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

by 여름나무


계절을 넘어서며 비가 내린다. 골목 골목, 구석구석, 손끝이 닿지 않는 곳까지 비는 겨울을 닦아내고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지구인 모두가 불안한 지금, 걱정도 함께 씻어 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쉬이 그러하긴 어려워 보인다.


봄이 유난히도 아프게 찾아오고 있다. 많은 이의 죽음이 그저 숫자로 전해지고 나 또한 죽음이 멀지않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살면서 죽음을 만나지 않은 적은 없다. 어떤 이의 죽음은 칼끝으로 가슴을 찌르듯 아파왔고, 누군가의 죽음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을 하였다.


중국의 어느 가족은 '코로나19'로 며칠의 시간차이를 두고 모두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아파했을까? 감히 무엇으로도 그 마음을 위로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못해 다행이라며, 그들보다 자신을 위로하는 이기심을 보인다.


열 살의 나이에 첫 죽음을 보았다. 삼거리 구멍가게 담벼락에 기대 앉은 걸인의 죽음이다. 오십 원짜리 동전을 놓아주며 보게 된 그에 눈엔, 늦가을의 석양이 들이비추고 있었다. 그 눈빛을 이리 오래 선명하게 기억하게 될 줄은 그때, 알지 못했다.


이웃의 부고에 그에 눈빛을 입혔다. 걸인의 죽음은 어렸던 내게 죽음은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쉼이라 생각하게 영향을 미쳤던 거 같다.


흔히들 누군가의 죽음에, 죽은 사람만 억울하단 소리를 하였다. 또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하였다. 접한 여럿의 죽음이 그런가보다 하였다.


아니었다. 죽은 자가 무엇을 안단 말인가? 죽음은 철저하게 산자의 고통이 되었다. 젊은 올케의 죽음을 접하며, 살아 남은자의 고통을 보게 되었다.


살아 남은 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은 자와 함께 하거나 미칠 수 있다면 미쳐 버려야했다. 그것만이 버틸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이기까지 하였다. 아프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 하던가? 상처도 세파에 닳아 무뎌지고 삶은 이어져간다.


죽은 자는 생각을 멈춘다. 하지만 산자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생각의 능력이 그때만큼 가슴을 후벼 파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남은 자의 슬픔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감당키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감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못내 울음을 울뿐이다.


죽음은 누구도 예외적일 수 없다. 내게도 어떤 방법으로든 죽음은 찾아 올 것이다. 어이없게도 언젠가도 알 수 없는 딸의 결혼식 까지만은 살아남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다행이 개미 같은 삶은 변화 없이 단순해 평화롭다. 죄송한 마음이 앞서면서도 내가 죽는 날은 바람 좋은 한가한 날이기를 바라는 욕심이 든다.


곧 눈이 부시도록 시린 꽃이 피어날 것이다. 그 꽃 지는 날에 그들의 슬픔도 꽃잎처럼 떨어져 바람에 날려갈 수 있었으면 싶다.


부디 평온한 영면이 되시기를,

'코로나19'가 빨리 지나기를 바라며, 힘겨운 모두가 조금만 더 힘 내시기를기를,

의료 봉사자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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