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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Aug 26. 2024

인생에 주어진 세 번의 기회를 다 써버렸나요?

"아무래도 난 인생에 주어진다는 세 번의 기회를 다 쓴 거 같다."


단톡방에서 A가 갑자기 인생의 기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A는 한때 꽤 잘 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했다. '한때'라고 한건 지금은 잘 안 나간다는 말이다. A는 요즘 뉴스에서 자주 언급하는 어려운 자영업자들처럼 힘든 시기. 위기를 겪는 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새해 계획으로 직원 확충을 고려했던 회사였는데, 최근 2년 사이에 급격하게 상황이 안 좋아져서 있던 직원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특히 올해 정부가 대폭 삭감한 연구개발비에 A의 주거래 회사가 크게 타격을 입으면서 A의 회사 또한 상황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매년 내년 내후년 프로젝트 계약을 고려하던 입장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미래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상황이라고 할까. A의 희망이 있던 자리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너희들에게도 세 번의 기회가 있었어?"

A의 푸념은 곧 질문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친구 B는 아직 그런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다고 대답했다.  A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B의 기회를 부러워했다. 친구 B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A에게 "삼진아웃도 아닌데, 뭐 그런 게 정해져 있을까?" 나름의 위로를 했다. 맞는 말이다. 뭐 그런 게 정해져 있을까. 아마도 숫자 3을 좋아하는 옛 조상님이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닐까. 지금 너에게 큰 위기겠지만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단다. 그러니까 아직 너에겐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으니까 힘내. 이런 의미로.  

하지만 오늘의 나는 새삼 그 누군가를 원망해 본다. 왜 세 번이라고 했나요? 열 번이라고 했다면 A는 절망 대신 아직 남은 희망을 기대했을 텐데.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기회'라는 걸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B가 안타까웠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는데 아직 한 번의 기회도 없었다고? 다른 사람 같았다면, 에이 거짓말 하지 마. 잘 생각해 봐. 했겠지만 이 친구에겐 그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B는 정말 작은 테두리 안에서 사는 걸 즐기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보다는 소소한 것을 즐기고 만족감을 느끼는 편이라고 할까. 그런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마'라는 말이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B에게 "가만히 있으면 기회가 오냐? 지금까지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새로운 걸 하나씩 시도해 봐. 뮤지컬도 보러 가고, 놀러도 다니고, 콘서트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안 해봤던 걸 하나씩 해봐. 그러면 아직 안 쓴 좋은 기회가 찾아오겠지." B는 의외로 순순히 "그럴까?" 수긍했다.

 

A는 나에게도 질문했다. "너는?" "나는? 나도 기회가 많았지. 돌이켜보면 죄다 아쉬운 기억들 뿐이고 그 아쉬웠던 기억들 대부분은 인생을 바꿀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기회가 세 번밖에 없다는 건 동의할 수 없어 ㅋㅋ" A는 나에게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한다고 나무랐다. "뭐. 생각해 보면 사실이 그런 걸. 그래서 나는 인간의 수명이 백 년밖에 안 되는 게 너무 짧다고 생각해. 백 년은 아쉬움만 남기다가 끝날 시간일 거 같으니 난 더 오래 살아야겠어."

그렇다. 친구의 뜬금없는 푸념으로 내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후회 투성이다. 아무래도 지금의 삶에서 불만족스러운 모든 건 그때 찾아온 기회를 손으로 잡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그때 생각이 조금만 적었다면, 그때 내가 기회를 잡지 않고 이전 상황을 유지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나름 굉장히 비범했던 것 같던 그 이유들을 지금 생각해 보니, 새로운 기회를 포기할 만큼의 것은 아니었지 않나 싶은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지나간 거 더 생각하면 뭘 할까. 나중에 소설 쓸 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적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 같다. 나는 과거의 쓰나미가 더 깊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황급히 방파제를 쌓아 올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친구에겐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마디 보탰다.

"지금 넌 인생의 큰 위기를 겪고 있으니까, 아마도 네가 이미 사용했다는 기회도 하나 부활할 거야. 그래야 공평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번 일 잘 극복해서 하나 더 남은 기회를 멋지게 다시 활용해 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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