질문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동하면서 업무 할 태블릿이 필요한데 아이패드 하나 사야 할까? 조만간 가족들끼리 제주도로 여행 가거든. 여행 가서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아이패드에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더라"

하지만, 지인에겐 이미 노트북이 있다.

"근데 C야. 넌 이미 노트북 있잖아? 그게 업무 하기 더 편하지 않아?"

"아 노트북은 있지. 있는데, 아무래도 그거는 무겁고, 커서 들고 가기 불편할 거 같아서.. 가벼운 태블릿 구입하면 이북리더기 대신 전자책도 읽을 수 있고, 간단하게 인터넷 할 때도 유용하고, 서버에 접속해서 작업도 할 수 있으니까 좋을 거 같네"

이미 노트북이 있지 않냐는 말에 정곡을 찔린 듯, C는 아이패드가 필요한 다른 이유들을 쉼표 뒤에 주렁주렁 달았다.

"네가 말한 다른 여러 가지 기능들을 생각하면 태블릿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한데, 업무용이라면 그냥 있는 노트북 사용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 맨날 여행 가는 것도 아니고 여행 가더라도 렌터카 빌릴 거잖아? 아이패드가 저렴한 것도 아닌데 괜히 돈 쓸 필요 있어?"

"흠.. 그런가."

나는 내 생각을 전달했고 지인은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며칠뒤 단톡방에 '아이패드' 사진이 올라왔다.

"??"

"아이패드 샀다."

"뭐.. 전에는 안 살 거 같은 분위기 더니?"

"나도 고민했는데, 당근에 거의 사용감 없어 보이는 게 올라왔길래"

"아. 그렇게 고민하더니.. 가격만 맞으면 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날 이후로 한동안 깨톡방에는 '아이패드로 뭔가를 하는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아이패드를 사니까 확실히 출퇴근 시간에 책을 많이 읽게 되네"

"내 아이폰이랑 동기화되니까 편하네"

"넷플릭스 보기도 괜찮네"

"지금 제주돈데 가족들은 다 자고 나는 아이패드로 프로그래밍 작업 하고 있다 ㅠㅠ"

이런 식이다.

마치 나 아이패드 -너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샀는데 이렇게 잘 활용하고 있다고 인증이라도 하듯.

아이가 부모님에게 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숙제 검사라도 받는 것처럼.

뭐. 과정이야 어쨌든 자기 돈으로 자기가 샀다는데 이렇게까지 인증할 필요가. 싶다가도 한편으론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인증숏에

"아. 이제 그렇게 잘 사용하고 있다고 인증 안 해도 돼! 잘 샀네. 잘 샀어! 활용 잘하고 있네! 벌써 본전 뽑았겠다!! 알겠으니까 그만 올려!"

나는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꼭 물건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나 요즘 몸이 좀 안 좋은 거 같은데 한의원 가야 할까?" "어디가 좋다던데 여행 갈까?" 등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대부분을 깨톡으로 공유하며 의견을 묻는다.

처음에는 나도 C가 고민하는 여행지, 상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정보와 후기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 정성스럽게 조언을 해줬었지만 결국은 내가 해주는 조언보다는 늘 자신의 생각대로 구입하고, 여행 가고, 한의원을 갔다. (매번 그럴 거면 왜 자꾸 물어보는 거니..)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뭔가 질문을 하면

"사라!"

"가라!"

"해라!"에 더 큰 비중을 실어 답변한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이제 나는 알아버린 것이다.

C가 조언을 구하는 건 '선택을 대신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확인'을 구하는 거라고.

"ㅇㅇ 할까?"라는 질문이 깨톡에 올라왔다는 건 이미 마음속으로 "ㅇㅇ해야겠다"라고 모든 선택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상태라는 것을. 흔히들 말하는 답정너라는 것을.


C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다른 단톡방이나 SNS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대신 선택해 주세요'의 대부분도 알고 보면 진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간절한 요청이 아니라 '내가 이미 선택했는데 그게 뭔지 맞춰보세요~'를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런 류의 질문에 더 이상 내 의견을 담지 않는다.

일면식 없는 사람이면 그냥 무시할 수 있겠지만, 지인의 질문이면 '진지한 답변'이 아닌 그가 선택한 것에 '우와~ 잘 샀네!' '리액션' 하는 마음으로 임한다.

가끔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진지하게 내가 알아본 정보를 토대로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하면, 자기가 생각한 답을 내가 맞힐 때까지 이야기만 계속 길어질 뿐이었다. 결국 시간 내서 나눴던 오랜 토론의 결과는 답정너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른 단톡방의 친구 D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그 친구도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마다 단톡방에 질문을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무척 진지하다.

단톡방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다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선택한다.

그렇게 그 선택이 아무 문제없으면 오늘도 평화로운 단톡방이다.

하지만 단톡방 집단지성의 힘으로 선택된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면

"네 탓이다"

"너 때문이다"

그 선택에 가장 영향을 준 친구의 탓이 된다.

물론 장난과 원망 반반 섞인 반응이긴 하지만, 조언해 준 사람 입장에선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런 원망이 계속되면 고민은 고민대로 함께하고 대신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   


꼭 지인이 아니더라도 간혹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학창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서 결과에 대해 엄청난 완벽함을 강요받으면서 살아왔나.. 싶은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그런한 경험 때문에 직접 선택한 결과의 무게가 싫어서 책임을 떠넘길 사람을 찾는 듯 느껴진다고 할까. 사실 이런 사람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다. 뭘 선택해줘도 원망 들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만약, 피할 수 없는 관계라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질문자가 스스로 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질문들을 더해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 썸 타는 사람이랑 사귈까 말까 고민 돼. 어떡하지? 나 사귀어? 말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 감정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나도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 아냐!?"

"그럼 너 그 사람 안 보면 막 생각나고, 같이 있으면 좋고, 헤어지기 싫고 막 그래?"

"안 보면 생각나고, 다른 연인들처럼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긴 한 거 같아"

"그럼 사귀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만약에 고백했다가 그 사람이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거절당할게 두렵거나 그 뒤에 상황이 걱정되면 고백 안 하는 게 좋지"

"근데 그 사람이 다른 이성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게 싫단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이 정도야. 네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고백하지 않는 게 더 불편하면 고백하고, 고백했다가 잘 안되었을 경우가 더 불편할 거 같으면 고백하지 마. 뭘 선택해도 항상 리스크는 따를 수밖에 없어. 둘 중에 네가 더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은 선택을 해."


이런 식으로 내가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게 아니라, 녀석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상황만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그게 당연한 거라는 걸 인식시켜 준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적어도 결과에 대해 원망은 피할 수 있다.

그 대신 결과가 녀석이 원했던 상황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었다면, 함께 소주 한잔 마시면서 위로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선택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쓰는 것과 원치 않았던 결과에 함께 공감해 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깐.



그러니까, 혹시 가까운 누군가가 당신에게 '대신 선택해 주세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행여나 그 질문이 궁서체로 진지하게 쓰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선택지 분석보다 질문자가 진짜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가 정말 어려움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라면 진심으로 조언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만약 질문자가 앞서 언급한 친구 C의 성향이라면 답정너가 미리 정해둔 답을 찾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그 선택에 대해 만족할만한 리액션을 해주는 것 정도로 충분하다.

친구 D의 성향이라면 그 선택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질문자 스스로가 될 수 있도록 상황을 정리해 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이렇게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 그 자체보다 뒤에 숨겨진 본질에 더 크게 눈을 뜨고 대응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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